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쓰다 신조의 글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이유도 모른채 술술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엇 하고 놀라게 된다. 알고보니 다 가짜였잖아. 마술이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속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새 자연스레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작가와 읽는 이는 알게모르게 계속 두뇌싸움을 하게 된다. 이 전쟁은 서로의 예측이 계속 어긋나야만 끝까지 이어진다. 행여 에게 내 이럴 줄 알았어 하는 순간 바둑 돌을 던져야 한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일본 시골의 신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인데, 억지로 말하자면 마을의 우환을 미리 막는 정령쯤이라고 할 수 있다. 신남들은 인과 신의 경계에서 온갖 고단한 일을 치루는데, 기우제를 올리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농경사회에서 물은 신앙이나 마찬가지이니 가뭄은 대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신남들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마을에는 점점 흉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데.

 

아, 왜 우리나라에는 이 정도 소설이 없을까? 오랜기간 농업사회였고 전설 하나 없는 동네는 드문데. 단지 분단과 군사독재이 영향때문인지, 아니면 겉멋들린 게으른 작가들 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선각자가 있다면 뿌리깊은 나무를 발간한 한창기 선생이다. 이 잡지에는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지역의 문화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은퇴후 내가 할일은 이 책을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읽고 번외로 한국의 발견을 꼭꼭 씹어 읽는 것이라고 일찌감치 결심을 굳힌 지도 10년이 지났다. 정말 개고생하면서 책은 다 구해놓았으니 이제 남은 건 일을 쉬는 거다. 어서 빨리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프로 작가는 늘 독자를 염두에 둔다. 개인 일상을 다룬 글이라도 어떤 형태든 극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끝까지 읽도록 만든다. 그러나 가끔은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이게 과연 내 진심인가? 아니면 글의 소재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도 같은 고민을 했다. 슬픈 감정이 다가올 때 아하, 이걸 멜로디나 가사로 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기기만 같은 걸 느낀단다. 도리어 마음을 더욱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더 처절하게 겪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다. 예술가의 멍에같은 것이다.  

 

 

이 글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싸구려 감상을 극대화시킨 미담같은 것이 될까 봐서다. 이럴 땐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같은 생각이 세번이상 떠오르면 행동에 옮기면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그널이 왔다.

 

 

매주 한차례 산에 간다.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크지만 정상 인근 절에서 제공하는 밥과 반찬을 먹는 재미도 있다. 정직하게 말해 맨밥에 나물과 김치, 국이 전부인 공양은 맛이 없다. 땀을 흘리고 난 후라 왠만하면 입맛이 당길법도 한데. 그럼에도 사양하지 않고 매번 먹는다. 빠트리지 않는 의식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가끔 허탕을 칠 때가 있다. 갑자기 식당 공사를 하거나 행사가 있거나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이다. 곤란한다. 매법 맛없다고 투덜대면서도 먹지 못하고 내려오면 내내 찜찜하다. 물론 허기도 진다. 어제도 그럴 뻔 했다. 입구에 오늘은 오후 1시까지 공양한다는 표지를 보고 순간 아차 싶었다. 시간은 오후 1시 5분. 그래도 남겨놨겠지하고 서둘러 들어갔거니 역시 국과 반찬이 보인다. 휴우 안도의 숨을 쉬고 밥솥을 여는데 이런 없다. 밥주걱을 내려놓은 아주머니 두 분이 미안한듯 말한다. 미안해요. 더 이상 밥이 없네요. 낭패다. 이런 어쩐다. 국에 대충 반찬을 버무리고 찬물에 부어 말아 먹을까?  

 

그렇게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던 아줌마가 다가온다. 저기 조금이라도 드세요. 언뜻 봐도 적은 양이다. 바닥에 붙어 있는 밥을 겨우 긁어모은 듯하다. 나는 당황하여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내 밥그릇에 담아준다. 아니에요. 한 숟가락이면 됩니다. 허기만 면하면 되요.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한 번 더 건네려는 팔을 조심스레 뿌리쳤다. 그리고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밥을 먹는 내내 여러 잡념이 교차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이한 마음부터 우리나라에 살기를 정말 잘했다라는 거창한 망상까지. 그러느라 정작 가방에 사탕이 있다는 사실까지 까먹었다. 그거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별 내용이 없다. 그런데 왜 계속 콩 한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이걸 제목으로 삼으면 정말 구질구질해보일텐데. 그럼에도 다른 타이틀은 전혀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콩 한쪽을 어떻게 나누어 먹냐구요?로 낙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2012 - 일반판 (1disc)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아만다 피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재난은 영화의 단골소재다. 관객들은 평소에 익숙하게 보지 못하는 압도적인 광경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최후의 날이라니. 벌써부터 흥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멸망에 대한 열망(?)은 고대부터 이어져왔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기담처럼 전승되어 진짜로 믿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만약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생각에 그다지 극적이지 않을 듯 싶다. 아침에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쉬고 졸다 '어' 하고 다들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을까?

 

<2012>는 인류 최후의 날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당연히 누군가는 맞서고 어떤 이는 체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신께 경배를 드린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 닥쳤을 때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뭔가 색다른 해석이 있을까 싶어 끝까지 지켜보았지만 더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단지 <투모루우>에서 못다한 씨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는 생각만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투모로우 S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20세기폭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기후변화는 일상용어가 된 지 오래다. 실제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여름은 길고 겨울은 짧아진다.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집중호우는 어느내 친근해지기까지 했다. 정말 이러다가 날씨가 갑자기 미쳐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맞다와 틀리다 모두 가능하다. 롱 히스토리 관점에서 볼 때 언젠가 빙하기에 돌입할 것은 자명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수천년 동안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절단 나는 일은 없겠지만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재난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투모로우>는 지구온난화의 의험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북극의 얼음탐사로부터 시작된 이상 증상이 어떻게 전세계로 퍼져나가는지를 실감있게 전달한다. 다행히 전멸 직전에 지구궤도가 바뀌며 정상을 되찾지만 이런 아찔한 상상이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뉴욕공공도서관이 인류 최후의 비난처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급격한 기온강하로 다들 떨고 있을 때 책은 유용한 수단임을 열심히 증명한다. 아무리 뛰어난 전자기기가 있다 할지라도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지만 책은 단지 읽는데 그치는데 아니라 연료로서도 탁월한 역할을 한다. 종이책은 누가 뭐래도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부처님과 함께한 지옥여행기 - 임사체험 그래픽 회고록
새뮤얼 버콜즈 지음, 빼마 남돌 타예 그림, 고수연 옮김 / 정신세계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지옥도를 보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펄펄 끓는 탕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그 위로 소들이 밭을 갈고, 아비규환 속에서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나? 죽어서도 괴로운게 지옥이라더니. 

 

<부처님과 함께한 지옥여행기>는 동양의 죽음관을 담고 있다. 서양이 마치 탐험이나 모험같은 느낌이라면 아시아는 그야말로 생지옥의 끝판왕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통이 줄줄이 이어진다. 열지옥은 그저 맛뵈기다. 그 다음은 시궁창, 그리고 죽어도 죽어도 계속 죽는 대량학살의 고통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냉탕이다. 차가운 쓸쓸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정말 죽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즈음 일부는 다시 인간세계로 환생한다. 사람이 될지 동물로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영겁회귀는 영원히 이어진다.

 

지옥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착하게 살아라. 죄짓고 살면 영원한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상징이건 이미지이건 지옥은 지금까지 사회를 지탱해 온 지주였다. 아무리 악이 판쳐도 선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증명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