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지갑은 단 한번도 사라져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장갑 정도. 그것도 한짝만. 그런데 왜 짝이 있는 것들은 하나만 없어질까? 비결은 늘 두던 자리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안경은 책장 맨 아래, 리모컨은 티브이 옆 벼돌 위, 지갑과 휴대폰은 항상 세트로 책상 외편에 식이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배인 습관이다. 학교 가진 전날 가방을 챙기곤 했다. 책이며 필통이며 다음날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을 확인해야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물건을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머리에 꼭 맞아 애지중지하던 엠엘비 모자를 잃어버리더니 오늘은 귀를 편안히 감싸주던 방한 귀마개가 없어졌다. 분명히 산에 오르고 내릴 때만 해도 내 귀에 있었는데 아마도 몸이 좀 풀리면서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문제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저녁 무렵 집에 가는 길에 슬슬 뜀뛰기를 하다 불현듯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왠지 모를 예감같은게 내 머리속을 뒤흔들었다. 너 귀마게 어디나 뒀니? 아니나 다를까? 가방을 뒤져보니 없다. 의심스러운 곳은 도서관 아니면 대형 쇼필몰의 보관함. 일단 마트로 갔다. 먹을거리를 사고 가방을 정리하다 미처 귀마개를 빼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열쇠를 반납하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잽싸게 꿰차던 순간이 기억났다. 왠지 모를 공격성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걸 깜짝했다.
다른 의심스러운 장소는 도서관. 실내가 더워 탁자위에 귀마개를 올려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혹시 해서 전화를 걸어보니 없단다. 예상대로였다. 누군가 가져갔을 수도 있지만 남이 쓰던 꼬질꼬질한 귀마개를 설마.
결국 보관함앞에서 기다리는 걸 택했다. 공교롭게 박스를 담아두어 뒤편에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한시간쯤 대기하면 오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감감무소식이다. 치워라. 뭐 귀가개 그거 얼마한다고. 하지만 내게 익숙해 새로 다른 걸 사기도 좀. 이런 저런 방황끝에 데스크에 물어보니 이런 XX 사람이 오지 않으면 보관함은 새벽에나 열어볼 수 았단다. 결국 메모를 남기기로 하고 철수. 장장 두시간이 넘게 주변을 어슬렁댔다. 남들이 보면 정말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을 걸 보니 지금은 반포기상태다.
뭔가를 까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심각한 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머릿속이 하애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들어 기억이 점점 얇아지고 반응도 느려지면 어떤 기분일까? 끔직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