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격신과 우주전투장면. 로그원은 클래식 팬들의 향수를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음 편은 로그 투인가?

 

스타워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캐릭터나 내용이 너무 널리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리어 영화가 일종의 부록 내지는 서비스 상품같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이야기가 앞으로 갔다 뒤로 밀렸다 하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마니아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스타워즈 로그 원>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통 스타일로 되돌아왔다.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을 뿐 개인의 복수와 집단의 대의라는 갈등구조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시 스타워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격적과 우주대전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특히 마지막 30분 정도를 장식한 스페이스워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현란했다. 그러나 또다시 나올 것을 알기에 더이상 스타워즈를 봐야 하는 곤혹감이 든다. 차라리 기한을 정하든 아니면 결말을 미리 예정하고 앞으로 몇편이 더 나온다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싶다. 비슷한 줄거리에 특색있고 개성있는 인물만 들락날락하는 지금의 패턴은 식상해도 너무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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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종류 불문 시험은 긴장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만약 희희낙락하거나 잠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낙오자라는 자괴감이 늪처럼 자신을 끌어당긴다. 이왕 볼거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컨닝 스릴러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던 여러 이유중 으뜸은 시험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악몽에 꼭 등장하는. 지금 돌이켜보면 누구나 다 긴장하며 마음 졸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유독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점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수준을 늘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중 2때였다. 중간고사건 쪽지시험이건 일정이 발표되면 바로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티브이나 신문은 물론 방해받을 요소를 차단하고 오로지 공부만 했다.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덕분에 성적은 좋았지만 멘탈은 너덜너덜해졌다.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오로지 암기위주로 공부한 후유증이었다. 그 부작용은 중3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고등학교 때는 완전히 그로키 상태에 몰렸다. 정작 점수를 올려야 할 시기에 기운이 다 빠진 셈이었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를 보며 까맣게 잊었던 중고등학교때가 떠오으며 나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흘렀다. 딸의 출세를 위해 명문고등학교로 전학시킨 아빠. 그러나 그 학교는 이른바 금수저들의 천국. 문제는 시험점수가 엉망이라는 것. 돈과 시험점수라는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결국 발각이 되고 장학금을 몰수당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데. 진짜는 2탄. 미국 대학에 필요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시차를 이용하여 시드니까지 원정을 하게 되는데 과연 결과는?

 

 

소재도 흥미로웠지만 뻔한 전개를 거듭 뒤집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폰피라야 감독은 컨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경쾌하며서도 마음 졸이게 이끌고 있다. 특히 중간중간 미래 시점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결과를 예측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전망은 멋지게 되집힌다. 결국은 실토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태국 영화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덧붙이는 글

 

시험에 대한 강한 압박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아시아는 유달리 교육열이 강하다. 단지 지식욕심이 커서가 아니라 출세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간판이다. 물론 다른 세습적 수단에 비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획일적 방식이라는 단점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좋은 대학)=성공'이라는 등식이 사라져야 가능한 일인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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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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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서적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을 활용하라고 하다가 밤늦게 자신만의 여유를 가지라고 강조한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고. 그럼에도 한가지 미덕이 있다면 그건 해결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이 조건에 딱 맞는 책이다.

 

이것 저것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기 보다 뺄셈의 법칙을 작용하여 행복하게 살라는 내용이다. 어찌보면 황당한 주장인데 술술 읽히는걸 보면 저자의 글솜씨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적절이 살려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실력이 빼어나다. 그러나 마크 맨슨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혹은 실천에 옮겼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조언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쾌락, 성공, 지식, 긍정과는 거리가 멀다. 중요한 건 좋은 가치와 좋은 기준을 못 박아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즐거움과 성공은 그 결과로 자연히 따라온다."

 

얼핏 보면 좋은 말 같지만 과연 실생활에서 적용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마치 늙은이가 인생의 교훈이랍씨고 늘어놓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한번 쭉 훑어보고 버려도 상관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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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eeee 2018-02-02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글이 정말 잘 잀히는건 인정.

카이지 2018-02-0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동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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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상은 없다. 그러나 해석은 가능하다. 문제는 객관성이라는 잣대다. 히스토리에 들이댄 중립의 칼날은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도와 달리 피눈물을 나게 한다. 예를 들어 쉰들러 리스트를 언급한다고 해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엄연히 우리를 유린했으며 그중에는 위안부로 불리던 성노예도 있었다. 이 사실은 변함없다.

 

박유하는 달리 주장한다. 약 20만 명에 이른다는 숫자는 과장이며 위안부 가운데 강제로, 그것도 일본군이 직접 착출한 경우는 없다고 역설한다. 대부분의 조선인 위안부는 가난 등의 이유때문에 반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며 이들을 모집하고 데려간 이들 또한 한국인들이었다. 요컨데, 일본 제국주의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위안부를 동원한 적은 없다. 따라서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현재 일본 정부가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입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궤변이다. 그가 제기하는 오류는 사소한 것일뿐 역사적 실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유하는 소녀상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한다. 상징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위안부의 본모습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곧 거의 모두가 20세가 넘었으며 속았건 그러지 않았건 스스로 가담한 매춘부라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의 처우도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꽤 괜찮은 조건이었으며 그 중에는 자신을 애국자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휴유, 여기까지는 그녀의 생각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정리해보자. 결국 위안부는 우리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설령 피해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 일본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과다하다는 것이다. 더우기 국제사회에서까지 논란을 확대하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칼날은 일본이 아니라 위안부 동원 과정에 가담했던 조선인들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만약 그의 생각을 소설로 옮겼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차피 거짓이니까. 그러나 학자로서 마치 새로운 진리인양 위안부를 대하는 것은 역겨운 짓이다. 그는 반발한다. 학문의 자유도 없냐구? 자신은 사료에 근거해 엄정하게 연구한 것뿐인데.  그렇다면 생존 위안부를 만나보기라도 했는가 묻고 싶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있다면 그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증거들은 한낱 종이뭉치에 불과하게 된다. 어디서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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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 84>가 럭셔리 하우스를 두고 미술학원에 더부살이하는 이유는 단지 허세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길들여진 안락한 습관과 결별하기 위해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단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뭔가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내적 고통에 시달린다. 수월하게 쑥 하고 결과물을 내놓은 이가 있다면 그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오리지널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만큼 괴로우니까.

 

기안 84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매주 인터넷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늘 1위를 지키던 그의 만화가 3등까지 떨어졌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 84는 순위가 떨어진게 중요한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가 새로 이사한 멀쩡한 집을 두고 한다리 건너 알게된 선배의 화실에서 숙식을 하며 수험생들과 부대끼면서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단지 괴짜여서가 아니다. 영감이 생기는 장소라면 어디든 가야한다는 절박함이다. 실제로 기안84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걷고 뛰고 먹고 마시고 소리를 지른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당사자를 포함한 창작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십분 공감이 간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느낀 감성을 짧게 적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무엇인가에 열중하느라 못한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억지로라도 문장을 만들어 깔끔한 글은 생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펜을 내려놓고 혹은 노트북을 닫고 영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은 어슬렁거린다. 천상 게으른 놈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제가 다가오고 전체적인 내용이 어른거리고 결정적으로 첫 문장이나 제목으로 뽑을 만한 글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때부터는 밤낮없이 열중하게 된다. 누가 말리든 상관없이 창작자의 숙명을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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