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연연하고 꼼꼼하고 섬세한 완벽주의자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뜻밖이었다. 심지어 비비씨 방송에에서조차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몇번이나 물 먹은 하루키가 이번에는 기어코라는 염원이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우여곡절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디카프리오처럼. 물론 우리에게는 고은 선생에 대한 기대가 또 있었다. 그밖에도 쟁쟁한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즈오는 이변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그나마 알려진 <남아있는 날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흔히 문학은 주관적이라 상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단지 한 작가에 대한 공로상 성격이 크다고 주장한다. 수학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듯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소설만큼 실력차가 큰 분야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소설을 보며 감탄하지만 반대로 우리 작가가 쓴 글은 감동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곧 문장의 차이가 아니라 창작력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창의력이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깊고 넓은 지식의 샘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최근 읽고 있는 기타무라의 <하늘을 나는 말>이 대표적이다. 살인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라는 소재부터 신선할 뿐 아니라 주인공이 여대생과 만단꾼이라니. 게다가 만담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저리가라다. 우리나라에서 판소리꾼과 국악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짝을 이루어 동네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이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김영하의 주장처럼 단지 영미 중심의 문학상이기에 비중을 크게 들 필요 없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아무레도 서양은 갈등구조와 해결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동양은 좋게 말하면 원만하게 나쁘게 말하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게 마련이다. 비가 많이 왔다, 라는 표현도 구미 작가들은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는게 기본이다. 빗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울리는 걸 보니 폭풍을 동반한 것인가 보라, 라는 식이다. 물론 단순미도 필요하다.
그러나 치밀하게 쓸 줄 알면서도 적절하게 담백하게 풀어쓰는 것과 구체적으로 묘사할 줄 몰라 그냥 떠오르는대로 단어를 골라쓰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분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로 일관되게 자기 작품세계를 펼쳐가는 작가는 지금끼지 없었고 현재도 부재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꼼꼼하고 섬세한 완벽주의자 기질이 부족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