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지막 승부>하면 다슬이 역의 심은하나 라이벌이었던 장동건과 손지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동준을 부담되지 않게 도운 박형준도 빠트려서는 안된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맡은 역할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쿨가이의 전형이었다.

 

90년대의 청춘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지금 돌이켜보면 90년대 같은 시대는 없었다. 오랜 독재정권의 사슬을 끊고 피나는 투쟁끝에 맞이한 새로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모두가 희망에 들떴다. 경제도 쭉쭉 성장했다. 금방이라도 선진국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찬란한 태양은 아이엠에프 직격탄을 맞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 후 경제지표가 회복되어 더 잘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한번 큰 좌절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더이상 봄의 기운이 자리할 틈이 없었다. 그 시절의 청춘들은 스스로에게 감사해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빛나는 계절을 보냈으니까. 그 중심에는 <마지막 승부>도 있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단 한편도. 지나가면서 슬쩍 볼 법도 한데 왜? 아, 나는 연병장을 박박 기고 있었다. 제대하고 돌아와보니 인기는 시들해져버렸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아 그렇게 잊혀졌다. 희한하게 한 때 폭발적인 관심을 받던 대학농구도 기세가 꺾여 있었다. 추억의 농구대잔치는 말할 것도 없고.

 

2018년 3월 월정액 서비스에 가입한 기념으로 본전을 뽑을 게 뭐 있나 찾다 <마지막 승부>를 고르게 되었다. 잃어버린 젊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에서 함께 농구를 한 친구들. 에이스인 동민과 함께 대학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배신으로 다른 동료들은 낙동강 오이알 신세가 되고 만다. 동민은 입학과 동시에 승승장구하게 되고 철준은 방황의 늪에 빠지게 된다. 거대한 복선이 깔린 셈이다. 철준은 다슬이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가고 배운게 도둑질이라 다시 농구공을 잡는다. 처음엔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우여곡절끝에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고 둘은 드디어 마지막 대결을 하게 되는데. 

 

극 자체만 보면 신파다. 마치 <공포의 외인구단>의 농구버전이라고 할까? 두 남자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다슬이를 보라. 당시 한참 인기를 끌던 대학농구의 인기를 등에 엎고 만들어낸 어설픈 청춘물이라고 해도 반박하기 힘들다. 농구경기장면도 억지스러운 설정의 무한반복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승부>에는 이 모든 단점을 뛰어 넘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그건 배우들이다.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정직하게 말해 하나같이 어설프다. 그나마 안정적인 연기를 보이는 배우는 이상아와 장항성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부이 신인급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어설픈 풋풋함이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곧 그 나이 때에 맞는 연기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과 악이라는 뚜렷한 구도도 어느샌가 허물어지고 오로지 농구를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모습에 환호하게 된다.

 

미국에서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의료진을 포함한 고급 시설을 갖추는 대신 노인들이 젊었을 때를 똑같이 재현하여 공동생활을 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지 자신이 청춘일 때 들었던 음악을 듣고 티브이 쇼를 보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한참 먹던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신체나이가 거꾸로 돌아간 것이다.

 

어느새 90년대가 복고가 되었다. 장국영 머리에 어깨뽕 들어간 상의를 입고 긴 바지와 치마를 입고 다니던 청춘도 이제는 중장년이 되었다. 처음으로 픙요의 맛을 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세대였지만 지금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고 말았다. 그토록 증오하던 기성세대가 되어 그들과 똑같은 아니 더한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중에는 권력과 돈, 명성에 취해 더럽고 구역질나는 짓거리를 잘도 해댄는 이들도 끼어 있다.  

 

더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면 자신의 청춘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 때 무슨 말을 하고 생각에 잠기고 무엇때문에 고민했는가? 만약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시절의 드라마를 보며 감동했던 한 순간을 떠올려보라. 철준이는 왜 그렇게 다슬이에게 택택거리면서도 운동장을 미친듯이 뛰었는가? 동민은 이기적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좋아하는 조건 좋은 여인을 마다하고 순수한(?) 다슬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는가? 다슬이는 왜 두 남자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는가? 기성세대의 눈에는 다 부질없는 짓거리같지만 그러기에 젊음아닌가? 꼭 무슨 쓸모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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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이야스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출연 / 인조인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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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슈튜어트는 어둡고 서늘한 역에 최적화된 배우다. 아무리 퍼스널 쇼퍼라는 세련된 직업에 휴대폰을 분신처럼 들고다니는 신세대라고 하더라도 그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죽은 쌍동이 오빠를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생을 마감한 이는 끝끝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두려움이 친근함으로 바뀌며 비로서 크리스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비친다. 개인적으로 칸영화제 대상을 받을만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거의 개인플레이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에는 경의를 표한다. 누드씬도 너무도 자연스러워 호기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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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야마다 야스오 외 목소리 / 콘텐츠게이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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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설이 된 데에는 루팡3세도 큰 몫을 했다. 일본 번영의 최전성기인 70년대 작품을 재해석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화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원작의 섹시함이 사라진 것에 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극장판에 그렇게까지 하드코어를 넣을 수는 없었겠지. 개인적으로는 미래소년 코난과 묘하게 겹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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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의 교과서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 현대음악의 구세주

 

예술 앞에 현대가 붙은 분야는 난해하다는 선입견에 시달린다. 혹은 전위적이거나. 미술이 대표적이다. 대형상어를 반으로 잘라 수족관에 넣어 유명세를 탄 대미언 허스트를 보라. 현대미술은 상업성과 결합되어 스타 작가를 계속 배출하고 있다. 반면 현대음악은 지리멸렬하다. 백남준에 버금가는 작곡가가 있는가? 곧 미술이 설치로 방향을 틀어 성공을 거둔 반면 음악은 멜로디와 가락을 잃으며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 이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영화다.

 

현대음악과 영화는 초창기때부터 동반자관계였다. 기술적 한계로 무성영화밖에 만들 수 없을 때 영사기 돌아가는 소음을 없애기 위해 음악을 덧붙인 것이 출발이었다. 유성시대로 넘어가면서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으며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오늘날 영화음악은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대규모 연주로 변모했다. 곧 영화음악만을 전문으로 작곡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만약 스타워즈가 메인 음악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죠스에서 상어떼들이 사람들을 공격할 때 등장하는 긴박한 사운드가 빠졌다고 생각해보라. 완전히 팥없는 단판빵이다.

 

<스코어>는 영화음악의 시작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짧고 강하게 보여준다. 존 윌리암스. 한스 짐머, 엔리오 모니꼬레 등 그 이름만을로도 불멸이 된 작곡가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만약 영화가 없었다면 현대음악은 완전히 박제된 전통소리를 변질되었을 것이다. 마치 국가에서 장인으로 인정하여 생계를 책임지며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천연기념물로 전락하고 말았겠지.

 

덧붙이는 말

 

개인적으로는 필립 글래스가 빠진게 무척 아쉬웠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계보가 복잡하다. 정통 클래시컬 음악을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밴드 출신도 있다. 물론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출신이 무슨 상관이겠냐만 그래도 영화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인물을 배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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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영어에는 한 단어에 여러 뜻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창제자가 분명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가 누적되어 다양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Gift도 그 중 하나다. 우리에게는 선물로 더 익숙하지만 재능이기도 하다. 언뜻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흔히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부모의 노력이나 주변환경 혹은 친구나 선생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다. 곧 재능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준 선물같은 것이다. 만약 어떤 분야든지 빼어난 실력으로 인정을 받으며서도 자기만의 노력으로 그 업적을 이루었다고 여긴다면 그는 재능의 본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 정치인이 약 30여년간 닦아온 본인의 아우라를 한순간에 걷어찼다. 혹시 그는 자신의 재능이 많은 사람들의 바램덕인 줄 몰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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