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처음 등장한 65세 할아버지 데이비드. 노인은 대접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조금의 배려가 필요한 친구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을줄 아는 열린 마음에 시청자들은 열광하였다. 누구처럼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반찬이 없다며 투정을 부리거나 짐이 무겁다고 발로 차버리는 만행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예절과 매너는 어떻게 다른가?
평소 예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뭔가 억지로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반면 매너는 좋아한다.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절은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되어 집단논리를 강화시키지만 매너는 개인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인간다움과 정의로움을 잃지 않도록 만든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첫 회부터 꾸준히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친구들이 여행을 하는 단순한 포맷임에도 늘 새롭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들을 신기하게 더 나아가 놀라워하는 모습들을 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진한 감동을 선사해준 그룹도 있고 실망을 준 사람들도 있다. 서대문 형무소같이 관광지라 생각할 수 없는 곳을 찾아 역사를 익히는 반면 자기들끼리 왕따를 시키거나 모국과 비교하며 이런 저런 불평을 해대기도 한다. 그 또한 여행이란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진리를 안겨주는 것 같아 딱히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한가지 분명한건 나라의 차이라기 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의 성향이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한자어로 하면 유유상종, 영어속담으로는 '새들도 같은 깃털을 가진 것들끼리 뭉친다'고나 할까?
이번주는 영국이다. 직업이 탐험가인 후퍼씨의 친구들이 방문했다. 흥미로운 건 또래 친구들뿐 아니라 아버지뻘 되는 분도 계셨다는 점이다. 처음엔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연령차이가 나면 서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며 같이 간 사람들을 하인 부리듯 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완벽한 기우였다. 데이비드 씨는 스스로가 놀림감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으면서 함께 어울렸다. 게다가 자기 짐은 스스로 챙기며 그 누구에게도 명령하거나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뻘 되는 동행들이 진심으로 그를 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무심한 듯 배려하며 혹시 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순간 <꽃보다 할배>가 생각났다. 노인들끼리 해외배낭여행을 한다는 발상은 신선했지만 이서진을 종처럼 부리는 광경에는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또한 그 모습을 마치 예의바른 태도로 묘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든 이가 공경받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마치 윗사람이 아랫것들 대하듯 하는 태도에는 짜증이 절로 났다.
글을 쓰는 동안 프로그램 관련 댓글을 보니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나이가 권력을 나타내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는 자세없이 연령의 많고적음을 내세워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는 것이 동양의 미덕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한 대학교수와 출장을 같이 갈 일이 있었다. 출발하는 날 공항에는 부인과 아이도 나와 있었다. 의아했다. 알고보니 따로 해외여행을 간단다. 팔자 좋다. 교수의 아내는 함께 동행한 우리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잘 모시고 다녀오세요" 이런 미친. 내가 교수의 제자도 아니고 일이 있어 가는건데 마치 비서나 조교 대하듯 말하는게 기가 막혔다.
어디 교수뿐이겠는가? 나이 먹은 이들의 꼰대짓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안하무인이다. 하다못해 횡단보도에서도 신호등에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길을 건너며 침을 뱉는다. 저런 노인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며 늘 마음을 다 잡고 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