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새삼 그리워지는 밤
처음엔 하루키를 섹스묘사를 적절히 섞어쓰는 대중작가로만 알았다. 방황하는 청춘의 무기력한 일상을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한 <노르웨이의 숲>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두개의 달이 어쩌고, 양을 쫓는 모험 이야기에, 난해한 주인공들이 무더기로 등증하는 댄스댄스댄스. 대체 이건 뭐지? 담다디로 빵 뜬다음 신비주의로 무장한 채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으면서 예술가인척 하는 이상은의 소설가 버전인가?
그럼에도 그의 글은 계속 읽었다. 수필이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깨에서 힘을 쫙 빼고 싱글거리며 써나가는 듯한 문체에 홀딱 반했다. 그래, 소설을 못 쓰면 어때? 이렇게 에세이가 훌륭한데. 그 즈음 서너번 반복해서 읽은 수필집 제목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아, 이 얼마나 하루키스러운가? 작가로서 성공하기 직전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자신만의 소소한 기쁨을 가볍게 토로하던 그가 새삼 그립다. 지금은 워낙 유명한 인물이 된터라.
하루키를 본 딴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겠다. 사람은 불행에 쉽게 매몰되기 때문에 이렇게하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세 허우적거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글쓰는 행복은 미리 제외하겠다. 그건 본업이니까.
하나, 월요 산행
매주 한차례 산에 오른 지 20년이 넘었다. 산은 딱 한 군데만 간다. 관악산. 요일은 들쭉날쭉했는데 시간이 자유로울 때는 무조건 월요일에 간다. 직장이 있건 없건 월요일은 누구나에게 두려운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요일 저녁부터 우울감이 벅차오른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데 최고다. 오전 11시쯤 출발해 12시 30분쯤 연주암에 도착해 절에서 주는 점심공양을 하고 자판기 커피 한잔 하면서 암자에 앉아 풍경을 산십분쯤 바라보다 컬튜쇼를 들으면 내려오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오늘도 다녀왔다.
둘, 도서관 순례
우리 동네에는 세 개의 도서관이 있다. 걸어서 이십분 이내에 있어서 짬날때마다 자주 들른다. 초기에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주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기 위해 간다. 오래 죽치고 있어봐야 머리만 아프기 때문이다. 차라리 근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게 머리고 맑아지고 좋다. 참고로 세곳에서 한도를 꽉 채우면 20권까지 빌릴 수 있다. 여기에 디브이도 대출도 한주에 2개씩 두군데의 도서관에서 가능하다. 아주 가끔 더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는 아내의 도서대출증까지 이용하니 책부자가 따로 없다. 토요일 오후 운동을 마치고 도서관 순례를 하는 것이 어느덧 주말의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