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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심리 상담집
타냐 바이런 지음,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 집에서는 한국일보와 뉴욕 타임스를 구독한다. 인터넷 시대에 왠 종이신문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일보를? 논조가 비교적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곧 사실 보도를 중심으로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게 한다.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건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총기사고가 나면 용의자를 찾아내 죽일듯 패는게 아니라 왜 그런 짓을 했을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에 대한 글도 그랬다.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관계를 가진 청년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했다. 우리같으면 죽일 놈이라고 난리를 쳤을 텐데 기자는 소녀가 과연 성감정을 느꼈을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를 주제로 삼았다. 곧 미성년자도 성욕을 가지는지가 쟁점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또 그런 글을 신문에 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섬뜩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상식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일들이 사실은 지극히 평번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주장한다. 타냐 바이런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충분한 상담을 통해 동기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곧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조건에 의해 움직인다.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우후죽순으로 관련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대부분은 파렴치한이나 싸이코패스로 몰아가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죄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위와 환경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곧 젊고 예쁜 여성들이 넘쳐나고 겉보기에는 자신에게 순종적으로 보이고 처음엔 미심쩍어하며 건드렸는데 의외로 반항하지 않자 저들도 좋아하는구나라는 착각에 빠져 수렁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다. 이런 범죄(?)는 초반에 바로잡지 않으면 상습범이 되고 만다. 아마도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죄가 뭔지 잘 모를 것이다. 왜 그 때 항의하지 않았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