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is in the Detail
북미회담이 결렬됐다. 불과 며칠 남겨두지 않고 열린 한미정상만남서 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도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반응은 두갈레다. 안타깝다와 그럴 줄 알았다. 현재까지는 전자가 앞서지만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건 어디서 잘못이 있었는지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똑같은 잘못을 더이상 저지를 수는없기 때문이다. 분석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조심스레 의견을 낸다면 디테일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선 남북정상회의가 지나치게 보여주시식으로 진행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건 대외적인 발표일 뿐 실제로는 진전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공식화되지 못한 결과는 언제든 뒤짚힐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속내는 결국 미국과의 담판이기에 어쩌면 우리나라를 지렛대로 삼아 트럼프를 압박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곧 우리 대통령과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로 몰아간 것이다. 직업인 도박사인 트럼프는 전략을 간파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강대강 전술을 이어가다 결국 파토가 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북한을 달래고 미국을 구슬리고 게다가 중국의 눈치까지 보았지만 결국은 결렬되고 말았다. 사실 북한과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더 나아가 일본까지 이번 북미회담 불발로 손해보는 나라는 없다. 다들 할만큼 했다는 분위기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약속을 지키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킴으로써 이후 행보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미국은 적대국가의 정상을 갑작스레 파트너로 인정하는데 따른 비판에서 자유로워졌고 중국은 배후자로서의 위상을 여전히 유지했고 일본은 패싱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만 열심히 이곳저곳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헛품만 판 셈이다. 물론 향후 남북관계가 과거와 같은 비상상황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러나 과거의 전례로 볼 때 북한이 어느 순간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는 박정희 독재정권때도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강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 과실은 정권이 따먹고 현실은 분단의 연장이었다. 마치 영화 <강철비>에서의 대화처럼 국민들은 통일을 원하는데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분단을 이용해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현상은 한 진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는 냉전을 유지하기 위해 화해를 지나치게 미루었고 진보는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급작스런 통일 무드를 만들곤 했다.
이젠 차분히 복기를 할 때다. 물론 허탈감에 젖어 기운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너무 급한 드라이브 일변도로 달려온 측면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저보면 북미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개방개혁조치를 취한다는 보장도 없다. 도리어 서로에게 여지를 남겨두는 바람에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회담을 준비할 시간을 번 측면도 있다. 우리 정부는 과도한 흥분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직하게 말해 문 대통령께서 1박4일이라는 무리한 일정으로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은 과했다. 회담결렬 가능성을 보고받고 어떻게 해서든 취소해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우리가 할 일은 다했으니 더이상의 액션은 없다라는 태도가 아쉬웠다. 이 순간의 판단이 디테일을 놓친 결정적인 장면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