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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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중생이 죽었다. 사인은 목졸림. 범인은 친구의 아빠로 추정된다. 현재 그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 다행히 고개짓으로 예, 아니오는 가능하다. 아내는 몇 달전에 자살했다. 피부병이 있는 딸의 수술비와 입원비를 마련하려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대체 이들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괴담의 테이프>는 오싹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나만 맛뵈기로 알려주자면. 돈이 궁한 상황에서 일당이 센 알바 제안을 받는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룻밤 집에 머물면 된다. 부부가 함께 외출을 하는데 홀로 계신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서다. 남편은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심해 한시도 곁을 떠나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득의하게 집을 비우게 되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부른 것이다. 당부의 말을 하고 떠나려는 순간 아내가 불러 비밀을 알려준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남편은 여전히 살아계시다고 믿지만. 그러니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하루 푹 쉬기만 하면 된다고.  영화 <싸이코>를 모티브로 한 듯한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한가지 분명한 건 편하게 지내다 무사히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괴담은 현실이 무서울 때 빛을 발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롭기 그지 없을 때 사람들은 자극적인 재미를 찾기 위해 무서운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러나 만약 살아가는 세상이 참혹하고 무시무시하다면 굳이 미스테리 소설을 접할 이유가 없다. 하루하루가 공포영화니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자생적인 추리나 스릴러 작가가 매우 드물고 기껏 출간되어도 잘 팔리지도 않는다.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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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 - 2022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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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첫 사랑 이야기를 하며 꺼이꺼이 우는 사람을 봤다. 아마도 술을 거나하게 걸친 듯 했다. 그 사연이야 애절하겠지만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니 내내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그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어 뭐라고 한마디 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까 두려웠다. 결국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다음 열차로 갈아탔다.

 

 

흔히 남자는 여자에 비해 첫사랑에 약하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의 아내가 처음 사귄 사람은 아니다. 결혼전에 만나고 헤어지고 그런 사이가 서너번 있었을 뿐 첫사랑이라고 콕 집어 말할만한 상대는 없다. 물론 처음 이성친구로 만난 사람은 있지만 불행하게도 썩 좋은 기억은 없다. 내게 첫사랑은 그저 상상의 영역이다.

 

 

<플립>은 첫사랑 소설이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짝사랑하지만 남자가 있지만 그 애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을 접으려는 순간  그가 다가오면서 일이 꼬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막상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자 당황하게 된 것이다. 좋아하면서도 말은 못겠게 그렇다고 물러서자니 눈앞에 어른거리고. 이럴 땐 남자가 용기를 내야 하는데 그럴 기민도 안 보이고. 이런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좋아하는 감정이 결혼으로 골인된다는 보장도 없고, 싫다고 해서 마냥 꺼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볼 뿐이다. 단 그 과정에서 닥치는 우여곡절과 아픔은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시련이 모두 지나고 나면 죽음이 문을 활짝 열고 마중나오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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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 : 렌탈용
엄지원 외 출연 / 엔터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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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무거우면 지레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성노예를 다룬 귀향을 아직 보지 못했고 광주항쟁이 주제인 화려한 휴가도 선뜻 감상하게 되지 않는다. 대신 택시운전사는 봤다. 광주가 주무대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다룬 것이라 강도가 다소 약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부딪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는 데는 돌아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렇다고 무뎌져서는 안되겠지만.

 

<스카우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가운데 가장 소프트하다. 시위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양념정도다. 핵심은 선동열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우여곡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연세대학과 고려대학간 라이벌 관계는 살벌했다. 영화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최동원을 연대에 빼앗긴 고대는 선동렬 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다고 벼르고 별렀다. 실제로 그는 고대 투수가 되었다.

 

주인공을 맡은 임창정의 연기는 그가 나온 영화중 최고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베스트에 꼽을만하다. 그만큼 자연스러움이 넘쳐났다. 대학때 사귀다 시위학생을 구타하는 사건으로 헤어진 여인 역의 엄지원도 청순함이 빛을 발했다. 다만 사투리는 영 어색했다. 이밖에도 선동렬을 연기한 이건주, 아버지역의 백일섭, 어머니로 분한 양희경은 닮음꼴로 인해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김현석 감독은 거창하고 큰 이야기로 부담감만 지우는 누군가와 달리 거대한 역사적 사건앞에서도 사소한(?) 에피소드로 감동을 자아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최근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 또한 스카우트의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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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연연하고 꼼꼼하고 섬세한 완벽주의자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뜻밖이었다. 심지어 비비씨 방송에에서조차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몇번이나 물 먹은 하루키가 이번에는 기어코라는 염원이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우여곡절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디카프리오처럼. 물론 우리에게는 고은 선생에 대한 기대가 또 있었다. 그밖에도 쟁쟁한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즈오는 이변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그나마 알려진 <남아있는 날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흔히 문학은 주관적이라 상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단지 한 작가에 대한 공로상 성격이 크다고 주장한다. 수학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듯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소설만큼 실력차가 큰 분야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소설을 보며 감탄하지만 반대로 우리 작가가 쓴 글은 감동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곧 문장의 차이가 아니라 창작력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창의력이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깊고 넓은 지식의 샘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최근 읽고 있는 기타무라의 <하늘을 나는 말>이 대표적이다. 살인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라는 소재부터 신선할 뿐 아니라 주인공이 여대생과 만단꾼이라니. 게다가 만담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저리가라다. 우리나라에서 판소리꾼과 국악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짝을 이루어 동네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이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김영하의 주장처럼 단지 영미 중심의 문학상이기에 비중을 크게 들 필요 없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아무레도 서양은 갈등구조와 해결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동양은 좋게 말하면 원만하게 나쁘게 말하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게 마련이다. 비가 많이 왔다, 라는 표현도 구미 작가들은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는게 기본이다. 빗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울리는 걸 보니 폭풍을 동반한 것인가 보라, 라는 식이다. 물론 단순미도 필요하다.

 

그러나 치밀하게 쓸 줄 알면서도 적절하게 담백하게 풀어쓰는 것과 구체적으로 묘사할 줄 몰라 그냥 떠오르는대로 단어를 골라쓰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분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로 일관되게 자기 작품세계를 펼쳐가는 작가는 지금끼지 없었고 현재도 부재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꼼꼼하고 섬세한 완벽주의자 기질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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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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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명실상부 출판강국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인간도 화수분처럼 마르질 않는다. 아사히 신문 1면의 광고를 늘 책에 양보하는 건 그냥 허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를 찌르는 작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등장하여 독자들을 휘어잡는다. 기타무라 가오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단순히 미스테리 작가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하다. 폭넓은 일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같지 않은 일을 해결해나간다. 물론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늘을 나는 말>은 이른바 엔시 씨와 나 시리즈의 출발을 알리는 책이다. 만담꾼과 여대생이 짝을 이뤄 독특한 문제를 차근차근 무리없이 풀어나간다. 얼핏 읽으면 에게,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이완되면서 편안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모든 고민의 원인은 감정이며 그 감정을 사실은 자신이 억압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오리베의 망령>에서 나온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박학다식한 노학자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어렸을 적 꾼 악몽에서 여저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이 괴로움을 엔시 씨와 나는 충분한 대화로 실타레를 벗기듯 하나씩 풀어헤친다. 그 과정이 너무도 고혹적이고 탐할만큼 아름다워 짬짬이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아, 이런 소설을 쓰는 일본 문학의 저변은 얼마나 넓고 깊은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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