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지연 공연 모습. 사회주의 예술의 마지막 보루. 감동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조금 더 따스한 시선이 필요하다
북한 삼지연 악단의 공연을 티브이로 보았다. 당연히 생중계로 해줄줄 알았는데 녹화방송이었다. 약간 김이 빠진 느낌도 들었지만 아무튼.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서.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보수 정권 9년 집권탓에 북한에 대한 적대심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핵심은 통일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곧 육이오 전쟁을 겪은 세대가 나이가 들어 이산가족들도 세상을 떠나면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 명제가 빛이 바래고 있다. 체제의 차이보다는 경제적 격차가 더 크게 작용했다. 그 결과 북한은 필사적으로 올림픽에서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한 노력하고 있지만 반응은 어째 냉냉하다.
그래서인지 한결 차분한 마음으로 삼지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총평을 하자면 지루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회주의 예술에는 변함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간혹 짧은 팬츠를 입고 발랄한 춤을 추고 남한의 가요를 부르고 기예에 가까운 연주 솜씨를 발휘했지만 감흥이 크지는 않았다. 내가 이 정도니 젊은 세대들은 도통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이제 지구상에 사회주의 노선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구나. 언제가 통일이 되면, 당위가 아니라 명제다. 이유는 합치는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북한의 예술은 우리의 전통문화처럼 보호해줘야만 유지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인민과 당을 위해 충성을 다짐하는 사회주의 예술의 가치는 이제 유물로나 남겠구나.
덧붙이는 말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고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미 체제경쟁에서 북한은 완패했다. 그들의 핵무기 도발 위협은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몰릴 때까지 몰리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어떻게해서든 막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우나 고우나 붙어 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따스한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