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세시대 운운하지만 사실 나이 칠십이 넘으면 몸과 마음 모두 쇠락하기 마련이다. 물론 일부 예외도 있겠지만 젊었을 때에 비해 모든 기능이 쇠퇴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글픈 일이다. 누군들 늙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막상 닥치면 막막할테니까. 그래도 그 나이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보다 일찍 삶을 마감한 분들에 비해 행운이니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정도 연령은 아니지만 자고 일어날 때 늘 개운한 기분이 드는 나이는 아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나 또한 늙어가고 있다. 정직하게 말해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원숙하고 너그러워진다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러기는 커녕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불만만 쌓여 간다. 원인은 간단하다. 육체가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는게 가장 크게 안타깝다. 어느 정도 읽고는 있지만 예전처럼은 아니다. 시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가 버겁다. 흔한 말로 나이 들고 할 일이 없어지면 책이나 읽으며 소일한다는데 사실은 가장 힘든 일중 하나가 책읽기다.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쓰지 않고 시간 떼우기 편한 방법은 티브이 보기다. 그냥 습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티브이를 보는 동안 뇌는 전혀 작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반응만 하기 때문에 도리어 노쇠가 더욱 촉진된다. 괜히 티브이를 바보상자라고 하는게 아니다. 게다가 귀조차 잘 들리지 않으면 크게 틀어놓아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티브이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묘수가 없다. 일을 줄이고 가진 재산을 정리하고 최소한의 살아갈 여비만 남겨두고 소박하게 살아가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조용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없다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헛된 연명을 단호하게 끊어야 마땅하다. 그 결정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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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별시민>의 주무대인 서울시청사. 누군가에는 그냥 그런 관공서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보다 큰 자리로 가기 위한 정치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치판에서 똥물을 묻히지 않으려면,

그냥 손으로 푸면 된다    

 

 

옳고 그름과 선악은 헷갈리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옳음이 곧 선함이며 악은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옳고도 악할 수 있으며 그르고도 선할 수 있다. 이 원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는 정부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투기를 잡겠다며 대출을 조이고 세금을 강화하는 정책은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지만 결과는 도리어 강남을 포함한 일부 지역의 집값을 더욱 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특별시민>은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암투를 다룬 정치영화다. 3선을 노리는 변정우, 그를 보좌하는 선대 본부장 심혁수,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다 스카우트 된 박경이 주요 라인업이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과도 싸워야 하는 적자생존의 격전장에서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결과부터 말하면 한 명은 당선이 되고 또다른 이는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정치판을 떠난다. 과연 이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자못 궁금증이 커져만 가는데.

 

그러나 여러 이유로 금기시되던 정치를 가장 리얼하게묘사한 이 영화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선거를 앞두고 개봉하여 인기를 끌줄 알았는데 도리어 역풍을 맞은 셈이다. 아무리 영화에서 음모와 암투, 배신을 박진감있게 묘사해도 현실 정치는 그보다 더 막장을 보여주니 그쪽으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실제로 현역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재미있다. 끝까지 박진감을 유지하며 뻔한 결말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있다. 물론 기자역의 심은경이 제 몫을 다 한것인지는 의문이지만. 평소의 그답지 않은 원톤의 연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말

 

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한몫했다. 특히 선거를 앞둔 캠프 묘사는 전율이 일어날만큼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칼같은 냉정함과 과도한 애정이 넘치는 그곳에서는 항상 스릴을 즐기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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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 일본 TV드라마
이와이 슌지 감독, 오키나 메구미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서 이와이 순지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러브레터>다. 당시만 해도 일본문화 수입은 자유롭지 않아 대학가를 중심으로 복사판을 보곤 했다. 그중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바로 <러브레터>다. 세련되고 감상적인 대사전달과 설경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하도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금기가 깨져버린 덕을 본 것이다.

 

이후 <러브레터>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는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빠짐없이 개봉되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사춘기 감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정서의 출발은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이다.

 

티브이 드라마로 제작된 이 작품은 단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을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날. 다들 들떠있는데 나즈나만은 우울하다. 이혼을 하게 된 엄마가 동네를 떠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짝사랑하는 친구가 등장하고 난데없이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면 둥근지 납작한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나즈나는 마음에도 없이 수영시합에서 이긴 동급생에게 자기의 운을  맡기기로 하는데 노리미치는 훨씬 앞섰음에도 턴하면서 당한 부상으로 지고 만다. 이런 제길.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느닷없이 인생극장으로 변한다. 수영내기를 하는 대신 집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설정이 바뀌고 노리미치는 나즈나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함께 가출을 하고 다시 돌아오고 수영장에서 같이 헤엄치며 꿀바른 사탕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친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제서야  이 영화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마침표를 찍는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녀와의 풋사랑을 아쉬워하며.

 

덧붙이는 글

 

올해초 이 영화의 에니메이션판이 개봉되었다.  아직 보지 않아 판단을 내리기 곤란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아우라가 더 세지 않을까 싶다. 혹시 만화판을 보시고 실망하셨다면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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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포스터를 메인으로 썼다면 감동이 0.1퍼센트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캔 스피크, 잊어버리면 지는 거니까

 

한동안 영화를 보며 눈물흘릴 일이 없었다. 언제가 마지막인지 가물거릴 지경이다. 한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극장을 찾는데도. 감수성이 메말라서도 원인이지만 눈물샘을 자극할만큼 잘 짜여진 영화가 드문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게 2017년에는 보는 영화마다 족족 눈물이 터져 곤혹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아이 캔 스피크>였다. 단순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게 아니라 꺼이꺼이 소리가 날 정도로 슬펐다. 쑥스러우면서도 아직도 실컷 울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게 다행스러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잘 만든 영화다. 사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서사로 휘몰아치는 전개도 좋았고 인물들간의 대립과 화해를 변화무쌍하게 구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가는 구성도 놀라웠다. 거기에 나문희와 이지훈의 완벽한 연기, 그리고 작은 역이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활약을 펼친 조연들도 별처럼 빛이 난다.

 

그럼에도 굳이 최고의 수훈자를 꼽자면 단연코 김현석 감독이다. 그는 미시적인 조각들을 이어붙여 거시적인 메시지로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전작 <스카우트>에서도 선동열 영입이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광주항쟁을 이끌어낸다. 마치 <택시운전사>가 시위자나 진압군의 시각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시선이기에 더 극적인 효과를 거둔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계몽영화로 흐를뻔한 흐름을 감독은 유머와 재치, 그리고 울음을 버물여 한바탕 한풀이를 멋들어지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추석날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나문희를 방문하는 이지훈과 동생씬에서부터 눈시울이 시큰해지더니 영화가 끝날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평처럼 눈물, 콧물에 이어 머리뒤쪽에서도 울음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덧붙이는 글

 

좋은 영화란 쓸데없는 장면이 단 한컷도 없어야 한다. 물론 감독이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대한 모든 씬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개연성이라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 어려운 일을 매끄럽게 해냈다.

 

나문희가 영어를 배우게 되는 동기, 이지훈이 그녀를 가르치게 되는 이유, 둘이 사이가 좋다가 틀어지는 계기, 나문희가 용기를 내게 된 결정적 전환점, 동네 사람들과 상인들간의 유대가 변화하는 과정, 커밍아웃 이후 머쓱해진 사이가 다시금 극적으로 친하게 되는 모티브, 어렵사리 미국에까지 갔지만 순탄하게 연설하지 못하게 된 까닭, 그 장벽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사진 한 장, 그리고 대단원을 장식하는 몸에 새겨진 수치의 흔적들. 이 모든 장면들이 화살처럼 마구 쏘아올려져 관객들을 격량의 한가운데로 몰아간다. 정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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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틀 박사 이야기 둘리틀 박사의 모험 1
휴 로프팅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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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씨는 소문한 애견인이다. 어렸을 때는 개집에서 잘 정도였다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다고 그가 다른 동물을 아끼는 건 아니다. 낚시도 엄청 좋아하고 닭고기도 즐기는 걸 보면 말이다. 곧 개를 키우는 목적이 개 자체를 위한다기 보다 개인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인 셈이다. 진정한 동물애호가는 아닌 셈이다.

 

<둘리틀 박사 이야기>는 고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소재가 동물이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커서 세계적인 과학자나 시민운동가가 된 이들이 꽤 많다. 리처드 도킨스나 제인 구달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흥분을 자아낸 것인가? 우선 모든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설정을 들 수 있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시라,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와 대화를 하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집에 온다고 믿는 것처럼 동물도 말을 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둘리틀 박사는 모든 어린이들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준 것이다.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들과 함께 떠나는 모험은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결국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책은 그 출발이다.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환자들이 다 떠나버린 의사에게 동물 먹이 장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는 그만두시고 이제 수의사가 되는건 어때요?”

 

이 제안은 이후 거대한 스토리의 촉매역할을 했다.

 

덧붙이는 글

 

사람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가 붙으면 우리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누군가를 짓밟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포장하기 위해 쓰는 말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은 순수한 마음과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휴 로프팅은 엔지니어 출신임에도 기계를 만지기 보다 글을 쓰는 작업이 더 즐거움을 깨닫고 작가가 되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말과 개들이 다치고 죽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부상으로 병원에 있으면서 이 구상을 실행에 옮겼다. 편지형식으로 그림까지 곁들인 이 이야기의 독자는 미국에 있는 두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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