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When Marnie Was There (추억의 마니)(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Universal Studios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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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줄 알았던 스튜디오 지브라의 위세도 결국 끝이 났다. 마지막 작품은 <추억의 마니>. 여전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체가 넘실대지만 이제 그만이라는 지겨움도 동시에 나온다. 원작을 일본식으로 각색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쳐도 뿌리깊은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이 주된 정서라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요양차 내려간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자 아이가 사실은 몇십년전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 설정 또한 더이상 새롭지 않다. 장엄한 마무리를 기대한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대실망이었다. 물론 뭐든지 예쁘게 포장하길 좋아하는 일본 국민들은 매우 열광했다고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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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500자 원칙

 

헤밍웨이는 작가중의 작가다. 단지 내용이 빼어나서만은 아니다. 글쓰기와 관련한 온갖 기법을 마스터한 장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말년에 쓴 <노인과 바다>는 단 500단어만 활용하여 쓴 소설로 유명하다. 얼핏 보면 바다에서 한평생을 보낸 어부의 넋두리쯤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갈고 닦은 하드 보일드 문체의 결정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사와 형용사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신문사 특파원을 하며 하드 보일드 문체를 다듬었다. 장황한 수사와 구질구질한 문장에서 탄출하여 사실적이며 적확한 묘사로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 또한 유행을 타는 법. 더이상 특유의 문장이 먹히지 않자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노인과 바다>는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헤밍웨이를 구한 구원자였다.

 

그렇다면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어떤 원칙을 갖고 글을 썼는가? 얼핏 방탕한 자각의 대명사처럼보이지만 그처럼 규칙적으로 집필을 한 사람도 드물다. 무조건 아침에 썼다. 단어수를 세어가면. 다시 말해 오늘 200자를 쓰겠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도 분량을 채웠다. 내용이 마음에 들고 안 안들고는 다음 문제였다. 일단 양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바깥으로 나갔다. 술을 마시고 바닷가에 뛰어들고 또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었다. 오전에 쓴 글은 단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을 이어갔다. 이른바 자기만의 루틴(좋은 습관>을 이어간 것이다.

 

나도 이 방법을 본 따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 출근 전까지 쓸 단어수를 정해놓고 글을 썼다. 참고로 한글 워드프로그램에서는 원고지 매수와 글자수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날은 더 쓰고 싶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단 한 글자도 쓰기 싫을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30분 내내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커서가 깜박거리는 것만 쳐다보기도 했다. 그 때 깨달았다. 헤밍웨이의 위대함을. 하루에 새로운 이야기로 정한 글자를 채워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완전히 탈진한 그가 제정신으로 어떻게 남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

 

작가는 창조자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을 열어젖히는 신이다. 동시에 성실한 일꾼이다. 단 한순간도 놓치면 조화는 어그러지고 등장인물들은 미친듯이 날뛴다. 창조주가 아니고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다행히 세상은 그런 인간을 자주 지구에 내려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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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 미로 찾기 접지 속지
론 클레멘츠 외 감독, 드웨인 존슨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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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는 한 번 탄력을 받으면 도무지 내려올 줄 모르는 디즈니의 또 다른 히트작이다. 어떻게 이처럼 상연하는 족족 홈런을 날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공뒤에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으니.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찬스로 써먹자면, 디즈니는 현지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미국 백인 중심의 스토리가 아니라 각 나라 특정 지역의 사연을 토대로 짤막한 단편을 만든다. 그 다음은 서포터들에게 평을 모집한다. 이들은 디즈니 마니아들로 매우 까다로운 시선으로 잘잘못을 끄집에 낸다. 이런 불만을 모두 반영하여 계속 덧붙이는 식으로 만화를 완성해간다. <모아나>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태평양에 있는 섬. 그것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종족. 그러나 왕위를 물려받을 어린 딸을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욕망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는데. 알고보니 자신들은 정착민이 아니라 바다 유목민의 후예라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또 하나의 놀라움은 실사에 가까운 배경이다. 바닷물이나 하늘 색이 마치 영화로 찍은 듯 선명하다. 만화 주인공들과 이질감없이 어우러지는 자연은 보는 내내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역시 디즈니 표 훈훈한 가족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세대가 공감할 키워드인 가족의 행복은 디즈니의 핵심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단편으로 선보인 <내 몸 속 이야기>도 흥미롭다. 몸안의 기관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장편으로 만들어진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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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피아노 블루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레이 찰스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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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상의 영화 애호가들에게 클린트 이스투우드는 터프 가이다. 서부 영화에 출연할 때면 줄곧 눈살을 찌푸리며 담배를 피워 물곤 했던 장면이 강력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배우와 감독이라는 두 직업을 잘 해내는 그가 부럽다. 그러나 진짜가 하나 더 남아 있었으니 어마어마한 재즈 애호가라는 사실이다. 실제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론적으로도 해박하다. 특히 흑인 블루스 연주자들에게는 맹목적일 정도의 존경심을 표하곤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피아노 블루스>는 그 결과물이다. 이스트우드는 미국 대중문화의 자양분은 바로 블루스 음악이며 그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대로 연주를 한 연주자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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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에단 호크 감독, 시모어 번스타인 출연 / 비디오가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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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작은 오케스트라로 불린다. 다른 악기와 달리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라는 농담조의 말들도 돈다. 여하튼 누군든 쉽게 접할 수 있는 피아노지만, 적어도 지금은, 프로 연주자가 되기는 매우 매우 힘들다. 악보대로 치기만 해서 되는게 아니다. 자신만의 감성과 작곡가의 의도가 정확히 일치할 때 피아노는 비로서 빛을 발한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한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여정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세이모어는 지금은 반은퇴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짬짬이 연주도 한다. 그는 과연 행복한 일생을 보냈을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한국전쟁 참전기였다. 클래시컬 연주자 몇 명을 모아 콘서트를 기획했을 때 처음에는 다들 반대였다고 한다. 대체 누가 고전 음악을 전장에서 듣겠는가? 그러나 막상 시작되자 이곳저곳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전투중에 듣는 바이올린 선율과 피아노 음색은 정말 색달랐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나에게 있다. 군대시절 가장 아쉬운 건 클래시컬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신병 때는 클래식은 고사하고 라디오도 듣지 못했다. 어느 정도 짬밥을 먹어도 별 차이가 없었다. 다들 아이돌에 빠져, 구체적으로 여자 그룹, 휴일이면 하루 왼종일 내무반을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히 자, 이제 베토벤 듣자, 라고 말이라도 꺼낼 수 있겠는가? 유일한 탈출구는 휴가 때 집에서 하루종일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는 주류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찾아 듣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소네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참고로 감독은 에단 호크다. 배우로서도 빼어난 그이지만 연출도 꽤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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