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함을 실제로 보여준 마리안느와 마가렛 여사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신부는 교수였다. 파란 눈을 가진.
시민단체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내게 떨어진 일은 사회조사였다. 지역에 나가 의견을 듣고 정리하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메뉴엘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 막상 책자를 보니 성에 차지 않았다. 형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일하는 곳이 있는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우리 단체의 이사였기에 가능했지만 다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내게 그는 마침 자신이 사회조사통계 수업을 하고 있으니 들을 것을 권유했다.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나는 단체의 허락을 받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교수는 내 대답을 듣더니 그렇다면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과제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맙소사. 지금 돌이켜 봐도 희한한 경험이었지만 그 수업 덕에 나는 탄탄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이후 조사관련일을 도맡게 되었다.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나중에 따로 기회가 되면 밝혀드리겠다. 아무튼 특별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우리나라를 찾은 서양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록도의 나병환자를 돌보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두 사람은 누구도 가기 꺼려하는 그곳이야말로 소명을 다할 곳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40년 이상 머물렀다.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떠났다. 이 다큐는 그들의 현재와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한국에서의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목소리였다. 극적이고 과장되지 않게 마치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만난 교수도 그랬다. 그는 교수이기 이전에 신부였고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나중에는 교수직도 걸리적거린다며 그만두고 오로지 사목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도 어느날 사라졌다.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더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겠지만 우리 정서로는 서운함도 있었다. 어떤 선택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신이 온전할 때 전력투구하고 더이상 그럴 수 없다고 느끼면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하게 그만두는 건 보기 좋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오래되면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게 마련이니까.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