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빠진 뇌
"당장 꺼. 너 내가 택시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알었어요."
"정말, 계속 그럴거야. 한달간 용돈 없어."
"... ..."
"내 말 듣니?"
더이상 참고 있다간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한마디 거들었다.
"여기 도서관에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소리 좀 낮추시고 학생도 그만해요."
결국 직원이 와서 사태를 해결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 자리를 뜨고 나서 한동안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글쟁이는 의자에 앉아 글만 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하루종일 그럴 수 있겠나?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취재도 하고 뜀뛰기도 하고 헤엄도 친다.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에 온존히 한군데 박혀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 작업실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조금씩 글쓰는 환경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작용한 탓이다. 나의 경우 짧은 글을 쓸 때는 도서관내 피씨를 활용한다.
게임에 삐진 친구는 내 옆에 있었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피씨게임인 줄은 몰랐다. 나 또한 글을 구상하고 초안을 쓰고 거치고 퇴고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의 개입으로, 대체 아들이 도서관에서 공부는 안 하고 오락만 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려는지 모르겠지만, 파탄이 났지만, 게임은 처벌받고 글쓰기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어차피 둘 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한 건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와 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몰두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을텐데.
흔히 중독은 나쁘다, 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몰두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독만큼 좋은 선물도 없다. 온갖 시름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악의 기준은 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일 것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나라에 따라 적용하는 기준도 다른다.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는 불법이지만 유럽에서는 관대하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권리로 인정받지만 우리는 금지한다.
옳고 그름을 말하는게 아니다. 중독과 몰두는 동전의 양면이기에 일률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게임에 빠진 학생은 이게 왜 문제인지 여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말로는 그만 하겠다고 하지만 뇌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