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제목만큼이나 심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세상에는 백해무익한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대상은 표독한 돈많은 할머니였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결과를 맞게 되고 또 다른 죄를 짓고 만다.
토요일 아침 오랫만에 만끽하는 여유를 즐기는데 난데없이 찢어지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 귀를 기울여 보니 녹음된 소리다. 곧이어 데모노래가 흘러나온다. 절로 눈쌀이 찌푸려진다. 재건축으로 어수선한 요즘 각종 이권이 개입되다보니 억울한 사람도 나온다. 그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 없다는 막연함으로 데모를 한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휴일 오전 아무 상관도 없는 주민들이 그 원성을 그대로 들어야 하다니. 게다가 우리 단지도 아닌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사정을 적어 시청에 알리고 계획했던 글감이 아닌 죄와 벌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할 권리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맡겨야 하는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가 집행자가 되기로 했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도 그 더러운(?) 일은 국가가, 구체적으로 사법기관이 맡아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악랄했다면 신고하고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곧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연대하여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움직일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사필귀정이다 정치보복이다. 핵심은 그는 죄를 지었고 벌을 받을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누군가가 개인적인 복수를 한게 아니라는 말이다. 권력과 금력의 보호장치가 사라진 그에게 법은 평등해야 한다.
동네 사정을 게시판에 올리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알고보니 데모대의 행동은 악질이었다. 일부러 주거지 주변에서 큰 소리로 낸다고 한다. 그럼 민원이 들어오고 그걸 해결하기위해서라도 담당자는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곧 애꿏은 주민들을 볼모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치가 떨리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길은 따르지 않겠다. 그들이 동원했던 똑같은 수단으로 굴복시키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