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허무하고 쓸쓸하고 억울하다
노교수는 정정했다. 부친께서도 90이 넘어 돌아가셨다니 대대로 장수집안이었다. 여전히 정신이 또렷하고 몸도 건강한 편이다. 여전히 담배를 하루 한갑씩 피우는 것은 의외지만. 술도 잘 마신다. 거나하게 취하면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노인네 특유의 허풍이 아닌 슬픈 스토리라 귀를 기울이게 된다.
미국에서 살 때 형이 죽었어. 둘다 어렸지. 그런데 미국놈들은 관뚜껑을 열고 죽은 사람 얼굴을 죄다 보게 하더라구. 난 그게 너무 싫었어. 끔찍했거든. 왠줄 알아? 그 애는 나와 같은 얼굴이었거든. 형은 쌍둥이였어.
가수 종현이 죽었다. 스물여덟 창창한 나이에. 그가 심야 라디오를 진행할 때 지나치게 진지해서 도리어 허세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젋은 친구가 왜 저리 심각하지? 우울증이 깊어지면 살아가기 힘들다. 눈을 뜨면 끔찍한 상황이 매일 매순간 반복되니까. 삼가 애도를 표한다.
도서관 스탠드 피씨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옆자리에 온 고등학생 둘이 신나게 떠든다. 흔히 있는 일이다. 이어폰을 끼고 소음을 피하려는 순간 낄낄거리며 죽은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구한말도 아니고 애가 넷이나 죽는게 말이나 돼. 이대니까 그런거 아냐. 개네들 실력없잖아. 수준도 안되는 여자애들이 의사랍시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또 입밖에 낼 수도 있구나. 죽은 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개네들도 안타까운건 마찬가지였어.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야, 라고 그들을 속으로 용서한다.
12월말 죽음의 그림지가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슬플 뿐이다. 그래서 더 허무하고 쓸쓸하고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