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대신 살아서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고
피해자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스스로 목숨을 끊는건 인간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제외하고 그 어떤 생명체도 자살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역사 또한 길다. 수많은 사례중 가장 인상적인 건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스스로도 부당하고도 확신했고 심지어 명령을 내린 사람도 반대파를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살을 택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인 것이다.
문학에서 비슷한 장면을 꼽자면 역시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다. 모함에 의해 고향을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유일한 은인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파산위기에 몰린 선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제발 부탁이니 죽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아비는 단호히 말한다. 내가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면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을 비겁하다고 두고두고 욕할 것이다. 자살을 택하면 원성은 추모로 바뀌어 너와 네 어미는 연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건 과감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자식은 눈물을 흘리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찰나 백작이 들이닥친다.
배우 조민기씨가 죽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주상복합건물 지하주차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도 남겼다. 모든 내용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알려진 것만 보면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뿐만 아니라 자기 변명도 있었다고 한다. 곧 잘못은 했지만 나 또한 할 말이 있다. 무책임하다. 정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엄격한 수업의 스트레스를 인간적으로 풀어주려고 했다는 주장에는 어이 상실이다. 조민기는 죽어가면서도 억울했다. 성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 이 세상과 작별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신의 숨통을 끊는다. 그 모두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아주 특별히 관심을 받는 이들만 주목을 받는다. 조민기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공황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았어야 마땅했다.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고 살아서 피해자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했어야 옳다. 그의 자살은 결코 명예롭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나 가족에게나 그를 알았던 모든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