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작가는 늘 독자를 염두에 둔다. 개인 일상을 다룬 글이라도 어떤 형태든 극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끝까지 읽도록 만든다. 그러나 가끔은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이게 과연 내 진심인가? 아니면 글의 소재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도 같은 고민을 했다. 슬픈 감정이 다가올 때 아하, 이걸 멜로디나 가사로 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기기만 같은 걸 느낀단다. 도리어 마음을 더욱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더 처절하게 겪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다. 예술가의 멍에같은 것이다.
이 글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싸구려 감상을 극대화시킨 미담같은 것이 될까 봐서다. 이럴 땐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같은 생각이 세번이상 떠오르면 행동에 옮기면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그널이 왔다.
매주 한차례 산에 간다.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크지만 정상 인근 절에서 제공하는 밥과 반찬을 먹는 재미도 있다. 정직하게 말해 맨밥에 나물과 김치, 국이 전부인 공양은 맛이 없다. 땀을 흘리고 난 후라 왠만하면 입맛이 당길법도 한데. 그럼에도 사양하지 않고 매번 먹는다. 빠트리지 않는 의식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가끔 허탕을 칠 때가 있다. 갑자기 식당 공사를 하거나 행사가 있거나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이다. 곤란한다. 매법 맛없다고 투덜대면서도 먹지 못하고 내려오면 내내 찜찜하다. 물론 허기도 진다. 어제도 그럴 뻔 했다. 입구에 오늘은 오후 1시까지 공양한다는 표지를 보고 순간 아차 싶었다. 시간은 오후 1시 5분. 그래도 남겨놨겠지하고 서둘러 들어갔거니 역시 국과 반찬이 보인다. 휴우 안도의 숨을 쉬고 밥솥을 여는데 이런 없다. 밥주걱을 내려놓은 아주머니 두 분이 미안한듯 말한다. 미안해요. 더 이상 밥이 없네요. 낭패다. 이런 어쩐다. 국에 대충 반찬을 버무리고 찬물에 부어 말아 먹을까?
그렇게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던 아줌마가 다가온다. 저기 조금이라도 드세요. 언뜻 봐도 적은 양이다. 바닥에 붙어 있는 밥을 겨우 긁어모은 듯하다. 나는 당황하여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내 밥그릇에 담아준다. 아니에요. 한 숟가락이면 됩니다. 허기만 면하면 되요.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한 번 더 건네려는 팔을 조심스레 뿌리쳤다. 그리고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밥을 먹는 내내 여러 잡념이 교차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이한 마음부터 우리나라에 살기를 정말 잘했다라는 거창한 망상까지. 그러느라 정작 가방에 사탕이 있다는 사실까지 까먹었다. 그거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별 내용이 없다. 그런데 왜 계속 콩 한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이걸 제목으로 삼으면 정말 구질구질해보일텐데. 그럼에도 다른 타이틀은 전혀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콩 한쪽을 어떻게 나누어 먹냐구요?로 낙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