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캐빈 폰
스티븐 렉카르트 글, 김선형 옮김, 노아 칼리나 사진, 자크 클라인 기획 / 판미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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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어이름은 캐빈이다. 원어로 하면 Cabin이다.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다른 Kevin이 아니고. 오두막이라는 뜻에 정감이 갔기 때문이다. 비록 한번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캐빈 폰>은 나같은 로망이 있는 사람의 꿈을 실천으로 바꾼 사람의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세계 곳곳을 돌며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취재하여 자신의 블러그에 올린 글과 사진을 모은 것이다. 벤처기업의 사장이기도 한 자크 클라인은 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가? 단지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기 위헤서. 아니다. 누구나 꿈꾸는 집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옮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 봐라. 이렇게 오두막을 짓고 호젓하게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뚯에 동참한 스티브 렉카르트는 글품을, 노아 칼리나는 사진을 제공하면서 이토록 놀라운 책을 만들어냈다.

 

비록 통나무집까지는 아니어도 산속에 자리잡은 20평 남짓되는 작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은 늘 있어왔다. 의외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각종 단체들이 비슷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한가지 걸림돌은 돈이나 직장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다. 공동체란 겉보기만큼 단란하지 않다. 선의로 뭉친 집단일수록 갈등은 더욱 심하다. 왜?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한마디로 우호적인 무관심이 보장되지 않는다. 만약 이 장벽이 제가된다면 당장이라도 거처를 옮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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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의 고양이일기 욘&무
이토 준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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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이 에세이 만화를 보고 다소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공포의 끝을 보여주던 작가가 엄청 웃기는 캐릭터로 독자를 유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선전문구대로 무서움과 유머는 한 끝차이인가?

 

사람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편견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에드가 알란 포의 <검은 고양이>라는 단편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이 시체를 고양이까지 함께 시멘트로 발라버리는 바람에 발각된다는 이야기다. 정말 구미호 저리가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군대 가기전 우연히 고양이를 석달 정도 키우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해나가는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강아지는 비호감이었다. 지나치게 주인에게 의존적인 생활을 하는 왜완용 개는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개한테 한번 물리기도 해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최근 어머니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동생이 데리고 있던 갠데 아무래도 아파트먼트 고층에 살고 아이가 입시다 보니 부담이 되어 잠시 맡긴다는게 그만 눌러앉고 말았다. 가끔 가서 보긴 했지만 처음엔 시큰둥했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지다보니 이제는 어머니를 뵈러 가는지 강아지를 만나러가는지 헷갈린다. 어머니께서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개를 데리고 나가기 힘들어 지면서 이제는 내가 가면 합께 바깥에 나가자고 꼬리를 치며 안긴다.  

 

이토 준지도 나와 같았다. 아내가 데리고 온 고양이가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외로울까봐 한머리 더 입양까지 하면서 걱정은 더해갔다. 집에서 만화를 그리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기우였다. 왜 고양이를 키우면 집사가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좋은 소재까지 제공했으니. 고양이들에게 보너스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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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허무하고 쓸쓸하고 억울하다

 

노교수는 정정했다. 부친께서도 90이 넘어 돌아가셨다니 대대로 장수집안이었다. 여전히 정신이 또렷하고 몸도 건강한 편이다. 여전히 담배를 하루 한갑씩 피우는 것은 의외지만. 술도 잘 마신다. 거나하게 취하면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노인네 특유의 허풍이 아닌 슬픈 스토리라 귀를 기울이게 된다.

 

미국에서 살 때 형이 죽었어. 둘다 어렸지. 그런데 미국놈들은 관뚜껑을 열고 죽은 사람 얼굴을 죄다 보게 하더라구. 난 그게 너무 싫었어. 끔찍했거든. 왠줄 알아? 그 애는 나와 같은 얼굴이었거든. 형은 쌍둥이였어.

 

가수 종현이 죽었다. 스물여덟 창창한 나이에. 그가 심야 라디오를 진행할 때 지나치게 진지해서 도리어 허세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젋은 친구가 왜 저리 심각하지? 우울증이 깊어지면 살아가기 힘들다. 눈을 뜨면 끔찍한 상황이 매일 매순간 반복되니까. 삼가 애도를 표한다.

 

도서관 스탠드 피씨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옆자리에 온 고등학생 둘이 신나게 떠든다. 흔히 있는 일이다. 이어폰을 끼고 소음을 피하려는 순간 낄낄거리며 죽은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구한말도 아니고 애가 넷이나 죽는게 말이나 돼. 이대니까 그런거 아냐. 개네들 실력없잖아. 수준도 안되는 여자애들이 의사랍시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또 입밖에 낼 수도 있구나. 죽은 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개네들도 안타까운건 마찬가지였어.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야, 라고 그들을 속으로 용서한다.

 

12월말 죽음의 그림지가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슬플 뿐이다. 그래서 더 허무하고 쓸쓸하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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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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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얼어나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직장을 다닐 때는 잘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할 일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엄밀히 말하면 무언가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목적없이 방황할 뿐이다. 그나마 돈이라도 있다면 쇼핑이라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그저 길거리를 돌아다닐 뿐이다. 더위가 몰려오거나 추위가 닥치면 그들은 조금이라도 서늘하고 따뜻한 곳을 찾아 둥지를 튼다. 동네 도서관, 주민센터, 노인정. 그곳에 모여 끝도 없이 불만을 털어놓는다. 대통령 욕에, 젊은 것들 비난에, 왕년에 왕년에를 되풀이한다.

 

<갱년기 소녀>는 사회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잉여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소녀취향을 지닌 아줌마들이 어떻게 살인마로 돌변하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남편에게 줄곧 폭력을 당하면서도 한 때 피운 바람이 들킬까봐 숨직여 살다가도 거짓말로 남의 돈을 뜯어 먹으며 남 험담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홀어머니의 연금은 악착같이 타내면서도  빠칭코 돌아다니고 만화책 보는게 취미인 그녀들은 꿈을 꾼다. <푸른 눈동자의 눈>은 그렇게 갑자기 중단되어서는 안되었어, 우리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야 해.

 

마리 유키코의 솜씨는 놀랍다. 우리 같으면 복고풍으로 흘렀을 소재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며 날카롭게 잘 드는 칼로 후벼파고 있다. 이야기 중간중간 기사성 글을 집어넣어 현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스티븐 킹의 놀라운 데뷰작 <캐리>를 보는 느낌이다. 단연코 올해 발견한 가장 빼어난 작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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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의 모험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들로의 여행
로라 밀러 엮음, 박중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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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소설 읽기를 멀리 했다. 현실은 이렇게 고달픈데 작가들이 만들어 낸 가짜 세상에 빠져 지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지만 여전히 글을 읽고 쓰고 있었다. 돈벌이를 위해서였다. 그 일은 나름 스스로 조금씩 발전해가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 도루목이 되어버리곤 했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느라 알맹이가 뭔지고 모른채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었다. 나 또한 그 똥물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어떡하든 잘난척 해보려고 기를 썼지만.

 

그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날카로워진 내 신경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분간 글을 멀리하라고 했다. 친절한 마음과 예의바른 자세를 갖추는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무위의 시간을 보내다 무민을 만났다. 토베 얀손은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이야기만 읽으라고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문학으로의 모험>은 소설의 본령을 지킨 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곧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진 도서들을 망라했다. 다행히(?) 절반 정도는 읽은 책들이라 반가웠다. 반대로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 나머지 반이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다이제스트 책은 딱딱하기 십상이지만 이 책은 예외다. 총편집을 맡은 로라 밀러는 어설픈 비판 대신 애정어린 다독임으로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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