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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 -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일과 생활의 균형 찾기
오하라 헨리 지음, 시고 군 그림, 정현옥 옮김 / 원더박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맑스의 책은 되새김질해서 읽을 만하다. 곁가지만 붙들고 전문가 흉내를 낸게 아니라 핵심을 관통하는 혜안을 곳곳에서 드러내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기초가 탄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를테면 그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를 보자. 필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주장은 생산과 소비의 정의를 새롭게 한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회를 유지하게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 쓰고 버려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체제가 인간이 본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맑스는 하루를 삼등분해서 쓰는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생산하고 소비하고 쉬고. 이 삼박자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하루를 일주일로 연장한다면 각각 2.3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온전히 하나에만 집중할 수는 없지만 원리상 그렇다는 것이다. 여하튼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는 것이 매우 비정상적인 행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는 맑스의 생각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틀만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스스로 무얼 하고 싶은지를 찾아 헤맨다. 현대인은 주어진 일을 하기에도 박쳐 자신의 희망을 찾을 새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휘둘릴 뿐이다. 왜 대학에 가야하고 직장에 다녀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남이 하니까 따라 한다. 만약 이런 의무가 없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 또한 20대 때 그럴 꿈을 꿨다. 매달 누군가 백만원씩만 준다면 굳이 내 의도와 상관없는 일을 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즐겁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문제는 여건이다. 일본처럼 프리타가 활성화되어 자신이 시간을 조정해 짧게짧게 일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적 시선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처럼 가족, 친척, 지역이 촘촘히 얽혀있는 나라에서는 남의 눈치 때문에라도 쉴 수가 없다.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는 좀 많나? 결혼식, 환갑, 명절, 제사 등등. 한마지로 개인이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이제 내 소망은 연금으로 바뀌었다. 나이가 더 들어 연금이 나오면 굳이 돈을 벌 이유없이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크게 아프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그 때도 놀면 뭐해 소일거리라도 해야지라는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지면 그 땐 정말. 제발 좀 내버려둬라. 일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