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를 따라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 이야기를 한참 하는데 잠바 차림의 4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자 소파에 앉았다. 뭐 이런 놈이 있나 하고 의아해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달리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그 때 알았다. 브이아이피구나.
자리를 옮겨 식사를 했다. 주인공은 늦게 오는 법. 실무진까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상대측에서 내게 받아두라며 와인을 내밀었다. 아, 이게 사장이 아까 침을 튀겨가며 말을 하던 술이구나. 이번에 국내수입을 하게 되었다고 자랑을 해댔다. 퀄러티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다며.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교수님이 돌아오시면 받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 말은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내게 와인을 권한 상무는 좋은 학생을 제자로 두었다며 교수를 칭찬했다고 한다. 만약 그 때 내가 덥썩 받았거나 혹은 대놓고 거절했다면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위원장을 두고 말이 많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외유성 출장을 했다는 소문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 인턴과 함께. 과연 지위를 내려놓을만한 과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시민단체 출신에 대한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한건 아닌지? 다른 자리도 아니고 금융기관을 총괄하는데 고시패스는 고사하고 경제학과 출신도 아니니 억하심정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그의 처신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스스로가 질타하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다니. 남의 돈을 받을 때는 무언가 대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리 없다. 만약 무지했다면 그건 멍청한 거다. 백번을 양보하여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아 외국에 가야만 했다면 업무로 국한하고 출장내역을 정확하게 기록해 두었어야 했다. 참여연대 시절 돈 몇 푼에도 눈을 부라리며 혈세 운운하며 입에 거품을 물 때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묻고 싶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