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쪽손으로만 피아노 건반을 치는 줄 아니? 그건 ... " 이라는 명대사를 만들어 낸 <말할 수 없는 비밀> 상큼한 청춘물로 시작한 영화는 스릴러와 공포를 거쳐 멜로로 마무리 된다. 한 영화에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위화감없이 소화해낸 주걸련은 진정한 천재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비밀

 

이번이 다섯번째다. 다시 봐도 역시 놀라운 영화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희한하다. 시간을 초월해 나눈 사랑이라는 테마에 걸맞는 현상인가?

 

처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관람했을 때는 치기어린 천재의 장난기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주연은 물론 감독과 각본 게다가 피아노 연주까지 본인 스스로 다 했으니 이런 사기 캐릭터가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소 보게 되면서 단순한 장난같은 영화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오손 웰스가 초창기에 얼떨결에 만든 것 같은 <시민 케인>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듯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걸련도 웰스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곧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이미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동시에 주걸련은 여전히 이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웰스가 여러 다양한 수준급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시민 케인>으로 낙인찍혀버렸듯이.

 

우선 이 영화는 청춘물이라는 기본 코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전학생. 우연히 만나게 된 어여쁜 소녀. 그녀는 예측불가능하다. 수업에도 잘 빠지고 늘 뒤에서 놀래킨다. 그럼에도 둘은 피아노 연주라는 공통 분모로 연인이 된다. 그러나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으니.

 

둘째, 추리 코드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여자에게 비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걸련은 계륜미의 눈에만 보인다는 설정에서 이미 둘은 현실의 커플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계륜미는 유령인가? 아니면 쌍둥이인가? 주걸련은 흔한 가정을 비틀어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20년전 과거에서 날아왔다.

 

셋째, 음악의 힘. 뭐니뭐니해도 영화를 빛낸건 피아노 연주곡들이다. 쇼팽의 고전작품에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피아노는 고비고비마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만들어낸다. 주걸련이 천재소리를 듣는 것 연기와 각본쓰기 능력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연주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음악을 선택했으냐가 핵심이라는 소리다.

 

아마 언젠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또다른 쓸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명작이란 두고두고 되풀이되면 발굴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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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뒷 커버. 영화 자체는 다소 밋밋하지만 클래시컬 음악을 사랑하고 주인공의 증세를 겪어본 사람들은 쉽게 빠져든다.

 

진정한 치유제, 모차르트 협주곡 23번

 

음악영화는 후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별 하나는 덤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형편없는 주제나 이야기라도 음악 한 곡쯤은 건지게 마련이니까. <신동>은 그런 마음으로 부담없이 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천재 음악가가 주인공일테니 내용은 그저 그렇겠지만 음악은 최고로 뽑았겠지.

 

날때부터 피아노 영재인 한 소녀와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를 둔 노력하나로 음대를 가고 싶어하는 소년. 둘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고 소년은 소녀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입학한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청춘 로망이 펼쳐질 차례인데 영화는 삐딱선을 탄다. 소녀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이명. 소리에 민감한 피아니스트에게 난청을 동반한 이명은 그야말로 죽음과도 같다. 그 비밀을 숨기며 되도록 피아노를 멀리하게 되는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영화로 접할 때는 더욱 몰입하게 된다. 비록 음악가는 아니지만 나 또한 이명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다행히 서울을 벗어나 살고 일을 줄이면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왼쪽 귀는 조금만 소란스러운 곳에 가도 이상반응을 일으킨다. 구체적으로 삐이하는 경고음이 울린다. 영화속 리코도 같은 증세를 앓고 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신경을 거슬리는지 생생하게 연기했다. 심지어 울음이 날 때도 있다.

 

이명을 극복하는 방법은 소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곧 소리가 들리는 곳을 피하면 피할수록 증세는 심해진다. 이른바 화이트 노이지로 긴장된 귀를 완화시켜야 한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제다. 리코가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 23번은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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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비주얼의 뤽 베송 표 에스에프 판타지(?). 맞는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서사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상의 세상은 얼마나 허무한가

 

뤽 베송이 <발레리안> 개봉에 맞추어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방송에 등장할 때부터 불안했다. 어릴 때의 꿈을 잊지 않고 수십년간에 걸쳐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고백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자기 세계에 빠져 헤매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결국 두번째에 가까웠다. 적어도 내게는.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주 정거장 사업을 연대기별로 등장시키는 첫 장면은 참신했다. 특정 시점에서는 그저 헛된 망상에 불과한 일들이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현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구 주변이 일종의 허브 스테이션이 되어 각종 행성의 기지로 변할지 모른다는 작가의 아이디어 또한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다양한 분쟁이 발생하고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특수요원들이 파겨된다는 설정 떠한 그럴듯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기가 막힐 정도의 상상으로 미래의 지구와 주변, 그리고 각종 외계인들을 그럴듯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이야기는 초점을 잡지 못하고 점점 산으로 간다. 중간부터는 꿈을 꾸는 듯한 이미지만 나열이 되어 대체 뤽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단편으로 개성을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이 되기에는 스토리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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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2-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너무 환상적인 영화여서 2번 보았는데....철학 그런 거 모르겠어도 비주얼이 허무하지만은 않았어요.
^^:;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 보시기엔 밋밋하셨나봐요^^

카이지 2017-12-1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제 주관적인 의견이었답니다. 만약 10대때 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야기따위 신경쓰지않고 엄청 흥분하지 않았을까? 강추위 만끽하는 신나는 주말 보내세요.
 
만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나카노 지음, 최고은 옮김, 미카미 엔 원작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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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서시장은 캐고 또 캐도 보석이 나오는 황금어장이다. 물론 쓰레기도 많지만 그 버리는 물건들조차 밑거름이 되어 아름드리 나무를 키운다.

 

<만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원작소설이 있다. 처음 나왔을 때는 가벼운 추리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의로 저자의 지적 폭이 넓고 깊어 놀란 적이 있다. 만화 또한 소설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시각적 감정효과를 잘 전달하고 있다. 연작 시리즈 가운데 굳이 2권에 리뷰를 다는 까닭은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지상철 건널목에서 우연히 부딪친 노인과 여고생.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로 끝날 해프닝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늙은이가 애지중지 아끼던 문고판 책이 충동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른 건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는데.  대체 누가, 왜 그 얄팍한 책을 훔쳤을까? 비블리아 고서장 주인은 단 한차례도 현장에 가지 않고 정황만 듣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단박에 알아맞춘다. 그 과정도 놀랍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책의 용도는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다. 단지 책은 읽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혹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아니면 냄비 받침대나 컵라면 뚜껑으로만 쓰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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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l Group - Christmas
리얼 그룹 (The Real Group) 노래 / 드림비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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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맘때면 크리스마스 앨범을 꺼내 하나씩 듣곤 한다. 12월이 지나면 들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문제는 집안 정리를 하면서 필청 음반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렸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가 부르는 캐롤음반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수가? 게다가 스노우맨 오에스티도 행방불명이다. '워킹 인 디 에어'로 시작하던 나만의 성탄절 시즌 의식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낙담만 하고 있다 오랜만에 알라딘 강남점에 들렀다. 원래 목적은 <바이센터니엘 맨>의 디브이디를 구입하는 것이었지만 리얼 그룹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만났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어떤 악기도 쓰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아카펠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왠지 편법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육성으로 이런저런 소리를 만들어낸다 한들 오리지널 악기를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직접 공연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꽤 먼거리였음에도 그들의 화음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오랜  연습을 거쳐 내공을 쌓아왔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골라 집에 오자마자 씨디플플레이어에 음반을 넣고 바로 버튼을 눌렀다.  고요한 밤을 시작으로 익숙하게 알려진 성탄송이 메들리어 이어지더니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웨덴어였다. 비록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전해졌다. 오히려 지나치게 장식적인 영미 캐롤에 비해 태고의 숭고함을 간직한 듯한 차분한 노래여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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