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지상 최후의 음식, 맥주와 치킨

 

지구 멸망은 인류의 오랜 관심사였다. 당연히 해결사도 존재한다. 메시아부터 어벤져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구원은 없다. 지구라는 행성은 반드시 사라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만약 우리 세대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자. 구체적으로 내일 아침 일어나는 순간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이 없어져버린다면. 바이러스와 함께.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팬데믹, 곧 대유행의 조짐이 크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매우 보수적인 관측을 해오던 기구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것이니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우한 폐렴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9년 12월 30일. 실제로는 한 달 전부터 조짐이 있었고 감염자가 나왔는데 미루고 감추다 일을 키웠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여하튼 이 사실을 토대로 현재까지 중국에서는 추세가 다소 감소했을 뿐 완전 종식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왔고 최초 사망자는 2월 20일 발생했다. 중국과는 약 50일의 시차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바이러스는 최소한 4월 중순까지는 간다고 봐야 한다. 이 전망은 낙관적인 것으로 사실은 더 길어질 확률이 더 높다. 최악의 경우에는 올해 내내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섣불리 힘을 내자, 이겨낼 수 있다는 수사를 남발하기보다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게 더 현명하다. 


오랜만에 일탈을 했다. 동네 슈퍼에 들러 저녁에 할인 판매하는 오리지널 허니 간장 치킨을 사가지고 들어와 지난해 말 세일할 때 사둔 하이네켄 캔 맥주를 꺼내 함께 마시고 먹었다. 근 1년 만에 마시는 술이었다. 문득 이게 최후의 만찬이라면? 너무 조촐한가, 혹은 그럴듯한가? 여하튼 맥주는 캔 하나를 겨우 다 마시고 닭은 결국 남겼다. 내일 아침까지는 지구가 살아있어야 할 텐데. 


덧붙이는 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올라온 음식들은 무엇일까? 예수가 자신이 죽을 것을 예언하자 제자들은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는다. 분노, 공포, 체념, 두려움, 뜨끔. 그런데 제목과 달리 어떤 메뉴인지는 흐릿하게 표현했다. 쓸데없는 시선낭비를 막기위한 것이겠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엉뚱한 것에 꽂히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던 날, 이른바 출애굽기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이 때 유대인들은 급박한 탈출의 순간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었던 순간을 기리며 검소한 음식을 먹는다. 효소를 뺀 빵, 재앙을 피하게 해준다는 양고기, 쓴 나물, 물을 섞은 포도주가 그런 것들이다. 따라서 그림에 올라온 만찬도 이런 소박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다들 깜짝 놀라 허둥지둥 대는데 유독 침착한 두 명이 있다. 바로 예수와 가롯 유다다. 다들 음식 생각은 하지 못하고 서로 흥분하여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예수는 이미 앞일을 알고 있다는 듯 유다에게 음식을 권한다. 유다도 예수의 손길이 가리키는 빵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eer Gynt Suites Nos. 1 and 2 • Holberg Suite (CD, Album) 앨범 커버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부쩍 짜증이 난다. 90퍼센트 이상은 사회 분위기 탓이다. 구체적으로 신종 바이러스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일상이 무너졌다.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수영과 댄스를 못 한지도 3주가 지났다. 바깥에 나갈 때면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잔뜩 긴장한 채 일을 보러 가는 것도 지쳐간다. 문제는 조만간 마무리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머지않아 종식은 헛소리였음이 일찌감치 증명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도 늘고 있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처가 되어야 할 곳이 새로운 일터가 되다보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잠시 일을 멈추고 집안 청소를 싹 다 한 다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음반을 찾았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모음집이 당첨되었다.


1번 음악의 도입부분을 들으면 언제나 햇살 가득한 따뜻한 아침이 연상된다. 작년 설악산에 놀러갔을 때 숙소 테라스에 서서 건너 편 산 사이로 비치던 햇빛을 보며 떠올린 음악도 이것이었다. 게다가 제목도 모닝Morning이다. 비록 하루 종일 우주충하고 비도 내리고 있지만 잠시나마 안식의 시간을 갖는다. 딱히 그리그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음악을 골라 차분히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는 주말되시기를.


덧붙이는 말


그리그의 페르 귄트는 꽤 유명한 음악이다. 다양한 지휘자가 참여하여 많은 음반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나는 낙소스 반을 최고로 뽑는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체코 지휘자 리보 페섹과 슬로박 필히모니아가 협연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카랴안 반이 마치 팬시상품처럼 반짝거린다면 체코 반은 장중한 맛을 훨씬 잘 살려냈다. 안타깝게도 품절이 되어 구하기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동경 올림픽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딱히 입장이 서지 않았다. 상황이 나쁘면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물론 일본에 대한 반감도 살짝 작용했다. 그러나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올림픽 같은 큰 행사는 내수를 진작시키기에 호재다. 당장 티브이를 포함한 가전제품 판매가 늘어날 것이고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덕에 관광여행도 크게 늘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까운 한국에 들를 가능성도 매우 높다. 방사능 위험 때문에 아예 선수단 숙소를 한국에 차리려는 계획도 많았다. 바이러스 창궐로 이 모든 장밋빛 전망이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음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좋은 점도 있을 텐데. 천천히 한번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끔,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 내가 비로소 작가가 되었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결찰의 밤>을 다시 읽었다. 단편 모음집이라 처음에는 가볍게 보았는데 이번에는 저자 후기와 엮은이 글까지 꼼꼼히 살폈다. 역시 보람이 있었다. 게이고는 이 책의 새로운 후기에서 초창기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한 편 한 편의 탄생비화를 밝히면서 지금의 나는 소설 기술은 더 늘었을지 몰라도 열의는 그때만 못하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물론 겸손의 말씀이겠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교통경찰의 밤>이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10년이 지나 겨우 중판되었지만(2001년), 작가 스스로는 '앗, 성공이다'라고 쾌재를 불렀다. 주인공은 <천사의 귀>다. 작가들은 작품의 판매부수에 상관없이 글을 쓰면서 극강의 희열을 만끽할 때가 있는데 게이고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 내가 비로소 작가가 되었구나. 


<천사의 귀>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단편은 <건너가세요>다. 누군가의 별 것 아닌 사소한 일탈이 다른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사고로 연결되는 고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정말 번역가의 말처럼 1년에 두세 권이라는 페이스로 꾸준히 쓰다보면 걸작이 불쑥 튀어나오나 보다. 참고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30년 넘게 써서 발표한 소설은 총 87권이다(2019년 기준).


사진 출처: https://www.azquotes.com/author/33716-Keigo_Higashin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절대 보호하지 않는다 


합리적 무시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임에도 그에 대해 비판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비판을 하지 않았을 때 얻는 이익보다 적을 때 그 일을 무시하는 행위를 말한다(출처:네이버) 한 마디로 신경 써서 얻을게 별로 없을 때 무시하는 거다.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이렇게 처리한다. 길을 가다 보도에 누가 오토바이를 세워두어도 지하철 광고 안내판의 소음이 도를 넘게 커도 나뭇가지를 걸개 삼아 주렁주렁 현수막들이 걸려 있어도 무시한다. 왜 귀찮으니까?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런 무시들이 모여 불법을 당연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만드는 걸 보고 참기 어려웠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련 기관에 민원을 넣는 거다. 민원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정확하게 적고 내가 겪는 불편을 알리면 그만이다. 민원이란 게 희한해서 반드시 답을 하게 되어 있다. 마치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공문 같은 역할을 한다.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비율도 높다. 비록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왜 그런지를 소상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천편일률적인 답변도 많지만. 


물론 민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을 수는 없지 않는가? 살아가면서 불편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으셨다면 그리고 최소한 세 번 이상 그 일이 반복되었다면 무시하지 말고 글을 서 민원을 넣어보시라. 처음엔 불편해도 자꾸 하면 는다. 스스로 상황을 개관적으로 보게 되는 능력도 생기고, 아무튼 시작하시라.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절대 보호하지 않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