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정 선수가 22센티미터 차이로 오백미터 경주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곧이어 실격패가 되고 말았다. 최 선수는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과연 공정했는지는 의문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선수가 스포츠맨(워먼)쉽을 발휘할 수 있을까?
우리 동네,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먼트 단지 앞 도로를 건널 때면 늘 불안하다. 분명히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왔는데도 차가 쌩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너고 있을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나 화가 나서 차를 쫓아가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단순히 운전자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조사해보니 코너이고 도로가 좁아 차들이 커브를 돌다 갑자기 서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원인을 알았으니 시청이나 교통관련부서에 진정을 낼까 생각중이다.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티브이로 보았다. 여자 5백미터. 한국의 기대주 최민정이 결승에 올랐다. 지금까지 한국은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아니 쇼트 강국인 우리가. 알고보니 단거리에서는 아무래도 체격조건이 좋은 서양선수가 유리하단다. 아무튼 치열한 접전끝에 아쉽게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2등. 아쉽지만 그게 어디냐며 최 선수를 위로하려는 순간 순위가 뒤바꼈다. 1위로 올라선게 아니라 패널티로 탈락. 이럴 수가?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내가 보기엔 캐나다 선수가 도리어 계속 최민정을 밀치던데. 순간 도로가 떠올랐다.
쇼트트랙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트랙에 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다보니 당연히 자리다툼이 치열해진다. 특히 500미터의 경우 그야말로 순식간에 결정이 나기 때문에 몸싸움은 격렬하다. 단순히 스케이트를 잘탄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상위 선수들이 과열되면서 죄다 넘어지고 꼴지가 1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경기의 일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변칙이 지나치게 많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쇼트트랙은 원초적으로 페어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들간에는 실력차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반칙을 쓸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건 아니면 암묵적이건. 사실 우리가 개발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결승선 앞 스케이트날 밀어넣기도 정직하게 말하면 꼼수가 아닌가? 늘 대표선발을 두고 잡음이 많은 것도 단지 파벌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쇼트트랙 경기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는지?
같은 날 (2월 13일) 열린 천오백미터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은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김민석 선수가 동메달을 따서가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의 쾌감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경기에 몰두하는 선수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여자 스노보드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클로이 킴도 멋졌다. 상대 선수와 부딪치는 일 없이 오로지 자기의 기량만으로 승부를 하는 경기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기 때문이다. 이어폰으로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즐기듯이. 반면 쇼트트랙은 지나치게 살벌하고 선수들간 경쟁이 지나쳐서 스포츠맨십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볼 때는 심장이 두근두근하지만 막상 보고나면 왠지 우울해진다. 단지 우리 선수가 실격으로 탈락해서만은 아니다.
덧붙이는 말
쇼트트랙을 폄하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해당 종목 선수들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는가? 그러나 스포츠는 국가를 대표하기에 앞서 선수 스스로 즐거워야 한다. 동시에 승패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쇼트트랙은 너무도 많은 변수로 인해 운동경기의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실제로 뛰는 선수나 보는 관중이나 모두.
사진출처: 오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