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는 걸 자신만의 작은 사치라고 부른다. 사치 여부보다 어떻게 서적에 물을 묻히지 않는지가 더 궁금하지만, 나름의 비법이 있다고는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뭐 꽤 근사하다는 생각은 든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럭셔리한 느낌을 가진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

 

내게도 소소한 사치거리가 있다. 자판기 커피도 그 중 하나다. 저녁식사를 하고 산책을 할 때면 습관적으로 자동판매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마시는데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향을 가진 고급 커피도 대신할 수 없는 안락함이 전해져온다고 할까?

 

걸어서 십분거리에 큰 산이 있는 것도 행운이다.매주 한차례 오르면서 스스로의 컨디션을 챙긴다. 언젠가 오버해서 한 주일에 두 번도 간 적이 있는데 역시 무리였다. 산 자체를 타는 것도 좋지만 역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정상에서 먹는 식사다. 절에서 내주는 공양은 분위기만으로도 살아있음이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한 때는 인사동도 자주 들렀다. 유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짜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많아서다. 특히 개관일에 맞춰가면 작품설명도 듣고 다과도 즐길 수 있다. 먹을 걸 줘서라기보다는 대접을 받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한달에 한번은 꼭 가는 강남 순례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예스 24, 알라딘 중고서점 그리고 교보문고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다 보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사치를 부리는데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임이 확실하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여유로운 시간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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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뉴스쟁이들은 개가 사람을 물어서는 화제가 안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고 한다. 곧 흔한 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개로 인해 죽은 사람이 이름이 알려진 이이고 개 주인이 유명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당연히 난리가 난다.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평상시처럼 동네를 산책하다 언뜻 덩치가 있어 보이는 개가 보여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이미 늦었다. 개는 내 왼쪽 허벅지에 정확하게 이빨을 들이댔다. 뒤이어 개주인인 듯한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개에게는 목줄도 없었고 입막음 장치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개 주인은 피해를 입은 나보다 개를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사람을 물지 않는데. 마치 물린 책임이 내게 있는 듯한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흥분하기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의사는 나를 칭찬했다. 괜한 시비로 시간을 끌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순간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이 순간적으로 복받쳤다. 아니, 그 큰 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줄도 없이 다닙니까? 그는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애완동물들이 부쩍 늘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생긴 현상이다.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원래 동물은 애완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뛰어 놀고 먹고 자는 것이 생리다. 그런 동물들이 인위적으로 인간에게 길들여졌으니 알게모르게 스트레스카 차올랐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의 주거문화는 죄다 고층의 아파트먼트 문화 아닌가?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는 최악의 생활환경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자격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미 독일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자기 좋자고 키우는 동물이 사실은 해가 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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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레코딩스 컬렉션 [한정반][20CD]
말러 (Gustav Mahler) 외 작곡, 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외 지 / SONY CLASSICAL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시디가 처음 나왔을 때 환호와 비난이 동시에 일었다. 아무리 들어도 닳지 않는 영구적인 음원이라는 놀라움과 디지털 저장방식으로 소리의 폭과 울림이 좁아진다는 우려가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지금은 이런 논란마저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스트리밍으로 감상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구학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던, 괜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음반들이 염가로 무더기로 나오면 손이 벌벌 떨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어서 빨리 결제하루구, 한 장에 20만 원도 넘었는데 지금은 고작 3천 원도 안돼.

 

<클래식 레코딩스>는 구하기 귀한 음반을 모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니에서 2장에 1장 가격으로 발간한 것중에 절판되어 찾기 어려운 시디들이다. 그중에서도 빛나는 명반은 역시 세링의 바하 파르티타와 튜렉의 골드베르크 협주곡 하피스코드 연주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특히 바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두 거장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이 음반만으로도 본전은 찾고도 남으니 더이상 주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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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의 한 장면. 짱구가 가입한 교내 폭력서클 모임이 중국집에서 열렸다.

 

 

바람, 마, 그라믄 안돼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가 있다. 폭력물인데 진짜 싸우는 컷은 하나도 안 나오고 멜로인데 주구장창 남자만 나온다거나 공포장르인데 죽는 사람은 없는 식이다.

 

<바람>은 뭐지뭐지하면서 끝까지 보게 만드는 마성을 지니고 있다. 엄한 아버지와 잘나가는 형과 누나를 둔 짱구. 공부와는 담을 쌓은 지 오래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마쳐야겠기에 상고에 진학한다. 역설적으로 그의 전성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같이 놀던 동네 형들이 쌈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교내 폭력서클에까지 가입하게 되는데.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저 그렇다. 진짜 재미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조연들이다. 고등학생이라고하기에는 성숙한 그렇다고 어른으로 보이지는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쌈꾼들이 등장하여 걸쭉한 사투리로 화면을 압도한다. 연기자인지 실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알고보니 주인공으로 출연한 정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참고로 개봉 당시에는 소리소문없이 간판을 내렸다.그러나 무섭게 입소문을 타며 이른반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곧 한 번 본 사람은 보고 또 보는 중독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된다. 단지 찐한 남자의 세계를 그려서는 아니다. 투박한 편집고 낮은 조도에도 불구하고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중심으로 돌진하는 이야기의 박진감 때문이다.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말싸움뿐이라는 설정도 마음에 든다. 저건 거짓말이다, 라고 실소를 품게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후까시가 없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말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역은 점마가 선생이가 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앗싸리하게 학교를 그만두는 송준성 역의 정효원이다. 하도 아저씨같은 인상들이 많이 나와 도리어 반듯한 느낌마저 주었지만 영화의 극적인 전환을 이끈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학교가 전부인 학생에게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전한 상황에서 화끈하게 그만두고 후회없이 발길을 돌린다. 얼추 인생을 살아보니 학교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별게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정효원을 포함하여 이 영화를 빛낸 진정한 스타인 조연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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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내게 닥친 절실한 문제로

 

원전 건설 재개가 확정되었다. 당연히 어느 한쪽은 환호하고 다른 주장을 펼친 이들은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숙의제도라는 과정을 거쳐 시민 배심원단이 판단을 내린 결정이기에 과거처럼 극단적인 반대가 지속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원전이란 언제든 재앙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오스톰>은 기후변화가 더이상 미래의 재난이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다.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형 허리케인이나 극도의 가뭄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속에서 자연재해는 눈요기에 머물뿐 여전히 기술만능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곧 더치보이라는 위성의 개발로 기후는 안정을 되찾았으나 비정상적인 정치인의 농간으로 도리어 파괴의 무기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과연 그런 테크놀로지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한 영웅에 의해 지구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미 인류는 공동의 노력으로 재앙을 막은 적이 있다.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가스로 인해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자 즉작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생산 자체를 중단한 적이 있다. 일부 과학자는 극단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냉매 생산이 중단되자 오존층은 기적처럼 다시 복원되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그 결과물이다.

 

기후변화 또한 원인과 해결책은 이미 드러나 있다.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된다. 그중에서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생산이 핵심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는 어느 한 나라 혹은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전지구가 함께 노력해야 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도 탈퇴하고 말았다. 공화당 전임 대통령이었던 부시와 마찬가지로 미국식 생활양식을 부르짖으며 엄연한 과학적 사실도 거부하고 있다.

 

어쩌면 <지오스톰>같은 영화는 트럼프의 입맛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기술력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식의 사고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술만능주의를 신봉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닥친 절실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에 익숙해진 개구리가 자신이 서서히 죽는지도 모르듯이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을 야금야금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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