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주얼 깡패가 다는 아니다.
조인성, 정우성, 류준열의 어색한 조화
한국영화는 1990년대 들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구매력있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이른바 해외파 고학력자들이 영화판에 유입도면서부터다. 그러나 진정한 전성기는 2천년대 이후라고 봐야 한다. 주제 자체에 대한 금기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곧 과거같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소재로 요령껏 재단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더 킹>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운 국가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비록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했지만 민주화라는 기관차를 돌려버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창작의 자유를 제한받은 것은 사실. 한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정치권력 드마마가 박근혜의 몰락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부, 사법, 의회의 삼권분립이 기본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민주에 치중한 나머지 공화국의 참뜻을 잘 모른다. 곧 민주화는 국민권력을 공화국은 대의체제를 상징한다. 정부와 의회는 서로간에 한 배를 탄 정치공동체인 반면 사법은 독립체이면서 두 기관의 향배에 매우 민감하게 작동한다. 1987년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검찰권력이 순식간에 교체되기 때문이다.
흙수저이지만 깡 하나로 검사가 된 박태수. 정의감도 있고 권력에 대한 갈망도 큰 그는 결국 후자를 선택한다. 수사 하나를 덮어주고 중수부로 진출 한강식 부장 검사와 한 팀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고향친구 최두일이 조폭이 되고 승승장구하면서 일은 꼬이게 되는데.
이 영화의 재미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나 사건이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두환 이후 역대 대통령은 물론 삼품백화점 붕괴처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고도 마치 중요한 배경처럼 화면에 나온다. 그럼에도 선뜻 와닿지 않는 이유는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박태수의 양심선언이나 한강식의 몰락은 느와르를 권선징악 드라마로 전락시키고 있다. 또한 워낙 잘생긴 배우들이 결합했으니 본전을 뽑자는 의도는 있었겠으나 극전개상 불필요한 장면, 이를 테면 댄스신, 들이 많아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