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 피쉬>, 어렸을 때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알게 된다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새해 들어 크게 아팠다. 그것도 첫날. 정확하게는 1월 2일 오후에 전날과 아침에 먹은 음식을 게워냈다. 떡국을 먹을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뭔가가 상했다. 아들 해 먹인다고 고이 모셔둔 고기가 너무 오래되었겠지. 억지로 참고 어머님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에 타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아, 토를 하고 나올걸. 결국 강남구청역에 내려 역무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1차 구토. 비몽사몽하며 집으로 와서 2차 우웩.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배에 따뜻한 병원용 물 담요를 대고 다시 3차로. 장장 서너 시간에 걸친 구토였다. 그러고 나면 대게 배가 덜 아프고 시원해지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냥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죽음의 공포를 느낀 건 초등학생 때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지하 경사로에 접어든 순간 맞은 편 벽에 부딪치리라는 걸 직감했다. 벽을 마주하고 90도로 꺾이는 구간이었다. 브레이크도 소용없었다. 내리막길이라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그대로 벽을 들이받았다. 그 와중에도 핸들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 덕인지 자전거와 함께 동시에 옆으로 꼬꾸라졌지만 상처는 덜했다. 바퀴는 완전히 우그러졌지만. 사망의 골짜기에 곧장 다가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충격이 컸다. 죽음의 순간이 어떠하리라는 걸 간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면 살아온 여정이 역순으로 순신간에 휘리릭하며 지나간다고 한다. 곧 최근 겪은 일부터 아주 어렸을 때까지. 그 당시 내가 그랬다. 시간상으로는 불과 몇 초에 불과했지만 내 전 인생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억울하지 않는 죽음은 없다. 가는 데는 순서도 없다. 그럼에도 인생의 전반전을 뛰고 후반전도 얼마 남지 않은 시기가 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한다, 고 주변에서들 이야기한다. 나 또한 그런 나이가 됐다. 아무리 우겨도 지나온 날보다 더 살 자신이 없다. 아니 가능성이 제로다.
영화 <빅 피시>를 보면 어렸을 때 각자에게 죽음의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평온하게 살다 늙어 죽는 사람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 객사를 하기도 하고 불과 몇 년 후에 물에 빠져 죽기도 한다. 흔히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린아이에게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건 잔인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한 가지 교훈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알게 되었을 때 남은 삶을 대하는 자세다. 사실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사람은 모두 한 번은 죽는다. 자신이 사라질 때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한다. 죽음을 대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다음 기회에 밝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