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미투 운동 이후다

 

 

미 투 운동으로 예술가들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 때 연예계를 휩쓸었던 학력위조 파문을 연상시킨다. 분명한 건 관행이었건 실수였건 과거의 행태가 더이상 자리잡을 수 없게 되었다. 크게 보면 낭만주의 예술가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예술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밤새워 글을 쓰거나 온갖 기행을 일삼으면서도 천진난만하고 돈에 어두워 사기를 밥먹듯 당하면서도 고귀한 정신은 결코 잃지 않는. 사실 이런 정의는 근대와 더불어 탄생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인은 귀족이든 왕족이든 사대부든 철저하게 특정 계급에게 봉사하는 천민이었다. 동시에 특정 기량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장인이었다. 바흐가 대표적인 예이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소심하게나마 반항을 할 수 있었다. 곧 예술가는 기술자이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었다.

 

예술이 자유와 동의어로 취급받게 된 것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문화도 소비의 대상이 되면서 다양한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리버럴해진 것이다. 그 결과 괴팍하거나 특이할수록 더욱 각광을 받았다. 반 고흐가 그 예이다. 비록 살아있을 때는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죽고나서는 과다할 정도로 추앙받았던 이유는 그의 작품 자체보다 기행이 어필해서다.

 

우리 예술가의 전형은 일제강점기 때 형성되었다. 일본을 휩쓸던 낭만주의 사조를 그대로 본따 너나 할 것 없이 폼을 잡았다. 엄밀하게 말해 이상의 작품도 이 계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식민지 시대였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대두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낭만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사조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낭만주의는 순수주의로 포장되어 예술가들을 더욱 기이한 존재로 만들었다. 동시에 여성편력을 포함한 난잡한 행동도 너그럽게 보아 넘기고 더 나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민중예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극적인 전환을 이룬 인물이 있으니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스승의 도움이나 추천을 받아 문학잡지에 글을 연재하며 명성을 얻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본을 떠나 다른 나라를 떠돌며 영어문법으로 일본어 소설을 썼다. 초창기 그에 대한 악평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시에 그의 남다른 집필방식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소설가 답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십킬로미터를 뛰고 밤늦게는 절대 글을 쓰지 않는 샐러리맨같은 일상은 예술가의 로망을 완전히 짓밟았다. 게다가 소설은 알듯말듯 요상한 추상세계를 헤매고. 만약 그가 다른 국가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하루키는 완전히 매장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무라카미를 흉내내는 몇몇 작가들이 있었으나 단지 겉모습뿐이다. 어깨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쓸 줄 아는 소설가는 없다. 초창기 김연수나 김영하가 흉내를 낸 적은 있지만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진지해지고 말았다. 예순 넘은 하루키가 할아버지같은 글을 쓰고 있는가? 스티븐 킹은 인생은 어쩌구 따위의 괘변을 나불거리는가? 만약 자기 나이 또래 작가가 그렇게 말하다면 바로 퍽큐를 날렸을 것이다. 왜 우리는 하나같이 조금 나이만 먹으면 원로 대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실력이 없으니 권위라도 세워보자는 수작이다.  

 

이름이 거론된 이들은 자의반 타의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문제는 미투 운동 이후다. 과연 그들을 대체할말한 새로운 세력이 있는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비슷한 무리들이 집단으로 다시 권력을 잡지 않을까? 여전히 정부에 줄을 대고 예술가는 고독해야 한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대면서. 차라리 확 망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마치 오로지 성적을 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빙상연맹을 해체하고 당분간 메달은 못따도 좋다는 각오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깟 예술따위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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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사람이다 -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한윤정 지음, 박기호 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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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보게 되는 책이 있다. <집이 사람이다>도 그렇다. 얼마나 근사한 타이틀인가? 그러나 멋들어진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단호히 두번 다시 눈길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현명하게도 한윤정은 그러지 않았다. 화려한 겉치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사람들의 집만 열미울정도로 쏙쏙 골라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집은 소설가 조경란이다. 그가 오랫동안 봉천동 쪽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 경사진 곳에 자리잡은 다세대 주택은 우리가 흔하게 보는 그런 집이었다. 그러나 그 안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책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다. 단지 서적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주인의 손길을 탄 티가 역렬한 정갈한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경란은 여전히 그곳에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쪽방에서 2층 서재로 내려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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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을 가다 - 천년의 숲길 위에 피어난 찬란한 역사의 현장, 오대산, 개정판
자현 스님 지음, 하지권 사진, 정념 스님 감수 / 조계종출판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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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산이 그렇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국은 0퍼센트 이상이 산지이기에 어느 곳을 둘러봐도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드넓은 대평원은 상상에서나 가능하다. 가뜩이나 좁은 땅에 산까지 많으니 사람 살 곳이 적다며 투덜대던 역사가 오천년이 넘었는데 먹고살만해지자 산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숲을 이룬 산이아말로 천혜보고라는 식으로.

 

산을 오르고 내린지는 오래되었다. 아주 어렸을 아버지를 따라 도봉산을 오르다 지금은 매주 한차례 관악산에 간다. 지리산이나 설악산같은 험산도 가끔 다니곤 했는데 지금은 오로지 관악산만 간다. 그 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게 간사해서 요즘은 자꾸 오대산이 땡긴다. 동계올림픽 영향도 있지만 월정사를 안고 있는 오대산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오대산을 가다>는 나같은 산 애호가에게는 딱인 책이다. 단지 산세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까지 되짚어봄으로써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냥 가도 좋은 산이지만 이 책을 읽고 간다면 훨씬 더 감동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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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버리기 연습 -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
메리 램버트 지음, 이선경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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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미니멀리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그 진원지는 일본이었다. 동경대지진 이후 가뜩이나 덧없음을 숭상하는 일본인들이 자연재해 앞에 물건이 무슨 소용있으냐며 극도로 줄여 살기 운동붐이 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멋들어진 트랜드였지만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현관 문 앞에 안쓰는 물건을 정리하여 쌓아두고 수시로 버리고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더이상 무언가를 사들일 의욕이 생기지 않게 되자 그럼 거꾸로 내다버릴것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빈 공간들이 드러나니 마음이 훤해진다. 무엇때문에 저 자리에 두었는지 후회가 될 정도다. 그러고보니 집은 어느새 물건들의 창고가 되어 있었다. 딱히 많은 것들을 사지 않았는데도 살다보면 이것저것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그 때 그 때 치우지 않고 귀찮아서 아까워서 언젠가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어느새 점령당하고 만다.

 

<물건 버리기 연습>은 정리 초보자 용 책이다. 곧 왜 치워야하는지 의문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서적이다. 저자는 물건 버리기 전과 후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자,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가? 우리가 모델하우스나 호텔에 가서 감탄하는 이유는 인테리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집을 그렇게 하지말하는 법은 없다. 물론 살림을 하다보면 아마래도 때가 묻겠지만 물건이 쌓여 생기는 피로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 당장 필요없는 물건들을 끌어내어 하루에 한개씩만 버리는 훈련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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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와 2부로 나누어 전개되는 듯한 영화 <기억의 밤>. 연극무대에 올렸다면 더 좋을뻔 했다.

 

진부한 아이디어, 뜬금없는 반전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살짝 다르다. 무심히 왔어?라고 말해야 하는데 왔어요라고 답한다. 이상하지만 차마 왜 그러는지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지난달 술값으로 왕창 나간 카드비가 여전히 마음에 걸려서다. 그러고보니 애들도 이상하다. 왠일로 얌전하다. 첫째와 그렇다쳐도 둘째는 아빠한테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나이가 훌쩍 먹었나?

 

<기억의 밤>는 누구나 한번 경험했을법한 기이한 공상에 기반하고 있다. 곧 내가 알던 모든 사람이나 상황이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것인듯한 느낌. 영화는 이사로 시작한다. 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첫날밤에 발생한다. 전주인이 놓고 간 집이 가득찬 이층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감지된다. 게다가 형도 이상하다. 분명히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오른쪽이 절룩거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드 조금씩 다르다. 대체 이 놈들 정체가 뭐지?

 

사실 이런 설정은 진부하다. 이미 헐리우드에서는 써먹을 대로 써먹은 기법이다. 나를 속이려고 모두가 작당하고 미궁에 빠트린다. 결국 비밀은 엉뚱한 곳에서 밝혀지는데. 이 영화도 이 방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배경만 바뀌었을 뿐. 그러고보니 긴장감보다는 과장된 강박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곧 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대로 쭉 밀어붙여 스릴러로 가져갔다면 그나마 열린 결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반전을 만들어 이게 뭐지라는 허탈감을 자아낸다. 만약 후반부가 강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전반부가 워낙 밀도가 높았기에 도리어 맥이 빠진다. 쓸데없는 잔재주 위주의 재치가 영화를 망쳤다. 그럼에도 강하늘의 연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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