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펜싱 선생님
클라우스 해로 감독, 메르트 아반디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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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지배하던 구 소련은 중세의 암흑시대처럼 권력에 충성하지 않는 인간들은 개돼지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운이 좋으면 강제수용소행이고 나쁘면 바로 사형이었다. 아무리 빼어난 선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스토니아 출신 펜싱 영웅 엔델은 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의 징집을 받고 전투에 참전했다. 세상이 뒤바뀌자 그는 부역자 신세가 되었다.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숨죽여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던 펜싱도 그만두고 시골에 틀어박혔지만 본능은 어쩔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학생들에게 펜싱을 가르치게 되면서 실력이 급상승하더니 급기야 전국대회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만 노출이 되고 만다. 엔델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어린 학생들을 독려하는데.

 

성장영화는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준다. 특히 운동경기와 매게되면 더욱 증폭된다. 아무 것도 모르던 학생들이 점차 기술이 늘고 승리와 상관없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스포츠의 매력은 이처럼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한 성과를 얻는다는 데 있다. 이기면 더욱 좋겠지만 지더라도 떳떳한 자부심은 오래 남는다.

 

펜싱이라는 종목은 겉으로는 우아해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브루조아들이나 즐기는 스포츠라며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를 거부하던 심사관은 한 노인의 반발로 무릎을 꿇고 만다. 펜싱의 기원은 검술이며 사회주의 창시자 맑스조차 어렸을 때 배웠다고. 순간 승마가 떠오른다.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종목임에도 왠지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알아보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승마장만 해도 250곳이 넘는다고 한다. 정유라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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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 일과 사랑
툴라 카르얄라이넨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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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베스트 10을 선정하였습니다. 출판년도가 기준이 아니라 제가 읽은 기간을 고려한 것이기에 모두가 신간은 아닙니다. 또한 제 주관적인 선택이기에 취향이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다만 돈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을 책이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참고로 왼쪽은 제목, 오른쪽은 짧은 평입니다.

 

가을꽃: 꿈을 풀어 글로 남긴다면 바로

고충증: 충격적인 데뷰작이란 이런골 두고 하는 말이다

공포박물관: 이토 준지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괴담의 테이프: 결말없이 진행되는 아수라

다섯번째 증인: 법정 스릴러의 고전미를 마음껏 뽐내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희한하게 울적할 때 읽으면 더욱 웃기는 책

우리집 문제: 어머 내 가족도 그런걸

음악없는 말: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편견은 더이상 그만

츠바키 문구점: 일본적인 너무도 일본적인

토베 얀손, 일과 사랑: 무민팬이 아니더라도 예술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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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설>의 한 장면. 우리 기준으로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다보니 화끈하지 못하고 모든게 어설프다. 그러나 그게 바로 선덴스의 매력이다.

 

부수다 만 영화

 

하도 욕을 해대길래 정말 마음을 비우고 보았다. 일단 소감은 황당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웅다웅하던 남사친 여사친이 앙금을 풀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실물 괴물로 빙의되어 대리전을 벌인다는 설정자체가 웃겼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장소가 한국이었다는 것. 사실은 일본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는데 보기좋게 퇴짜. 할 수 없이 서울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게 웬일 정작 로케장소는 부천. 한강은 그저 배경정도로만 스쳐지나가고. 아깝다. 기왕 때려부술 거 제대로 하지 이게 뭐야. 이해한다. 이건 메이저 회사가 배급한 영화가 아니다. 선덴스 출품용이다. 온갖 이상하고 조잡하지만 뭔가가 있는 독립작품들이 출품되는. 실제로 주인공을 맡은 앤 해세웨이가 제작도 하고 직접 홍보도 할 정도였다니. 작품성에 대해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왜 한국, 그것도 서울로 가장한 부천이 파괴의 현장이 되어야하느냐며 볼멘 소리는 하지 말자. 그건 제작비가 부족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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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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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호는 근대 화가의 전형을 만들어 냈다. 살아 생전에는 푸대접을 받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지만 죽고나서는 전설이 되는. 실제로 고호 이전의 화가는 대부분 궁정이나 귀족에게 속해 요구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일종의 환쟁이에 불과했다. 자발적으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건 매우 낯선 일이었다.

 

역적으로로 힘든 생을 살았기에 그의 작품보다 삶이 더 주목받는 측면이 있다. 곧 아 저 그림은 고호의 광적인 열정을 담아낸 것이구나, 저 풍경은 고뇌하는 비통한 심정을 대변했구나.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이런 표현은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허세에 불과하다. 그는 인상파 화가였다. 그들의 특징은 세세하고 자세하게 진짜처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붓을 놀리는 것이었다. 단지 고호만이 이 화풍을 따른 것이 아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도 그림을 덧붙이고는 있지만 고호의 스토리에 더 주목하고 있다. 가족관계부터 친구와의 사이, 그리고 그 유명한 동생과의 우애까지 마치 비극적인 인간의 원형인양 감상에 젖어 글을 쓰고 있다. 정작 중요한 그림은 빠트린채 고작 주변 이야기만 읊어대고 있다. 사실 그의 그림은 고호의 기질과는 상반된다. 매우 밝고 활기차게 역동적이다. 왜 고호의 그림하면 다들 우울하다고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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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크로즈 - 배들의 무덤, 치타공의 철까마귀
김예신 글.그림, 박봉남 원작 / 서해문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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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졌지만 한 때 잘 나갔던 감독 중에 배창호씨가 있다. <깊고 푸른 밤>, <우리 기쁜 젋은 날> 등 천년들의 마음을 담아낸 감각적인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갑자기 대가시늉을 내며 롱테이크 흉내를 내다 쫄딱 망해버렸다. 왜 좀 인기를 얻는다 싶으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고 예술 운운하는지 안타깝다. 그의 팬이었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배창호 감독의 초창기 작품가운데 <철인들>이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일종의 계몽영화다. 그는 대충 만들어도 되는 영화임에도 최선을 다했다. 철을 다루는 거친 노동자들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아이언 크로즈> 겉표지를 보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장소만 바뀌었을 분 피땀눈물이 어우러지는 전투적인 노동을 기대했다. 그러나 휴머니즘을 벗어나지 못한 소박한 시선에 신경질이 났다.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얄팍한 감상주의가 느껴져서다. 돈을 적게 받든 가난하든 중요한건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이다. 따스함으로 위장한 얄팍한 도움의 손길은 부록이나 각주에라도 싣지 말아야 했다. 그런 시각이야말로 노동자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마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국민들을 바라보면서 안쓰러워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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