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랫집>의 배경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둔천동 주공아파트.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처음에는 시멘트 덩어리라고 욕먹던 외관도 시간이 흐르니 동간 간격도 널찍하고 남향이라 햇볕도 잘 들고 아름드리 나무들도 많은 쾌적한 단지로 변했다. 게다가 마지막 가는 길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단편은 여러 이야기를 섞으면 초점이 흐려진다. 단 단서를 심어놓으면 연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드면 에이라는 글에서 마무리 못한 스토리를 비에서 이어가는 식이다. 제이티비씨 전체관람가에서 방영한 <아랫집>도 이 부류에 속한다(2017. 12. 17).
이경미 감독은 이른바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괴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미쓰 홍당무>는 여자가 주인공이면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께고, 물론 주연을 맡은 공효진씨는 미인이지만, 흥분하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이상한 말을 마구 내뱉는다. 누군가는 신선하다고 좋아하겠지만 기존 문법에 익숙한 이들은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아랫집>에서도 이런 특징이 고스란이 드러났다. 10분 남짓 짧은 영화에 다영한 변주를 구겨넣어 스토리가 매끈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양한 키워드로 해부하는 솜씨는 빼어나다. 겉으로는 아파트먼트에 사는 윗집과 아랫집 간의 분쟁같지만 사실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금단증세와 이단종교에 사로잡힌 여인,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의 강박이 한데 아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영애의 캐스팅으로 방송전부터 화제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연기는 <친절한 금자씨>의 아줌마편인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억척같이 살아가는 여인네의 느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