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 아저씨
네코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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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민주화된다는 증거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도 문제가 되는 않는 거다. 지난 9년 보수당이 집권한 우리나라에서는 풍자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어디 감히 서민들이, 이라는 심보를 가진 이들이 집권세력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언제 또다시 검열의 칼날이 날카로워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땐 또 촛볼을 들어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직하게 말해 좀 피곤하다.

 

한가지 좋은 조짐은 기꺼이 스스로 웃기는 상대가 되려는 중늙은이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아재개그는 대표적인 예이다. 첫 출발은 매너없고 권력지향적인 개저씨를 비꼬는 말이었지만 어느새 아저씨 스스로가 즐기고 있다. 심지어는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도 팟케스트에 나와 방방 뜨는 말을 해댄다. 정봉주를 보라. 그보다 나이는 다소 어리지만 김어준도 같은 부류다.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렇게 자기조롱이 일상화되면 역설적으로 세대간의 격차도 줄어든다.

 

<시바 아저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실권을 죄다 빼앗인 일본 아저씨들의 자화상이다. 집에 가면 자신이 쉴 곳도 마땅치 않아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집밖에 나오면 강둑에 죄다 아저씨들 천지인 식이다. 남편이란 그저 돈을 버는 개에 불과하다는 자조섞인 푸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유쾌한 자기 비하야말로 한 사회가 성숙해가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주부도 워킹만도 실업자도 직장인도 대학생도 중딩도 고딩도 초딩도 낄낄 거리며 자기 처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나라야말로 명랑국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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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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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잡식성 포유류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언어가 있고 뇌가 발달했다는 것은 차이가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단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단 한가지 다른 점은 시간을 인식하는지의 여부다. 곧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도 올 것이라고 생각할 줄 안다.

 

사실 시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주관적인 세계다. 신비주의에 빠진 사이비 종교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아니다. 아인슈타인 이론에 나와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휘어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반신반의하신다면 지금까지 겪어온 시간을 대해 떠올려보시라. 마음에 드는 남성 혹은 여성을 소개받고 어렵게 애프터 신청을 하여 다시 만나기로 한 날 아침으로 돌아가보자. 그날 하루는 평소와 같았는가? 아닐 것이다. 몇 번이고 시계를 보며 초조하고 불안하고 설레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나면 어땠는가? 한달 같았던 기다린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지 않았는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군대에 가본 사람은 안다. 갓 입대한 후 고참에게 무조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 군에서의 시간은 더디도 더디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막상 병장이 되어 제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으면 급초조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과 왠지 눌러앉고 싶은 미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조금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사형을 앞둔 죄수는 시간을 어떻게 의식할까? 그에게 하루하루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집행일 30일 전과 바로 직전에 느끼는 시간은 절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는 타임을 둘러싼 오묘한 세계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흔히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지루하면 느리게 신나면 빠르게 휙 달려가는게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정답은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먹을 땐 먹고 잘 땐 자고 놀 땐 놀고 책읽을 땐 읽고 글쓸때는 쓰기만 하면 된다. 늘상 문제는 딴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현재에 살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고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진을 다 빼다보면 어느새 시간의 노예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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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레이 얼 지음, 공보경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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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는 인류의 출발부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형태의 소위 근대소설은 고작 이백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문명에 비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물간 장르 취급을 받는 건 영상의 압도적인 약진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현란한 화면이라도 스토리가 없으면 활동사진에 불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힘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는 스토리에 대한 기본 관념을 깨는 책이다. 기승전결이라는 흐름이 있어야 하고 대화와 서사 혹은 설명이 적절히 섞여야 되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틀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리고 있다.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것이지만.

 

마치 시티콤처럼 순간 순간 이어지는 짤막한 에피소드는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빛을 발했다. 드라마의 형식에 딱 맞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시리즈에 반해 원전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사람이라면 실망할 법도 하다. 이건 완전히 루저의 자기고백아냐?

 

그럼에도 이 책의 미덕은 글에는 어떤 한계도 없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황금법칙은 소설에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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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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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명작을 쓰는 작가도 드물게는 있지만 대부분은 어설프게 마련이다. 물론 번뜩이는 무엇인가는 있다. 미쓰다 신조도 마찬가지다. 그의 최근작을 읽다가 이른바 작가시리즈의 출발인 <기관>을 보니 같은 소설가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허술하다. 뭔가 잔뜩 쓰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른다고 할까? 초심자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중 하나다. 곧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마구 늘어놓는다. 반면 베테랑이 되면 절반쯤은 숨기고 슬쩍 슬쩍 편하게 툭 하고 털어놓는 식으로 글을 쓴다. 독자는 작가의 지식욕에 반하는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매력에 빠져든다. 처음에 전부를 보여주면 더이상 거들떠 보지 않는다.

 

또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번역 문제도 있는 듯 싶다. 최근 들어 미쓰다 신조의 글은 현정수 선생께서 전담하여 옮기고 있는데, 그 쪽이 훨씬 매끄럽고 읽기에도 편하다. 반면 김은모씨의 번역은 왠지 껄끄럽다. 직독직해 위주로 작가의 묘한 뉘양스가 살질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어 노()는 굳이 옮길 필요가 없는 꼬박꼬박 의로 번역하는 바람에 읽는 내내 덜컹거리며 진도가 나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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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카터
마이크 호지스 감독, 마이클 케인 외 출연 / 야누스필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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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처리 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짜증이 치민다. 굳이 저렇게 가릴거면 아예 잘라버리지. 최근에는 담배 피는 장면까지 뿌옇게 처리한다. 흡연을 유발한다는 이유인데 어이가 없다. 어차피 필 사람은 그따위 신경쓰지도 않는다구.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구. 얼씨구, 누가 그런거 보기나 한데.

 

<겟 카터>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무더기 검열 대상이다. 포르노에 섹스. 노출, 폭력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그것도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채로. 이야기는 형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억울함 죽음이었다. 야마가 돌아 피의 복수를 전개한다. 죽음과 관련된 사람은 모조리 욕탕에서, 풀밭에서, 해변에서 살인해나간다. 그렇게 해서 무사하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의 머리에도 총알이 박힌다.

 

하드보일드가 영국식으로 변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분명히 잔인한데 정중하고 깔끔하다. 심지어 피가 튀는 상황에서도. 한가지 더 눈여겨볼 점은 주인공이다. 마이클 케인의 젊은 시절은 지금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영국신사의 느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정말 터프했다. 그런데 그게 또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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