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신저스>의 한국 프로모션 현장. 재니퍼 로랜스가 우리나라에 왔었다니? 미처 몰랐다. 그런데 고작 이런 영화를 홍보하러?

 

그래, 재니퍼 로렌스라면 나도 그랬을꺼야

 

어렸을 적 우주는 막막했다. 호기심 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만약 달이나 다른 행성에서 임무를 마치고 소형 우주선을 타고 본함과 도킹하려는 순간 어긋나면 어떻게 될까?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토록 우주공간을 헤매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려 지냈다. 여전히 달착륙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암스트롱이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면 지금쯤 달은 부천이나 부평처럼 서울의 위성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 <패신저스>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우주여행을 다루고 있다. 지구로부터 120년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긴 여정.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냉동실에 갇혀 있던 한 남자가 중간에 깨어나면서 안락한 꿈은 돌연 비극으로 치닫는다. 아직도 90년이 남아 있는데. 우주선에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울부짖던 어느날 상상속의 여자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그녀를 끄집어낸다. 그래, 재니퍼 로렌스라면 나도 그랬을꺼야.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의지하며 남는 나날을 지내려고 하는데 그만 들통이 나고 만다. 란드로이드는 역시 믿을 놈이 못돼.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느닷업이 승무원 한 명이 눈을 뜬다. 그러나 그는 바로 죽을 운명에 처하고 남은 둘에게 서로를 의지하라고 훈계질을 하고 눈을 감는다. 아, 점점 진부해져가는군. 고장난 우주선을 고치기 위해 남자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그렇게 끝날 것 같은 영화는 여자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면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비록 다른 행성에 발을 닿아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는 하지만.

 

다 보고 나니 허무하다.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 애를 썼지만 결국 등장인물은 고작 서너명에 불과하다. 연극으로 해도 소규모에 머물 정도로. 블럭버스터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큰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나처럼 미적지근한 결말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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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트가 수록된 에프엑스의 3집 앨범. 춤보다는 독특한 노래가 돋보였던 아이돌이

었다. 뜻밖의 암초를 만나 가라앉아버린 에프엑스의 음악은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기적은 오는걸 너무 오래 걸렸지만

파란불 우린 기다려 원해

 

 

에프엑스는 아쉬움이 남는 여성 아이돌이다. 데뷰때부터 독특한 음악성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멤버 각자가 세려된 패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시한 매력의 앰버를 둘러싼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설리가 각종 기행(?)으로  하차하면서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팀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른 여자 그룹과는 차별화된 에프엑스의 노래는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그들의 마지막 싱글인 레드라이트는 의미심장한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이 곡을 듣는 순간 아 이건 세월호 참사를 비판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다.

 

2014년 세월호 침몰이후 으리 사회는 한동한 우울 모드에 빠져 있었다. 누구 하나 함부로 웃고 떠들지 못했다. 나 또한 그랬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답답함에 시달렸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드 라이트가 출시되었다.

 

"눈 크게 떠 거기 충돌 직전 폭주를 멈춰
변화의 목격자가 되는 거야
밀어대던 거친 캐터필러 그 앞에 모두
침몰 할 때

켜졌어 Red Light 선명한 Red Light 스스로 켜져 그것은 Red Light

Boy 니가 말한 최선이란 변명 내겐 의문투성이 일뿐"

 

떠나간 남자에 대한 경고로도 읽힐 수 있지만 그 대상은 침묵하는 권력자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에프엑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말 우리는 지난 9년간 X같은 터널을 지나왔구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적은 오는걸 너무 오래 걸렸지만 파란불 우린 기다려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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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인 - 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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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목적은 정보를 얻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그러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들기도 한다. 만약 자신의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더 브레인>은 꼭 읽어야 한다.

 

사람의 뇌는 예측불가능하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 이번 경기로 우승팀이 가려진다. 9회말 투아웃 주자는 만루. 점수는 4대3으로 우리 팀이 앞서고 있다. 그러나 안타 한 방이면 역전. 제발 내 앞으로만 공이 오지마라고 속으로 되뇌인다, 그러나 바램도 헛되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유격수 자리로 굴러온다. 얼른 집어 2루로 던지거나 혹은 1루로 송구하면 게임 셋 상황이지만 갑자기 다리가 땅에 붙은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수백 수천 수만번 했던 일인데 왜 갑자기 안되지? 결국 공은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전광판은 4대 5로 바뀌고 상대편 덧아웃은 난리가 난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실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이유가 뭘까? 한마디로 뇌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의식을 하지 않고 평소대로 했다면 자연스레 공을 잡았겠지만 의식을 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잘해야지라는 압박감이 도리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더 브레인>은 뇌의 다양한 작동을 사례로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단순하고 명쾌한 삶이야말로 뇌에게는 은총이다. 곧 뭔가 비상식적인 일을 해내려 이리 저리 굴리다보면 어느 순간 펑하고 휴즈가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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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만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이토이 시게사토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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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기를 당해본 사람은 안다.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다 결국 바보같은 자신을 탓한다. 다행히 그런 경험은 없다. 사소한 사기비슷한 일들은 당했지만 자다 벌떡 일어날만큼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제대로 당했음을 깨닫는 일이 생겼다. 하루키가 쓴 글 들 모두가 그렇다. 요상망칙한 소설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읽기에 부담없는 에세이에 반해 스스로를 속이고는 하루킨 팬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고 나서는 더이상 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 생각에 의문이 생기는 분들은 <꿈에서 만나요>를 읽어보시라. 대체 책으로 낼 가치조차 없는 낙서모음을 하루키라는 브랜드를 붙여 세상에 내보낸 저의를 알고 싶다.

 

<세이빙 크림에는 어딘지 스코틀랜드 왕자 같은 맛이 있다. (중략) 그는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네 안목이 꽤 괜찮군. 볼륨을 좀 더 높여주지 않겠나?"

 

분명 스코틀랜드의 까다로운 왕위 계승 때문에 싫증이 나버린 것이라는게 나의 추리다.>

 

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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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관람가에서 소개한 임필성 감독의 <보금자리>. 열린 결말과 밀도있는 연출로 단편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보금자리, 아파트먼트처럼 거래되는 아이

 

제이티비씨의 <전체관람가>는 현역 감독들이 돌아가며 단편영화를 만들어 공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생생한 현장도 공개함으로써 흥미를 자아낸다. 지난주에는 임필성 감독의 <보금자리>가 공개됐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완성한 단편중 가장 압권이다. 소재, 각본, 연출, 연기 모두가 다 좋았다.

 

한국에서 집에 대한 열망은 국민의 잠재적 야망을 국가가 부추켜왔다. 구체적으로 집을 소유개념으로 정착시킴으로써 과도한 돈이 주택에 묶이게 되었다. 경제성장기에는 효과적이었다. 정부는 청약제도를 활용하여 모인 돈을 산업에 쓰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싼 값에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양가와 실거래가의 차이는 투기를 낳아 집을 거주공간이 아니 사고파는 재화가 되고 말았다. 특히 아파트먼트는 공상품처럼 거래가 되고 있다.

 

그 결과 게임에서 지거나 아예 참가를 못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떨거져나가고 말았다. 보금자리 주택은 그들을 위한 임시방편이다. 곧 여러 제약을 가진 이들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 중에는 세 자녀도 포함되어 있다. 인구증가정책과 맞물린 제도다. 문제는 옵션을 달면 달수록 부패가 생긴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금자리 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키울 생각도 없으면서 아이를 입양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보금자리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은 부부가 임시로 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해온다. 아이는 처음보는 아줌마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만 절대 살갑게 대하지는 않는다. 그건 부부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청약조건을 채우기 위해 데려온 거니까. 여자아 아이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계속 흐르게 되는데.

 

보는 내내 숨을 죽였지만 사실 내용은 별 게 없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손에 땀을 쥐게 된 까닭은 전도연의 연기도 좋았지만 결국은 연출의 힘이다. 일어날듯 일어나지 않으면서 일관된게 서스펜스로 몰아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 결과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대사가 한 한 마디도 없었다. 장편이라면 감히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 영화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다. 그건 쉿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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