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특히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지하철안에서 <누군가는 알고 있다>를 읽다 눈에 뛰는 문장이 있어 왼쪽 위 페이지를 살짝 접어두었다. 르네 나이트는 소설가의 숙명을 정말 잘 알고 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글을 잘 쓰는 능력은 타고난다고들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장편으로 몇 십권을 쓸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한번 써보세요라고 하면 과연 몇 페이지나 쓸 수 있을까? 한 쪽도 넘기기 힘들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잘 알 것이다.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런 힘든 일을 밥먹듯이 해내는 작가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작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글솜씨가 아니라 용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저런 꾸밈이야 있겠지만 사업서가 아닌 이상 글은 자신의 일부이다. 자신을 꾸미고 속이고 적당이 은폐하려는 글은 어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때로는 적나라하게 그러면서도 품위있게 밀당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모른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대부분이 무의미했다. 돈벌이를 위해 하는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한 때는 내가 부적응자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쾌활하고 대범한 성격인 것처럼 위장했다. 당연히 큰 문제없이 학교와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건 아니다, 라는 위화감이 뙤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실체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결국 내 진정한 의문은 늘 인간의 본성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자의인가, 타의인가, 주변상황때문인가, 생물학적 이유인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매체는 소설이다, 라고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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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2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ㅋ

카이지 2017-10-2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건 기본이죠. 답글 감사합니다^
 

게임에 빠진 뇌

 

 

"당장 꺼. 너 내가 택시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알었어요."

"정말, 계속 그럴거야. 한달간 용돈 없어."

"... ..."

"내 말 듣니?"

 

더이상 참고 있다간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한마디 거들었다.

"여기 도서관에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소리 좀 낮추시고 학생도 그만해요."

결국 직원이 와서 사태를 해결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 자리를 뜨고 나서 한동안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글쟁이는 의자에 앉아 글만 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하루종일 그럴 수 있겠나?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취재도 하고 뜀뛰기도 하고 헤엄도 친다.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에 온존히 한군데 박혀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 작업실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조금씩 글쓰는 환경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작용한 탓이다. 나의 경우 짧은 글을 쓸 때는 도서관내 피씨를 활용한다.

 

게임에 삐진 친구는 내 옆에 있었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피씨게임인 줄은 몰랐다. 나 또한 글을 구상하고 초안을 쓰고 거치고 퇴고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의 개입으로, 대체 아들이 도서관에서 공부는 안 하고 오락만 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려는지 모르겠지만, 파탄이 났지만, 게임은 처벌받고 글쓰기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어차피 둘 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한 건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와 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몰두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을텐데.

 

흔히 중독은 나쁘다, 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몰두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독만큼 좋은 선물도 없다. 온갖 시름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악의 기준은 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일 것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나라에 따라 적용하는 기준도 다른다.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는 불법이지만 유럽에서는 관대하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권리로 인정받지만 우리는 금지한다.

 

옳고 그름을 말하는게 아니다. 중독과 몰두는 동전의 양면이기에 일률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게임에 빠진 학생은 이게 왜 문제인지 여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말로는 그만 하겠다고 하지만 뇌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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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감독, 밥 발라반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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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시선에서 본 아이들은 불완전함 그 자체다. 스스로를 지킬 경제력도 없고 체력도 약하며 오로지 보호자에게만 의존해야 한다. 만약 후원자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온존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다.

 

<문라이즈 킹덤>은 불우한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각자 상처를 안고 모인 아이들이 보이스카웃복장을 하고 단체생활을 한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면 불안하기만한 나날을 보내는 카키는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문제아다. 조금만 삐끗해도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인 상황에서 과연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고통을 벗어나는 유일한 힘은 상상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현실이 아니고 가짜세상이다. 언젠가 나는 훨훨 날개짓하면 진짜 세계로 날아갈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그런 어른이 되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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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엑스 리턴즈 (1disc)
D.J. 카루소 감독, 토니 콜렛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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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귀한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 스트레스를 받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액션무비는 단순한 캐락의 정점이다. 때리고 부수고 날라다니면 그만이다. 스토리따위는 상관없다. 그러나 이런 장르에도 금도가 있다. 적당히 욹어먹어라.

 

<트리플 액션 리턴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기 시리즈를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익숙한 인물들이 나와 반갑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육해공을 다 동원했다고 해도 갈등이 없는 이야기는 보는 내내 맥이 빠지게 만든다. 마치 씨에프를 장편으로 만든 것 같은 허무함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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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알고 있다
르네 나이트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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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탄로나게 마련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우리 집에 그렇게 많은 빚이 있다는 걸. 빚쟁이가 장례식장에 찾아와 상주를 찾을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야속했다. 살아계실 때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자식들을 배려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고 생각한다. 망자에게 어떻게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당해보면 안다.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죽어버린 부모를 가진 자식들은. 대책을 내놓으라는게 아니다. 함께 고민하자는 뜻이다.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과거를 둘러싼 이야기다.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믿는 부부 앞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소설이 배달된다. 그 책에는 남편의 적나라한 지난날을 알게 된다. 과연 이 이야기가 맞는지, 아니면 그냥 꾸며맨 것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20년 동안의 비밀들이 한꺼풀씩 벗겨지며 정체를 드러낸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는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은 부질없다. 끝까지 숨긴다. 증거나 단서가 없어서가 아니다. 덮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드러났을 때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두려워서다.

 

작가는 그래서는 안된다. 슬쩍 눈감아줄 수도 있는 일에도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대야 한다. 그 대가가 참혹할지라도. 르네 나이트는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내리고 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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