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연인들 : 한국인이 뽑은 오페라 로망스 베스트
Various Artists 작곡 / MFK(뮤직팩토리코리아)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뭘 좋아하는데 순서는 없지만 그래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건 맞다. 클래시컬 음악도 마찬가지다. 출발은 역시 모차르트다. 아무리 고전음악을 모른다고 해도 볼프강의 멜로디 하나쯤은 들었기 때문이다. 가벼움(?)에 살짝 질린다면 베토벤으로 갈아탄다. 앞뒤좌우 볼 것 없이 강력하게 직진하는 매력은 한번 맛보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한계효용법칙에 따라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걱정하지 마시라. 작곡가는 무궁무진하니까. 그렇게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더 나아가 필립 글라스까지 섭렵하고 나면 어느새 머리카락에는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는다. 그 때쯤 다시 찾게 되는 사람이 모차르트다. 초심으로 돌아오는 거다. 


오페라는 우리에게 낯설다. 우선 가사를 모른다. 이태리어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해가 어렵다. 아무리 사전에 내용을 알고 듣더라도 감동에 이르기까지는 머나먼 벽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팝송을 꼭 가사를 알아야만 즐기는 게 아닌 것처럼 오페라도 극 전체의 전개나 가사를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컬플리에이션 앨범부터 시작하면 된다. 일종의 짜집기 종합선물세트다. 평론가 중에는 이런 음반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한 때는 그랬다. 들을 거면 제대로 들어야지 무슨 후크송도 아니고. 지금은 다르다. 음악은 이런 저런 잣대를 들며 먹이는 사료가 아니다. 듣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오페라의 연인들>은 초심자는 물론 어느 정도 아는 분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익숙한 노래들을 뽑았지만 부르는 가수들이 숨은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오페라하면 떠오르는 파바로티나 슈와르츠코프는 없다. 대신 토마스 하퍼나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처럼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실력은 출중한 성악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개인적으로는 푸치니 작곡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부른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가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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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 Nothing


확증 편향은 자신이 믿고 싶은 마음을 거듭 확신하여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박근혜 지지자는 여전히 그를 흠모하고 문재인 옹호자는 아무리 정책을 잘못했어도 우파 때문이라며 매도한다. 거창하게 정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 무리해서 아파트먼트를 샀더라면 하는 자책을 하기보다는 집 가진 자들의 횡포에 분노의 화살을 던지는 게 속이 덜 쓰리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흔히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 비대칭의 굴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정보가 바로 돈과 직결되기 때문에 취득하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라 어지간한 내용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동냥하는 거다. 특히 부동산 투자 카페나 유튜브를 보면 자기 확신에 찬 교주들이 많은데, 이들 말은 그냥 거르는 게 옳다. 대신 정부의 정책이나 발표 내용은 토씨 하나까지 꼼꼼히 따져 읽어야 한다. 


굳이 부동산이 아니더라도 이런 자세는 살아가는 데도 매우 도움이 된다. 나 또한 실수를 많이 했는데 그 중 열에 아홉은 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 한 경우가 많았다. 곧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행정학에서는 어떤 정책을 펼치기 전에 아예 하지 않는 것(Doing Nothing)도 하나의 선택지로 설정한다.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일을 진행했을 때보다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이득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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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더디고 답답해보일 수도 있지만


당황스럽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늘 여러 가지를 시도해본다. 그래도 정 막히면 그 때는 마지막 카드를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드는데. 그건 바로 이성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먼트 단지 인도에 대형 오토바이가 서있다. 구석자리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인도이고 아이들의 방과 후 놀이터 구실도 하는 곳이라 당연히 방해가 된다. 우선 오토바이가 주차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 하루 이틀쯤 기다린다. 혹시 다른 이유로 임시로 잠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있다면 방법을 생각한다. 오토바이 주인이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면 연락을 하면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연락처는 없다. 그럴 때 나는 종이에 "인도 위 오토바이 주차 금지"라는 글을 써서 안장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옮길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우지 않는다면 그 때는 공식 기관을 동원한다. 곧 관리사무소에 전화하여 오토바이 등록번호를 알리고 정식으로 철거하도록 요청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일이다. 겉으로는 매우 더디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나의 일 처리 방식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때는 손을 놓는다. 내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업무와 관련하여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약속시간을 정했는데 늦거나 별도의 연락이 없다고 가정하자. 일단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그 때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그 답이 납득이 되면 혹은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이유를 대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중요한건 일을 진행하는 거니까. 만약 세 번째도 같은 일이 발생하면. 삼진아웃이다. 따로 묻거나 따질 필요도 없다. 신뢰를 저버린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


덧붙이는 말


이 원칙은 세우기도 어렵지만 실천은 더욱 힘들다. 다행히 잘 지키고 있는 편인데, 만화 <시마 부장> 덕이 크다. 미국지사에 파견된 부장은 옥외광고가 집의 햇빛을 살짝 가린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상대방을 만나러 간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예 만나주지조차 않는다. 어떤 보상을 하더라도 자신은 햇빛이 중요하다는 거다. 도리어 이런 저런 제안을 하는 과장을 경찰에 고발하려고 한다. 결국 어떤 협상도 하지 못한 채 광고판을 축소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 에피소드의 교훈은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잡다한 갈등이 연이어 발생한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절대 직접 접촉하면 안 된다. 어떤 형태든 타협을 하던 협박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층간 소음이 발생한다고 해당 집에 직접 인터폰을 하거나 방문하여 문제를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지적을 받으면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때문이다. 쪽지나 문자, 통화도 마찬가지다. 관리실에 연락하여 주의를 당부하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로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하도 시끄러워 경비실을 통해 인터폰을 했는데, 막무가내로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서 무슨 소리가 나냐며 땡깡을 부린 적이 있다. 순간 나도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더 이상 우리 집에 머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제야 상대방은 물러갔다. 결국 그 집은 나중에 이사를 갔다. 함께 흥분하기보다 이성적으로 대응한 것이 도리어 효과를 본 셈이다.


요컨대, 남과 혹은 단체나 기관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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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나온 요리는 늘 가장 맛있다


일요일 저녁 외식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조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까지 얻었다. 이번에 가면 적어도 2년 정도는 오지 못할 거라고 해서 시간을 냈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하도 한식을 많이 먹었다길래 일식과 이태리 음식 중 고르라고 했더니 후자를 선택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날 것은 불안하다. 세상도 뒤숭숭하고.


바이러스 여파 때문인지 강남은 한산했다. 이렇게 차가 막히지 않고 거리에 사람이 적은 건 오랜만이다. 그럼에도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예약하기를 잘했다. 스타터로 오징어 튀김을 시키고 파스타를 전체 요리로 주문했다. 골고루 맛볼 요량으로 올리브, 크림, 토마토 베이스 파스타를 선택했다. 메인으로 스테이크를 할까 아니면 피자를 선정할까 살짝 고민하다 일단 미루기로 했다. 미리 주문해서 식은 음식을 먹게 될 우려가 있어서다. 이 선택은 결국 탁월했다. 


주문을 마치자 식전 빵이 나왔다. 이곳의 빵은 부드럽고 바삭하기로 유명하다. 다른 소스 없이 맨빵을 먹어도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남아 입맛을 돋운다. 전채는 주로 채소를 먹지만 이날은 튀김으로 했다. 갓 튀긴 오징어의 식감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시실은 일식을 먹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차선책이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삭하고 뜨거웠다. 


전채요리를 마무리할 쯤 파스타가 나왔다. 접시 당 2만 원 대 중반이라 싼 가격은 아니지만 값어치는 충분했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갓 나온 요리는 늘 가장 맛있다. 소스도 적당히 잘 배어 있어 지나치게 느끼하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참고로 소스는 모두 유기농이다. 아주 배가 고팠다면 이쯤해서 다음 음식을 시킬 텐데 이미 배가 꽉 찼다. 양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걸 보면 재료를 아까지 않고 푸짐하게 넣은 덕인가 싶다. 결국 더 이상 시키길 포기하고 2차는 커피숖으로 가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 명이서 먹은 총 액수는 약 9만 원 정도라 싼 가격은 아니지만 뜻 깊은 자리에서 정갈한 음식을 먹은 값으로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의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물이나 피클이 비면 수시로 채워주며 배려를 해주었다. 


아쉬운 점은 인테리어다. 그냥 보기에 별로라는 게 아니라 소파의 천이 찢어지고 탁자나 의자가 살짝 흔들거려 먹는 내내 신경이 쓰이고 불안했다. 좌석배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파와 의자가 함께 있는 통로 쪽 구석자리로 배정받았는데 저장시실이나 컵 따위가 바로 옆에 있어 시선이 불편했다. 과감히 칸막이를 하던지 자리를 바꾸어 식사 집중도를 높였으면 좋을 뻔 했다.


* 제가 방문한 곳은 블루밍 가든 강남점입니다. 이 글은 해당 레스토랑을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먹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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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가 도리어 봉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소설 <태백산맥>이 출간되고 대히트를 치자 출판사는 신문광고를 실었다. 문안은 "한국문학 여기까지 왔다." 그 문장이 하도 생생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카피에 걸맞은 책으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주제였던 남한의 좌익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영화 <기생충>이 92회 아카데미상에서 각본, 국제영화상. 감독, 작품의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모든 상이 귀하지만 사실 작품상을 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주 목표를 높게 잡아 감독상까지는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나 작품상이라니, 그야말로 대상인데. 


물론 운도 따랐다. 올해 경쟁작들은 상대적으로 허점을 하나이상 다 가지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1917>은 지나치게 영미중심 이야기였으며, <조커>는 주인공이 너무 두드러져 작품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으며, <아이리시맨>은 공로상은 줄 수 있지만 최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회고적이었다. 무엇보다 작년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로마>가 감독상만 받아 구설에 오르면서 반사이득을 본 효과도 컸다. 


그렇다고 <기생충>의 수상을 폄하할 수는 없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가 미국 주류무대에서 이렇게 대접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스카로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절실한 시기에 <기생충>이 구세주처럼 등장한 셈이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가 도리어 봉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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