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웨딩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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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혹은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의심해야 한다. 선한 의도는 핑계이고 사회부적응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곧 자신의 일이 플리지 않는 이유를 거대한 사회구조적 악을 원인으로 돌리고 자신은 선하게 살 사람이라고 위안을 삼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부랑아동들을 돌보는 야콥. 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사발팔방으로 돈을 구하려 다니는데 다행히 덴마크의 한 사업가가 400만불을 기부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조건은 자신을 보러 와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 일말의 의심도 없이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데.

 

여기까지 줄거리를 읽은 분들중 눈치 빠른 이들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혹시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이라면 우리나라의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를 떠올리면 된다. 그건 바로 친자를 둘러싼 소동이다.

 

정치인들의 자제분들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다. 마약을 하고,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극히 일부의 예일수도 있겠으나 뭔가 정의로운 일을 혹은 국민을 대변해 바른 일을 하겠다는 사실과 아이들의 비행은 과연 아무 상관이 없을까? 영화 <애프터 웨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다행히(?) 야콥은 거대한 선한 일 대신 자신이 저지를 악행을 되갚는데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한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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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 [할인행사]
장윤현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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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를 쫓아가는 영화는 1년만 지나도 촌스럽게 여겨진다. 작년에 찍은 자기 사진을 보고도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와 같다.

 

영화 <접속>은 개봉된 지 20년이 지났다. 추억의 명화에서나 볼법한 올드 무비가 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여전히 접속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씨통신이라는 도구가 에스엔에스로 바뀌었지만 말 대신 문자로 대화하는 것이 익숙한 것은 여전하다. 여기에 편의점, 혼밥족 등 지금도 대세인 풍경에는 변함이 없다. 일종의 선견지명인 셈이다.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질투하고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이 모든게 단지 기술의 발달때문이 아니라 숨겨진 인간의 본성이었다면 더욱더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르는 글을 쓴다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파를 거쳐 실어보낸다는 것, 자체도 신기한 일이다. <접속>는 이 모든 현상을 담아낸 전환기적 기념작이다.

 

한가지 씁쓸한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일이든 애정이든 풀리지 않을 때 하는 선택은 같다는 점이다. 에라, 이민이나 가자.  

 

덧붙이는 말

 

이 영화는 내용도 참신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좋다. 이른바 90년대 정서를 담고 있다. 재즈를 포함한 새로운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이 멋으로 여겨지던 시절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오에스티 음반까지 산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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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생각법 - 과학자는 생각의 벽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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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났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감히 꿈도 못 꿀 업적을 그것도 어린나이에 이룬 경우에는 더욱 더. 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리다. 곧 유전적 요인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자라면서 익히게 되는 후천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면서부터 천재가 된다는 건 은유에 불과하다.

 

우리는 과학자를 별종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만이 쓰는 특수 언어, 곧 수학이 한 원인이다. 사실 숫자와 기호란 언어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수단에 불과한데도 보통 사람들은 손사레를 치며 거부한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마치 자신들만의 성역을 쌓아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과학자의 생각법>은 이런 편견을 깨는 책이다. 중요한 것은 사고지 기법이 아님을 역설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대화야말로 과학적 발견을 이끄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든 다른 사람과든은 상관이 없다. 핵심은 정해진 답을 수학적으로 푸는 게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게 만든다는 데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과학자의 가장 큰 자질은 호기심이다. 이런 저런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거드림을 피우는 짓거리야말로 순수한 발견의 기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이 책은 내 생각을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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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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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속은 천갈레 만갈레라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숙명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여 행복이 증진된다고 해도 사람은 이 수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마치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플어가듯이.

 

나이가 들면, 구체적으로 살아온 날들이 앞으로 남은 날짜보다 훨씬 많아지면 현실보다는 과거에 묻혀  살아가게 마련이다. 아,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만약 그 상황에서 다른 판단을 했다면? 만약 몸 어딘간에 흠이 남아 있다면 이런 후회는 더욱 강하게 휘몰아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속 상처라고 해서 아픔이 덜한게 아니다. 자신이 겪은 일들중 인상적인 장면이 무한반복되어 재생되기 때문이다. 이는 뇌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억은 전체 이야기가 남는게 아니라 스냅사진처럼 인상적인 상황만 각인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파편이 한데 뭉쳐져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하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놀라운 기적이 벌어진다. 그것은 공감이다. 사람에게 빼어난 기능이 하나 있다면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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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오로라 레베카 시리즈
오사 라르손 지음, 신견식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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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로 기억되는 나라가 있다. 이를 테면 케냐는 누가 봐도 여름이고 노르웨이는 역시 겨울이다. 물론 이들 나라들도 봄이나 가을이 있겠지만 .

 

<블랙 오로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북유럽 소설이다. 최근 들어 스칸디아비아 국가들의 스릴러 소설이 인기인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저자는 오사 라르손.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찬바람이 훅 불어와 겨울한복판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추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내용은 신앙과 욕망이 한데 엉켜있다. 고립된 마을에서는 이 두가지가 곧 삶을 지탱하는 굳건한 두 기둥이리라.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세속에 빠져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는 것과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청빈한 생이 어떻게 비슷할 수 있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세상의 이치를 아직 다 깨닫지 못한 탓이라고 반문하고 싶다.

 

그러니 함부로 정의를 내세워서는 안된다. 인간은 나약하며 언제나 어리석다. 본성이 이끄는 길을 종교는 잘 알고 있기에 더욱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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