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
랜달 라이트, 데이비드 호크니 / 알스컴퍼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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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운으로 끝을 맺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도 데이비드 호쿠니는 전자였다. 여전히 전통 미술의 여운이 황혼처럼 남아있을 무렵 그는 팝아트를 시도했다. 사실 지금에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당시에는 마땅한 칭호도 없었다. 마치 아이들 낙서같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호크니의 그림은 날로 평가가 높아졌다. 미술이라는 특정 영역이 아닌 다방면에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광고전단지에서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거장이 되었다.  


<호크니>는 순수한 다큐인 동시에 하나의 작품이다. 연출화면을 넣지 않고 거의 대부분 자신이 찍은 비디오에 의존한 덕이다. 어떻게 가난뱅이 화가가 처음부터 스스로를 기록할 생각을 했을까? 유명한 화가가 될 걸 미리 짐작이라도 한걸까?그건 아니다. 비디오 작업 또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자신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자화상 시리즈나 풀장연재가 그 예들이다. 


물론 호크니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상업성을 활용한 과장된 작가라거나 아니면 미술이라는 고루한 벽을 깬 진정한 천재라든지.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그는 솔직하게 살았고 그 삶을 이 다큐에 온전하게 담았다. 동성애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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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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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사소한(?) 강박증이 있다. 나뭇가지를 걸개 삼아 걸어놓은 플랭카드를 보면 마구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 자연을 그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읽으나마나한 글귀로 방해를 하고 있는가? 어느 순간 도처에 즐비하게 늘어선 점멸등 신호등도 마찬가지로 거슬린다. 차에 타고 있다가 점멸등을 보면 천천히 가기 보다는 더욱 더 빨리 달리고 싶다. 보행중일 때는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린다. 


환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도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종일 켯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신호등 불빛이 싫어 도심에 들어가기 괴로워진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들 대부분은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필립 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닥치고 쓴 글들은 불행하게도 사후에 빛을 발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불행한 시기에 탄생한 걸작들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페라곡을 틀어놓고 광기에 휩싸여 써내려간 결과물이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그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짧게는 한장짜리에서 길어봤다 15페이지 내외의 작품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전자 개미>를 으뜸으로 꼽는다. 자동차 사고로 병원을 찾은 폴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느낌을 받은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살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프로그램이라, 내 안 어딘가에, 특정한 생각을 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제어하는 장치가 들어있다는 거잖아."


나는 강박하는 기계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바로 불쾌한 반응을 하는 장치가 내 몸 어딘가에 있는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나나 딕 만이 아니다. 카프카도 그랬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처음엔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믿지 못했지만 서서히 적응해 가다 결국 잊혀질 위기에 처한다. 급기야는 귀찮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필립은 겉으로는 사이언스 픽션 작가였지만 사실은 인간의 본질을 다룬 글쟁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느끼기 마련인 감정이 왜 소중한지 밝히고 있다. 단지 기쁘거나 즐겁지 않더라도 비록 짜증나거나 슬프더라도 감정이 사라져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중국집 주인과의 전화통화마저 귀찮아 혹은 두려워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인간들에게 딕은 당신이 사람 맞느냐고 묻고 있다. 인류는 점점 기계를 닮아가려 기를 쓰고 머신은 도리어 휴먼냄새를 풍기고 싶어하는 미래사회에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해메고 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은 숨긴채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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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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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희곡 강의시간에 강사는 말했다. 


"스티븐 킹은 기복이 심한 작가예요. 어떤 작품은 그야말로 천재의 손길이 느껴지는 데 몇몇 글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성의가 없어요."


굳이 한 권의 책을 두개로 나눈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웃사이더 1은 만점에 가깝고 2는 졸작이다. 강제 추행당해 죽은 한 소년의 살인범은 누가봐도 리틀야구코치다. 범행 현장에서 그의 유전자가 발견되었고 다수의 증거가 범인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들끓고 정작 재판을 받기도 전에 살해를 당하고 만다. 마치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에게 린치를 가하듯이. 과연 그는 범인이었을까?


여기까지는 박진감이 넘치는 전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야기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도플갱어가 등장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넋두리가 이어진다. 아 또 도졌구나, 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지만 속도는 현저히 둔해진다. 대사가 독백으로 바뀌면서 잃게 되는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억지로 킹 특유의 비유로 버텨보지만 소용이 없다. 


"비유를 벗겨내면 뭐가 남겠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넘지."


이런 모호한 문장으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럼에도 고령의 나이에 끊임없이 글을 쓰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티븐 킹에게 찬사를 보낸다. 물론 별점은 5점 만점에 3점 이상 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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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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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정도 이 곳에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을 아예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책을 보고나서 서평 혹은 리뷰를 남기는 것이 왠지 의무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정말 좋은 책이라면 내가 쓴 감상평과 아무 상관없이 읽힐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실제로 그동안 누구도 내게 "왜 글을 쓰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간간이 댓글로 칭찬 혹은 비난하는 글들은 있었지만. 물론 그 모든 글들에는 답글을 드렸다. 어떤 형태든 글을 쓰는건 수고스러운 것이니 당연히 그 노고를 치하해 드려야하니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두 번 읽은 책이다. 처음엔 건성으로 두번째는 꼼꼼하게. 그 이유는 첫번째는 뷰커상 수상을 노린 야심작이라는 기사로 인해 선입견이 생겨서, 두번째는 교육방송 라디오에서 들은 이 책에 대한 뜻밖의 평가덕이었다. 이 책의 주제는 기억의 왜곡이다. 자신은 악한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는 그로 인해 충격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세월이 흘러 다시 스스로를 마주하니 악당도 그런 악당도 없었다. 그러나 사죄를 받아야 할 상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문득 내가 죽고 나서 그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 블러그에 남긴 내 글을 보고 악담을 퍼붓는 상상을 해 본다. 살아 있을 때는 어떻게든 답변을 할 수 있지만 사라지고 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만약 댓글을 남긴 사람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악한 말을 쏟아 붓는다면.

 

이 책의 원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우리 말로 하면 종말의 센스쯤 된다. 대체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 다 읽고 나서도 굳이 이런 제목을 달았어야 했나 싶다. 왠지 현학적이다. 쉽게 말해 잘난척이다. 번역을 맡은 한국출판사도 고민이 컸을 것이다. 잘 팔려야 하는 소설이 철학도서로 분류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엤겠지. 그래서 나온 묘안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감각적이긴 하지만 책 내용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다. 예감이란 결국 진실을 여는 문이니까.

 

덧붙이는 글

 

내 블러그를 꾸준히 봐주신 분들은 반가우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전처럼 공무원이 꼬박꼬박 근무시간을 채우듯 글을 올릴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일단 체력이 예전같지 않고, 게다가 약간의 지병까지,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들어 "아는대로 써라"라는 내 글쓰기 원칙이 다시금 스스로를 옥죄어 온다. 과연 나는 잘 알고 글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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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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