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걱정 말고 다녀와>를 읽다 깨달았다. 아 글은 구질구질하게 쓰면 안되겠구나. 또 하나. 이곳 저곳 기고한 글들을 묶어 책을 낼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여러 출판사를 옮겨다니며 겪은 무용담(?)은 불편함만 가중시키고, 켄 로치를 부제로 삼은 만용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어서다. 실용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내 삶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접하며 호기심을 채우거나 작게나마 위안을 얻고 싶어서다. 그런데 온갖 잡다한 짜증거리를 마치 대단한 철학인양 지껄여대니. 안다.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처한 상황자체가 힘들어서임을. 돈은 못 벌고 소설가입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매번 만나는 사람들은 처지가 비슷한 투덜이 스머프들이니 해피한 스토리가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기의 경험을 과장해서 전달해서는 안된다. 설령 뼈아프게 힘들더라도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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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딱 감고 선택한 몰스킨 블루 다이어리. 핑크도 예쁘다. 베스킨라빈스에서 쿼터로 13,500원을 지불하고 4,500원을 추가로 내면 받을 수 있다. 광고 절대 아님.

 

요맘 때, 곧 11월 중순쯤 되면 살짝 설렌다. 내년도 다이어리는 어떤 걸로 할까라는 즐거운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주는걸 그냥 쓰거나 아니면 값싼 노트를 사서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커피를 많이 마시면 주는 디이어리가 붐을 이루면서 인터넷 서점이나 잡지사에서도 경쟁처럼 다이이어를 제공하고 있어 그걸 산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슬슬 시동을 걸고 있다. 작년에 어렵사리 중고장터에서 스타벅스 민트 다이어리를 구입했는데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알라딘이나 예스 24 그리고 카누에서 책이나 커피를 사고 받는 것들도 그냥 쌓여있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까닭이다.

 

이번에는 제발 원샷원킬이다. 그러나 벌써 두개나 질렀다. 다른 것에는 절대 사치를 부리지 않는데 문구품, 특히 다이어리에는 왜 이리 욕심을 내는지. 좋게 생각하면 종이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글쎄.

 

아무튼 첫번째는 무민 다이어리. 일본 잡지는 부록이 다양하고 재미있기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모에> 12월호에서는 몇년째 무민을 특집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만큼 일본에서 무민이 인기라는 뜻이다. 나같은 무민팬으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무민으로 도배한 다이어리까지 주니 당근 주문이다. 물론 파는 제품만큼 두껍거나 재질이 좋지는 않고 수첩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게 어디냐?

 

두번째 눈독을 들이고 저지른 건 베스킨 라비슨의 몰스킨 다이어리다. 몰스킨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과 같은 밴딩 노트를 만든 창시자이자 오랫동안 고급스런 이미지를 유지해 온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노트 한 권에 2, 3만 원 하니까. 혹자는 허세 혹은 사치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 써 본 사람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종이가 얇고 가벼워 들고다니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필기감이 좋다. 자기만족을 위해 그 정도 낭비(?)는 괜찮지 않나? 

 

아무튼 요모조모 따져보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는데 앗 역시 선택장애에 직면했다. 일단 아이스크림, 대체 뭘 주문해야 하지?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대로 시켜 아니면 내 맘대로. 결국 가장 인기있다는 것으로 네가지를 섞고 드디어 다이어리. 이런 블루와 핑크 둘 다 이쁘다. 핑크는 전통의 강호이기에 섣불리 거부하기 어렵지만 남자인 내가 과연? 블루는 좋기는 한데 집에 비슷한 색깔이 있어 비슷한 것을 또 사기가? 견본 다이어리를 서너번 비교해 본 끝에 눈 질끈 감고 선택한 것은 블루.

 

오는 내내 블루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보니 열은 블루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뿜뿜. 아 올해는 제발 여기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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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가이 매딘 감독, 이자벨라 로셀리니 외 출연 / 카누(KANU)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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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박수근이다. 그가 재현해낸 질감이 우리 정서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곧 덧칠을 거듭해 벽화처럼 만들어 무표정한 인물에 따스함을 더했다.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은 독특한 화풍이다.

 

영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보며 박수근이 떠올랐다. 컬러는 기본이고 배우의 땀구멍까지 잡아내는 초고화질 시대에 흑백 게다가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뿌연 질감을 재현해냈다.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대단하다고 느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경연을 열어 여러 나라의 가수들이 참가한다. 제각각 장기를 뽐내는 가운데 영화는 점점 미궁으로 치닫는데.

 

히치콕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모두 거친 감독이다. 그는 컬러 영화에 흑백 무성영화 기법을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몽타쥬나 클로즈 업 같은 기술이다. 히치콕은 무성영화야말로 순수한 기쁨을 준다고 믿었다. 영화를 대중오락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이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첨단기술이 발달하면서 영화는 점점 현실을 닮아가고 있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영상으로 옮긴다. 과거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장면도 씨지로 단숨에 구현해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면 그럴수록 상상의 여지는 줄어든다. 내가 꿈꾸던 영상이 그대로 재현되지 관객은 자신만의 꿈을 펼칠 여력이 없이 그저 홀릴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영화가 다시 한번 꿈의 공장임을 확인시켜 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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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 (2disc) - 하드케이스 + 3단 디지팩 + 북릿(60p)
론 하워드 감독,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외 / 인조인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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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이미 네 맴버중 두 명이 생을 마감했기 때문은 아니다. 10대 아이돌 밴드에서 출발해 팝 음악의 역사적 명반을 내기까지 그들은 쉼없이 달렸다. 만약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지 않고 지금까지 내는 앨범마다 변화와 혁신을 꾀한다고 상상해보라. 비틀스는 어느날 깜짝 등장한 기획상품이 아니다. 몇 년간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연주와 연습을 한 베테랑이다. 데뷰했을 때부터 이들은 이미 완성품이었다. 물론 앱스타인같은 탁월한 매니저도 큰 역할을 했지만 누가 뭐해도 주인공은 노래하고 연주하는 이들이다.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는 최전성기때의 순회공연 실황을 주로 담고 있다. 이른바 미국침공이라고 일컬어지는 첫 투어부터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를 돈 일정까지. 아깝게도 한국은 빠져 있다. 그러나 이미 그 때는 지쳐있었다. 더이상 서커스단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아 나올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라. 6만 명 넘게 모인 야구장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겠는가? 이후 이들은 스튜디어로 잠적했고 최후의 공연은 런던 한 건물의 옥상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를 한 게 전부였다.

 

론하워드는 착실하게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비틀스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노회한 감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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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제에가 설계한 필로티 건물. 1층은 기둥으로 개방감을 살려 비워두고 2층부터 공간을 채웠다.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건축은 명성에 비해 실제 적용된 경우가 드물다.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에 대한 우려때문이다.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받아들인 나라가 한국이다. 고층아파트부터 필로티 건물까지 우리나라는 로코르뷔제의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그의 근대철학을 따른 것이 아니라 값싸고 빠르게 지을 수 있다는 점만 악용했다는 사실이다.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었다. 결국 연기하기로 결정되었다. 잘한 일이다. 그 다음에 든 우려는 필로티였다. 필로티는 본래 말뚝이라는 불어로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제가 이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전공이 도시계획이라 평소에도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1층을 비우고 기둥만 세운채 2층부터 방을 만드는 필로티 공법은 지진에 매우 취약하다.

 

언제부턴가 빌라나 다세대는 물론이고 초고층 건물까지 죄다 필로티로 도배되다시피했다. 말로는 보행통로와 주차공간 확보라고 하는데 사실은 분양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편법이다. 1층이나 저층은 해가 잘 들지 않고 소음이 심해 분양이 잘되지 않으니 차라리 비워버린 것이다.

 

평소 필로티 주택이나 건물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단지 지진때문이 아니더라도 가장 탄탄해야 할 기초를 비워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요즘 공법이 발달하여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릇된 건축쟁이들이 하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집의 핵심이 대들보이듯이 건축의 중심은 하중을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벌써부터 필로티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는데, 내진설계만 하면 된다, 글쎄 자연을 이기는 건축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괜히 바벨탑이 무너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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