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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느긋한 생활
아마미야 마미, 이소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형편없는 물건 중에서 타협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행위.
그 과정은 귀찮기만 할뿐 기쁨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못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방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여성으로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게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주거 수준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서울 변두리이긴 했지만 주택에 살았고 동생과 함께이기는 했지만 방이 좁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먼트에 살면서 땅도 제대로 밟지 못하고 공중에 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청년들은 더욱 심각하다. 몸을 누이면 그만인 3평짜리 방에서 거의 모든걸 해결해야 한다. 만약 모두가 자기만의 쾌적한 방을 가질 수만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열악하다. 지진에 대한 우려로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쿄에 사는 프리랜서다. 좁디 좁은 아파트먼트에 살며 언젠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겠다고 꿈을 꾸지만 끝에 이루지 못한다. 내내 알아보고 상상하며 짓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우연히 놀러간 고베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이상향에 가까운 맨션을 발견하고 진진하게 이사를 고민하지만 끝내 실행에 올기지는 못한다. 그 과정이 남 이야기가 같지 않아 마음이 짠하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나마 본인의 취향에 맞는 방과 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삶은 위안받는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먼트는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전월세로 사는 내내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 윗집 배수관이 터져 홍수가 나고 전기배선이 꼬여 한동안 암흑천지에서 살고 현관문 자동키가 고장나 맹추위에 바깥에서 벌벌 떨고 수도계량기는 두 번이나 터졌고 가장 최근에는 히터 모토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세 번째로.
그렇다고 집값이 싼 것도 아니다. 재건축 열기까지 몰아닥쳐 들썩들썩하다. 불평은커녕 행여 전세금이나 월세를 올릴까 찍소리 하나 하지 못한다. 전세금을 빼고 이른바 전원주택으로 갈 생각도 해보았으나 실제 돌아다녀본 결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네의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곧 인프라의 격차가 심했다. 지하철역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쇼핑센터나 도서관같이 지금 사는 곳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없었다. 있더라도 한참을 나가야 했다.
물론 그정도 각오도 없이 주택에 살 수 있겠냐고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무엇보다 일자리가 없었다. 다들 서울에 그것도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잘 갖추어진 인프라와 풍부한 교육기회 외에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지만 내 집을 알아보는 과정이 마냥 허무했던 건 아니다. 보고 느끼고 상상하며 집다운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루지 못할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