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이 포스터를 메인으로 썼다면 감동이 0.1퍼센트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캔 스피크, 잊어버리면 지는 거니까
한동안 영화를 보며 눈물흘릴 일이 없었다. 언제가 마지막인지 가물거릴 지경이다. 한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극장을 찾는데도. 감수성이 메말라서도 원인이지만 눈물샘을 자극할만큼 잘 짜여진 영화가 드문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게 2017년에는 보는 영화마다 족족 눈물이 터져 곤혹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아이 캔 스피크>였다. 단순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게 아니라 꺼이꺼이 소리가 날 정도로 슬펐다. 쑥스러우면서도 아직도 실컷 울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게 다행스러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잘 만든 영화다. 사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서사로 휘몰아치는 전개도 좋았고 인물들간의 대립과 화해를 변화무쌍하게 구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가는 구성도 놀라웠다. 거기에 나문희와 이지훈의 완벽한 연기, 그리고 작은 역이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활약을 펼친 조연들도 별처럼 빛이 난다.
그럼에도 굳이 최고의 수훈자를 꼽자면 단연코 김현석 감독이다. 그는 미시적인 조각들을 이어붙여 거시적인 메시지로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전작 <스카우트>에서도 선동열 영입이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광주항쟁을 이끌어낸다. 마치 <택시운전사>가 시위자나 진압군의 시각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시선이기에 더 극적인 효과를 거둔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계몽영화로 흐를뻔한 흐름을 감독은 유머와 재치, 그리고 울음을 버물여 한바탕 한풀이를 멋들어지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추석날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나문희를 방문하는 이지훈과 동생씬에서부터 눈시울이 시큰해지더니 영화가 끝날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평처럼 눈물, 콧물에 이어 머리뒤쪽에서도 울음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덧붙이는 글
좋은 영화란 쓸데없는 장면이 단 한컷도 없어야 한다. 물론 감독이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대한 모든 씬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개연성이라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 어려운 일을 매끄럽게 해냈다.
나문희가 영어를 배우게 되는 동기, 이지훈이 그녀를 가르치게 되는 이유, 둘이 사이가 좋다가 틀어지는 계기, 나문희가 용기를 내게 된 결정적 전환점, 동네 사람들과 상인들간의 유대가 변화하는 과정, 커밍아웃 이후 머쓱해진 사이가 다시금 극적으로 친하게 되는 모티브, 어렵사리 미국에까지 갔지만 순탄하게 연설하지 못하게 된 까닭, 그 장벽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사진 한 장, 그리고 대단원을 장식하는 몸에 새겨진 수치의 흔적들. 이 모든 장면들이 화살처럼 마구 쏘아올려져 관객들을 격량의 한가운데로 몰아간다. 정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결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