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집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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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포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곧 실체가 없는 무서움이야말로 진짜 괴로운 것이다. 재미있는 건 멀리하면 할수록 더욱 더 자신을 죄어온다. 미스터리 소설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쓰이 신조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호러를 증폭시킨다. 예를 들면 이야기를 바로 시작하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혹은 넘겨받았다 식으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독자들은 그 순간 깜빡 속는다. 어 소설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 아냐?

 

이 책에 수록된 다섯가지 이야기는 누군가 한번 겪었음직한 일이라 더욱 오싹하다. 새로 이사간 단독주택.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마땅한데 뭔가 찜찜하다. 아이는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어 벽과 대화를 나누고 이웃집 아이는 제 집인양 들락날락한다. 뭐 여기까지는 사소한 불편이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옆집 남자아이가 사라진다. 우리 집에서. 처음엔 내가 의심을 받지만 곧이어 이웃집 여자가 그 시간에 빠징코에 있었다는게 밝혀지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아이는 벽안의 친구가 데려갔다는 이상한 말만 계속하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애간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이야기는 새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맥없이 끝난다.  

 

하숙집을 소재로 한 다른 딘편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자꾸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열린 문안으로 들어가보니 기괴한 느낌에 온 몸이 오싹거린다. 어찌어찌 탈출하여 다음 날 가보니 분명히 205호였는데 204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203혼데, 그리고 분명히 옆집은 205호인데 언제 204호가 생겼지? 결국 비밀은 알지 못하고 돈을 돌려받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명쾌한 결말을 보고 싶은 사람은 신조의 글에서 허무 개그의 냄새를 맡을지도 모른다. 대체 뭥미? 그러나 어두움의 근원을 겪어본 사람은 도리어 진짜가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어차피 이 모든 건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망상이니까.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비웃으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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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독, 리스크를 걸고 벌이는 심리전쟁

 

 

나는 보이스카웃이었다. 여름이면 수련회를 갔다. 남이섬이었다. 첫 날을 정신없이 보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에 일어나보니 왠지 주변 공기가 서늘했다. 친구 한 명이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괜찮니?"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응"하고 대답했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대장이 다가왔다. "너 여기서 뭐하니? 전화는 걸어봤어" 나는 식판을 손에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뭘 모르나 보구나, 나랑 함께 가자."

 

가스가 폭발했다. 12층 높이의 아파트먼트 위로 솟구쳤을 정도라고 하니 위력이 대단했던가 보다. 창문들은 죄다 박살이 났고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새벽이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사망자자 부상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란다. 나는 티브이 화면에서 뚜껑이 날아간 가스저장소를 보고 저곳이 내가 살던 집이라는 곳을 알았다. 가스 냄새가 난다고 항의하던 주민들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어떻게 아파트 동 바로 앞에 저런 시설을 설치했냐고.

 

만약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생을 마감했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장담할 수 없지만 보이 스타우트 복장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을 것은 분명하다.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다. 어머니가 인터뷰를 한 화면이 9시 뉴스를 장식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물론 사고보상을 둘러싼 싸움이 길고도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보험사에서도 사람들이 나왔을 것이다.

 

드라마 <매드 독>이 심상치 않다. 1회를 보지 못하고 2회를 먼저 시청하는 바람에 이야기 전개는 놓쳤지만 상관없다. 이미 한 회만으로도 전설이 남을 만한 명장면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런 드라마를 기다려왔다. 흔하디 흔한 남녀간의 사랑이나 선와 악이 분명한 흑백논리가 주을 이루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옮음과 그름이 뒤섞이며 시청자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등장인물들이 전직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보험은 확률게임이다. 리스크를 걸고 벌이는 심리전쟁이다. 가입자는 속이고 청구자는 속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 본성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가 벌어지기 딱 좋은 공간이다.

 

다시 보기로 첫 회를 보았다. 비행기 추락에 버금가는 건물 붕괴라는 충격적인 장면이 화면를 장식했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 액션영화 뺨치는 블럭버스터급 사건을 연달아 보여줄 수 있다니 새삼 한국드라마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화면만 멋진게 아니다. 연기도 좋았다. 유지태야 인정받은 배우라고 해도 우도원은 정말이지 지금까지 이런 배우가 있었나 싶을만큼 감탄스럽다.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함께 지닌 그가 3화부터는 본격적인 매드 독의 일원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또 하나 장담하건내 이 드라마는 <굿 닥터>에 이어 미국에서 러브콜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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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 굿 닥터 - 프리미엄판 (12disc + 52p화보집 + 전회차 대본집) - 주연배우4명 친필사인엽서 인쇄본 각1매
기민수 감독, 주상욱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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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을 사로잡지 못하면 관객은 참았던 하품을 하며 언제쯤 끝날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만약 드라마라면 리모트 콘트롤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채널로 갈아탄다. <굿 닥터>는 이런 시청자의 속성을 확실히 간파하고 처음부터 초강수를 둔다. 멀쩡하던 기차역의 전광판이 부서지면서 다치게 된 아이. 강박증을 앓고 있는 의사의 등장. 과연 이 닥터는 어린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그 순간 씬은 대학병원으로 돌아간다. 신규 의사를 뽑는 이사회 자리. 서번트 증후근이 있는 의사를 선발해야 말지 각론이 벌어지고 탈락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쏠리는데. 난데없이 뉴스에 기적의 의사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뜬다. 그가 바로 박시온, 바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아이를 살려낸 닥터다.

 

정직하게 말해 방영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흔한 의료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마음을 확 끄는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보기로 보며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시나리오가 끝내주기 좋았던 덕도 크다.

 

최근 에이비씨 방송에서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재해석할까 궁금해서 1편과 2편을 보았다. 한국 방영분과 거의 흡사한 설정인데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주원은 의사보다는 환자에 가까웠지만 프레디 하우모어는 증세가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는 순수한 느낌이 들었다. 두 주인공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까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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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하트
앨리슨 앤더스 감독, 일리아나 더글라스 외 출연 / 영화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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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는 재미없게 만들기 어려운 장르다. 멜로디가 영상의 취약함을 메꾸어줄 뿐만 아니라 보고 나서도 오래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라라 랜드>가 대표적인 예이다. 극장문을 나서면서부터 한동안 씨티 오브 스타의 선율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성이 여전히 차별을 받는 시대. 노래로 이름을 알리지만 그녀의 진짜 꿈은 작곡가. 우여곡절끝에 대작곡가로 이름을 날리지만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새로 내는 노래마다 실패를 거듭한다. 과연 재기를 할 수 있을까? 간간이 들리는 멋진 연주와 아름다운 노래도 칙칙한 스토리를 반전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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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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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에 푹 빠졌다. 기분 나쁜 표지에 비급 정서를 듬뿍 담은 <괴담의 테이프> 덕분이다. 처음에는 별로였다. 초등학생들이나 즐길만함 허무한 기담열전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무서움에도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벌벌 떨거나 그럴 일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어설픈 괴담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는데 그건 작가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방법 때문이다. 곧 스토리를 바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밑자락을 깔며 서서히 독자들을 유인한다.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양 긴장이 고조되는데.

 

<노조키메>는 신조의 장기가 백 퍼센트 발휘된 책이다. 주인공인 편집자는 괴이한 이야기에 빠져 지낸다. 당연히 일본 각자의 괴상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우연히 기담을 모아놓은 노트를 발견한다. 이 과정 또한 매우 흥미롭다. 매력적이지만 사기성이 농후한 어떤 이가 팔려고 한 것을 거절하지만 원래 집필자의 유언 덕에 다시 얻게 된다. 매우 신비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암시를 처음부터 강하게 암시한다.

 

이 책은 두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별개인 것 같지만 다 읽고다면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 신조는 그 장치를 곳곳에 숨겨주고 독자들과 두뇌게임을 벌이는데 비밀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스릴러 소설과 다른 점은 비밀을 해결하는 쾌감보다 일이 다 끝나고도 헤어나오기 힘든 끈적끈적함이 물씬하다. 마쓰다의 장기인 누군가 자꾸만 나를 훔펴보는 것 같은 시선의 공포를 극화시킨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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