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인이 특별한 분장을 하지 않아도 웃기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지 않아도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도 인기가 있는 시대를 맞아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개그우먼 김숙

 

 

 남이 부르지 않으면 내가 만들지 뭐

 

 

 

여성 예능인들 기운데 최근 대세는 박나래다. 코미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능, 토크, 여행방송까지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재치있는 입담과 발빠른 순발력, 그리고 남다른 사생활(나래바)이 한몫했다. 게다가 기안84와의 케미까지.

 

그러나 주인공은 바뀌게 마련. 어느새 김숙이 치고 올라왔다. 의외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따지나 뜰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 나이 마흔에 전성기라니. 새롭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걸크러시 마력덕분이었다. 남성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고정된 성역할에 불만이던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실제로 김숙은 토크프로그램에서도 거침없이 여성을 대변하는 발언을 자주한다. 그럼에도 공격을 받기 보다는 응원하는 댓글이 더욱 많은 이유는 웃음으로 승화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실 김숙은 한 때 따귀소녀로 유명세를 탄 것 말고는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실제로 개그우먼이라는 직업을 그만둘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한다.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속성때문에 인기가 떨어지면 바로 끝장이다. 그는 자포자기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여행이었다. 짬만 나면 가방을 싸고 돌아다녔다. 처음엔 머리를 식히려고 한 것이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노하우도 생기고 아이디어도 샘솟았다. 그러다 드디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당당하게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여성이 각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김숙을 보면 단순히 웃기는 예능인이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스스로 비혼임을 밝히는 것도 그렇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해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내게 된 것도 그렇다. 스스로 재주없음을 알기 때문에 언제든 방송을 떠날 수 있다는 여유로움도 마음에 든다.

 

최근엔 남이 부르지 않으면 우리가 만들지라는 배짱으로 방송국을 설립했다. 송은이와 의기투합하여 만든 판벌려가 주인공이다. 팟케스트로 시작한 여성위주의 프로그램을 티브이로까지 확대한 셈이다. 그의 전성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설령 인기가 다소 떨어진다고 해서 기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따라서 언제까지나 응원할 것이라는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현재에 늘 충실하자라고는 말하고 싶다. 아마도 김숙씨의 모토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처음엔 티브이였다. 성에 차지 않는다. 전자레인지가 눈에 뜨인다. 베란다로 가져가 11층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쾅하는 소리가 들린다. 화가 풀리지 않는다.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그리고 또 무언가 날려버릴 것이 없는지 찾아헤맨다.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마구. 곧이어 경찰이 들이닥친다. 지난주 인천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는 50대 남자였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혼자였다.

 

이른바 잘사는 측에 속하는 오이씨디 국가들 가운데 한국은 자살율 1위다. 작년만 그런게 아니다. 13년간 부동의 넘버원이다. 하루에 평균 서른여섯명, 십만 명당 스무명이상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중에서도 절반이상이 40대후반에서 60대 초반이다. 개인의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지나치게 많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도 얼마나 많은데. 우울증때문이라는 진단도 납득하기 어렵다. 울적하다고 해서 곧바로 자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뭘까?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곧 살아갈 희망이 없어서다. 평소에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부족해서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공허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까닭은 자신이 놓인 처지를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곧 자신의 고통을 과장해서 느끼는 바람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놓친다. 내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한번뿐인 인생을 던지기가 쉽지는 않다. 물론 오죽하면 자살을 할까라는 시각도 인정한다. 일종의 질병으로 보는 마음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스스로 삶을 끊게하는 정당한 이유는 절대 될 수 없다. 왜? 당신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집안 살림을 창문밖으로 던져버리는 사람앞에 아내가 되었건 친척이 되었건 이웃이 되었건 누군가 있었다면 과연 그 남자는 미칫 짓(?)을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하면 혼자라도 남의 시선을 느끼는 마음이 있다면 험한 말과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모든 싸이콧 짓은 목적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인간은 겉보기에는 이성적인 존재같지만 무리지어 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동물이다. 억지로 직장에 다니고 출퇴근 교통길에 시달리며 투덜대도 내심 소속되어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반면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고 가까운 가족마저 멀어지면 순식간에 외로운 늑대나 여우가 되어버린다.

 

만약 마땅히 속할 집단이 없고 또 그럴 마음도 없다면 그때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수밖에 없다. 원래 인간은 지배와 질서를 숭배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따를 강제가 없다면 스스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냉수를 마신다거나 자기 전에 팔굽혀 펴기를 이십회 하는 식이다. 어떤 것이든 좋으니 한가지를 정해 꾸준히 해나가다보면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살아온 기억이 역순으로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한다. 사실이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천운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사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바이크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동시에 내 삶이 초고속 열차 창문에 비친 영상처럼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의 기원>은 지구를 넘어 우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금까지의 정설은 빅뱅이다. 어느 한순간 폭박하듯 생겨났다. 기독교인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반박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걸. 먼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매일 저녁 집안을 청소한다. 꼼꼼하게는 아니다. 대충 걸레질을 하는게 전부다. 당연히 구석에는 먼지가 쌓인다. 처음에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확 눈에 뜨인다. 먼지가 스스로 굴러다니면서 다른 먼지들과 뭉쳐 덤탱이가 된 것이다. 우주도 그렇게 생겨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쾅하고 터지면서 온갖 파편들이 헤엄쳐 다니며 서로 부딪치고 엉키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낸다.

 

우주의 탄생과 지금까지의 역사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지구는 23시가 지나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인간은 마감에서 백분의 사초를 남기고서야 등장한다. 우주라는 시간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사실 우주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생명종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다. 우주라고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모든 것의 기원>은 예일대 과학강의를 모은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비코비티도 말했듯이 슈퍼카를 타고 휙 지나가는 식의 내용이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서사시를 이렇게나마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더불어 최근 가장 큰 환경재앙이라고 알려진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해결의 단초도 찾을 수 있어 유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팰컨
헬렌 맥도널드 지음, 김혜연 옮김 / 경향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지냈는지 아이면 시골에서 살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전형적인 도시아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탈출한 것은 결혼이후였다. 그래봤자 지하철을 타고 가면 20분 거리에 살고 있으니 별 차이가 없다. 곧 자연에 대한 공감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자주 산을 찾는건 어쩌면 읽어버린 어린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팰컨>은 매 이야기다. 이미 <메이블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끈 헬렌 맥너널드가 저자다. 그는 두 책을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굳이 구분지를 필요는 없다. <메이블>이 이야기 요소가 강하다면 <팰컨>은 일종의 매 백과사전으로 보면 된다. 곧 매 뿐만 아니라 매를 둘러싼 사연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비록 매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할지라도 앞으로도 마주할 기회가 없다고 할지라도 읽어서 손해볼 건 없다. 혹시 아는가? 이 책을 보고 당장 몽고행 비행기를 예약하게 될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국인이 쓴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과 우리 작가가 쓴 작품을 비교하여 볼 때가 있다. 글쓴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외국 소설이 더 잘 읽힌다. 희한한 일이다. 모국어가 더 쉽게 읽혀야 마땅한 거 아닌가? 아니면 번역자가 그만큼 빼어나게 우리 말로 옮긴건가? 이유는 단어 선택에 있다. 한국의 작가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해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을 골라 쓰면서 쾌감을 느낀다. 반면 외국의 글쟁이는 어떻게하면 현실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현장언어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답답하게 읽었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문장부터 목에 탁 걸린다.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닌것 같지만 문장이 미묘하게 매끄럽지 않다. 일단 문법적으로 오류다. 우리 말에 "하자 했다"라는 표현은 없다. "하자고 말했다"고 옳다. "자정 넘어'도 어색하다. 12시를 갓 넘긴 시간인지 아니면 새벽 3시인지 알 도리가 없다. 늦은 시간임을 알리고 싶다면 정확한 시각을 밝혀야 한다. 주격 조사 "가"도 어울리지 않는다. "가"는 남이 하는 말을 전할 때 쓴다. "는"이 맞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문장을 고치면 다음과 같다.

 

--> 아내는 도배를 하자고 말했다. 아니 이 시간에? 새벽 1시에.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긴박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덧붙이는 말

 

한국 소설에서 쓰는 상투적인 단어를 보면 치가 떨린다. 부유. 대체 늙은 작가나 젊은 소설가나 왜 죄다 이 단어를 쓰는지. 왠지 권위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그냥 떠다닌다고 쓰면 어디가 덧나나?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재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