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리 진 킹이 하고자 한 말은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됐고 경기나 하자고
미투운동은 결국 권력의 문제다. 만약 여성이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곧 남자와 여자간의 문제라거나 혹은 더 나아가 생물학적 속성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해결방안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마치 절대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공산주의가 멸망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자체에 결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미국은 요동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이 생중계됨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전투에 대한 이미지는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이러한 붕괴는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여성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흡사했다.
운동경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빌리 진 킹도 그 중 한명이었다. 여성 테니스선수에 대한 상금이 남자에 비해 형편없는 것에 분개한 그녀는 협회를 탈퇴한다.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제 갈길을 가던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온다. 성대결을 하자는 것이다. 상대는 비록 은퇴한 50대 중년남성이지만 그래도 윔블던을 제패한 경력이 있다. 과연 이 둘의 대결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고 누가 이겼을까?
결과를 알고보면 싱거울 정도로 시시하지만 영화는 빌리 진 킹의 내면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사실 그녀는 수호전사가 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명성을 얻고 있었고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남편이 있었다. 그럼에도 총대를 맨 이유는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후배들이 계속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빌리는 뜻밖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혼란에 빠진다. 동성애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이 주도하는 운동이 펌하될 수 있음을 잘 알았기에 내적 갈등은 극도에 달한다. 더우기 경기력마저 떨어지고 마는데.
엠마 스톤은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친다. <라라랜드>로 물이 오른 그녀는 이제 어떤 역할을 맡아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 마치 전성기 시절의 조디 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덧붙이는 말
한국배구협회는 셀러리캡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곧 선수단의 연봉을 총량 규제하는 것이다. 모든 선수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남자와 여자 선수의 연봉인상폭을 차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여자에게만 1인 최고연봉액이 총샐러리캡의 25%를 넘지 못하게 제한한 것이다.
연맹은 잡다한 이유를 근거로 내세운다. 남자배구가 인기가 더 많다. 여자배구는 흥행이 안된다. 어쩌구 저쩌구. 어쩌면 영화 <빌리 진 킹>에서 테니스 협회 고위 인사가 하는 말과 똑같은지. 킹은 우문에 현명하게 답한다. 티켓파워만 봐라. 어떤 경기표가 더 잘 팔리는지. 참고로 올해 여자배구는 남자와 비교하여 시청율이나 관객수에 큰 차이가 없다. 남자는 저녁 7시, 여자는 오후 5시에 하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김연경 선수를 모델로 한 영화가 제작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남자와 여자간 성대결 배구대회를 주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