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 주의보

 

 

매일 보는 풍경이 약간 어긋나며 뭔가 요상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지난주 토요일 내가 그랬다. 낮까지만 해도 쌀쌀하기는 해도 가을같던 날씨가 해가 지면서 갑자기 겨울로 바뀌었다. 가뜩이나 찬바람을 쐬며 자전거를 타고 온 터라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며칠전부터 커피를 마시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준다는, 정확히 말하며 두개를 세트를 파는 것이지만, 도넛가게의 인터넷 광고를 보고 더이상 차일피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잔쯕 움추리고 상점의 문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부터 이상했다. 말로 하기 어려운 적대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진원지는 카운터에 있는 매장 직원이었다. 행사를 하냐는 질문을 짧게 네 하고 고갯짓으로 매대를 가르킬 때 알아챘어야 했다. 

 

당시는 몰랐다. 커피만 마시기 뭐해 도넛을 골라 들고가려는 찰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집게는 가지고 오셔야죠. 도넛하나를 고르고나서 집게를 다시 제자리에 둔 게 화근이었다. 좋게 말해도 될걸 굳이 저렇게까지. 살짝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억지로 심호흡을 한번 하고 어떤 종류의 커피가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메뉴판을 보여주면 여기요라는 것이었다. 여기 대체 어디? 물론 속으로. 아무 소리 못하고 가만 있자 손가락을 가리키며 여기 아래 안 보이세요라는게 아닌가? 이쯤되면 대놓고 까는건데.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당장 됐어요 하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억지로 참고 그녀가 가리킨 커피들을 보니 가격차이나 조금씩 난다. 뭘 골라야 스피커를 받는지 알 수 없어 다시 한번 최대한 친절하게 가격이 다른데 어떻게 되나요 라고 물으니 그렇겠죠 라는게 아닌가? 정말 동쪽을 가리키니 서쪽으로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그냥 포기하고 되는대로 주문하고 얼릉 먹고 나가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꼬인 일이 있어나 보다라고 체념한 채., 거기서 끝났다면 이런 짜증나는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아침 스피커를 물어보니 역시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아무거나 가져가란다, 이런 XX, 빨대가 어디 있냐고 질문하자 또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저기요라고 답하는게 아닌가. 대체 저기 어디? 결국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겨우 찾아내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는데 아뿔싸 흔들리며 쏟아지는게 아닌가. 다리의 수평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이러다간 큰 일 나겠다 싶어 냅킨 달라는 말도 포기한 채 가만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혹시라도 점원에게 원인을 제공했나. 없다. 그렇다면 알바생이 진짜로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있어 내게 화풀이를 했나? 이것도 아니다. 나중에 들어온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상냥했다. 대체 뭐지? 커피 마시는 내내 상념에 빠져 컵을 창문에 던지고 탁자를 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뭔가가 어긋난 기묘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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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센테니얼 맨 - 할인행사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로빈 윌리암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지금 돌이켜보면 로빈 윌리암스는 유쾌한 표정에 늘 그늘이 깃들어 있었다. 소위 웃픈 얼굴이라고나 할까? 심지로 로봇으로 분장한 외모에서도 느낌이 전해진다. 어쩌면 깊숙히 파고드는 우울함을 억지로라도 유머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버틴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길이 남을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선택은 죽음이라는 명제가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구나 영원불멸을 꿈꾸며 헛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죽고 싶어 안달을 한다.

 

앤드류의 결정은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도리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무엇보다 봉사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로봇이 더욱 더 인간에 가까운 생명체는 아닐까? 언제가 아니 곧 로봇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파고들 것이다. 무슨 거창한 철덩어리가 아니더라도 말만 하면 순종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어른들이야 그렇다쳐도 에이아이와 함께 자란 아이들은 누구보다 더 소중한 친구로 여길것이다. 심지어는 결혼하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른다.

 

황당무계하게 느껴졌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지금이야말로 바로 미래사회다. 로봇을 싫어했던 첫째딸처럼 모든 걸 거부하고 냉소적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벗으로 대해주며 동등하게 함께 살아가는 둘째딸이 될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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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조바니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로렌조 발두치 출연 / 이오스엔터 / 2011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돈 조반니>는 미스테리한 작품이다. 모차르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후문이 흉흉해서만은 아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살해된 기사단장이 최후에는 죽음의 사자로 다시 등장한다는 충격적인 결말때문만도 아니다. 핵심은 음악이다. 바람둥이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노래는 죄다 음울하고 뒤숭숭하다. 이전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보였던 밝은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오페라 작곡에 얽힌 비밀을 풀어낸다. <아마데우스>로 널리 알려진 살리에르도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시인인 로렌조 다 폰타다. 한 때 시인이 되려다 방탕한 생활로 추방당한 그는 모차르트를 꼬드겨(?) 매우 이색적인 돈 조바니를 탄생시킨다. 마치 여러 여자를 사귀는 것을 의무처럼 여기며 어쩔 수 없이 실행에 옮기는 듯한 뉘양스를 풍긴다. 지금같으면 말이 안되는 설정이지만 그 때만 해도 귀족이라면 어떠한 망나니라도 인기가 있을 때다.

 

우리는 <돈 조반니>를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로 기억하지만 스가라 감독은 사실은 다 폰타의 역할이 더 컸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그는 대본뿐만 아니라 권력자를 구워 삶고 무대에 올리는 전 과정에서 온갖 궃을 일을 다했다. 그럼에도 역시 불멸로 남는 것은 유명한 이중창 '라 치 다램 라마노' 곧 그대 손을 잡고다. 꼭 오페라 전부를 보지 않더라도 이 노래의 익숙한 멜로디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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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몰두의 대상을 찾아 헤매다 생을 마감한다. 한 때 흠뻑 빠져 이거 아니면 못 살 것 같다가도 지나고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해지더라도. 문제는 그 대상이 일과 일치하지 않거나 혹은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경우다. 그나마 직업과 맞지 않는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윤리적인 선을 넘으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심지어는 감옥에 가기도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 도에 넘는 짓거리에 중독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안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삶이 삐걱거릴 정도로 심하게 어긋나는 경우도 만만치 않았다. 직장을 그만둔 건 대표적인 예이다. 아주 맞지 않았다기 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상자 안에 갇혀 시간을 보내는걸 몸이 거부했다는게 정확한 이유다. 그럼 돌아다니는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해보았다. 환경이 아니라 조직이 주는 압박감이 문제였다. 스스로 의미부여가 되지 않다보니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적게 쓰고 많이 쉬자. 

 

젊었을 때도 실험적으로 이런 생활을 해보았는데 한달에 나가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집세나 기본 생활비를 제하고는 10만 원 정도면 30일을 버티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많은 돈을 벌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필요도 없는 돈(?)을 버는 대신에 그 시간에 내가 진짜 만족할 수 있는 몰두의 대상을 찾자. 고전음악 듣기, 지하철 타고 여행다니기. 시사회 이벤트 참여하기, 도서관에서 책읽기, 공원 산책하기, 산에 오르기, 여름철 동네계곡에서 헤엄치기. 이중 돈이 드는 일은 하나도 없다. 아주 소액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도 많다니.

 

그중에서도 으뜸은 글쓰기. 처음 글을 익혔을 때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몰두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한 때는 그 글로 밥벌이를 해볼 생각도 했지만 또 실제도 해보았지만 순수한 사랑이 사라진 연인관계처럼 금세 시들고 말았다. 어렵사리 나를 떠난 글쓰기를 겨우 찾아낸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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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에게 어떤 애교도 보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이른바 시건방 춤은 노래와 더불어 케이 팝의 지평을 넓히는 기폭제가 되었다. 


<아브라카다브라>는 케이 팝에 대한 편견을 깨부신 곡이다. 지금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강력한 사운드와 직설적인 가사는 정형화된 청순가련이라는 걸그룹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특히 뜻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주술은 강한 중독성으로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했다. 그렇다면 대체 뭘 그렇게 원했을까? 나를 떠난 연인과 새로 사귄 여자와 찢어져달라. 심지어 닮은꼴 인형에게 저주까지 걸면서. 이처럼 처절한 가사는 당시에도 센세이셔널했지만 지금도 흔하지 않다. 아마도 초반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나가면 다음이 문제다. 팬들의요구는 점점 더 강하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걸 크러시로 변신한 후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다. 가인 홀로 솔로로 독립하여 분투했지만 그녀 또한 고전하기는 마찬자기였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건 역전을 노리고 내놓은 <신세계>가 매우 세련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미 걸그룹의 수명인 다한 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브라카다브라>는 아이돌의 장르를 확대하는 기폭제가 된 노래임에 틀림없다. 곡과 더불어 화제가 된 시건방춤 또한 두고두고 사람들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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