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레이
게비델랄 감독, 나오미 와츠 외 출연 / 오퍼스픽쳐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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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꾼다고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노인을 어르신이라고 달리 부른들 늙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성소수자란 말도 마찬가지다. 래즈비언이나 호모 혹은 동성애자라는 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문제는 시선이다.

 

<어바웃 레이>는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가족 관계가 복잡하다. 레이는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어떤 일인지 한 집에서 산다. 어렸을 때부터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온 레이는 고등학교 입학전에 성전환수술을 받고 싶어한다. 문제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 엄마는 집 떠난 남편을 핑계대며 차일파일 사인을 미루는데 알고 보니.

 

본인이 겪지 못한 일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동성애자도 그렇다. 대체 어떤 심정으로 다른 성으로 스스로를 전환시키고 싶어하는지 알 재간이 없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해서 쌍심지를 키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우리 또한 언제나 사회적 약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곧 내 문제가 아니라고해서 동성애자를 멀리하거나 심지어 핍박하는 사회에서는 강자들만이 살아남는다.

 

 

패닝은 레이 역을 멋지게 해냈다. 평소 여성스러움의 대명사였던 그가 정말 논라운 변신을 감행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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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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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의 특징중 하나는 구체성의 결여다.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 문체가 두리뭉실하다. 스스로는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독자는 글쓴이의 마음 속까지 들여다 볼 재간이 없다. 모든 감정은 글로 표현되어야 한다. 최은영도 마찬가지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중에서

 

이 글은 자기 독백이다. 글에 움직임이나 감정이 없다. 아주 단순하게 한 문장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소설의 문장이 아니다. 기사문체와 다를 바 없다. 혹은 일기장이나 개인 블러그에 남긴 글이거나. 한마디로 돈을 받고 팔만한 글은 아니다. 만약 스티븐 킹이라면 빨간 펜으로 죽죽 그었을 것이다. 당황해서 흘리는 것인지 놀라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슬퍼서인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 문장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앞 뒤 문맥으로 살펴보면 자기 패배를 인정하는 회환의 눈물 정도인 듯 싶다. 그렇다면 이 글은 다음처럼 바꾸어야 적절하다.

 

 

--> 나는 몰랐다. 양퍄를 까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저절로 양쪽 눈에서 떨어져 뺨을 타고 흘러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두 손은 이미 본능에 따라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는데도.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몰려왔다. 입가는 이미 찝질함으로 도배가 되어 버렸다. 쪽팔렸다.

 

물론 어떤 문장이 더 좋은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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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아웃케이스 없음
루버트 와이어트 감독, 앤디 서키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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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브이디로 영화를 보면 얻는 혜택은 다양한 부가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쓸데없는 화면들을 덧붙인 장사속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특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1968년 원작을 토대로 어떤 점이 달라졌고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루고 있어 보는 내내 즐거웠다. 감독을 포함하여 작가나 스탭 모두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오리지널의 전사에 해당한다. 곧 시저라는 이름을 가진 유인원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박사의 애완동물로 길들여지던 시저가 난동으로 갇히고 난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시저는 집에 데려다 달라고 울부짖던 모습에서 벗어나 의연하게 문을 닫고 등을 돌린다. 더이상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선언같은 순간이다. 둘째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흡인한 후 인간의 말을 하게 된후 처음 내뱉은 말이다. 시저는 자신을 괴롭히는 적에게 "안돼"라고 소리친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에 대한 최후통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후 혹성탈출은 <반격의 시작>에 이어 <종의 전쟁>으로 막을 내린다. 나는 1편인 <진화의 시작>이 가장 좋았다. 사실 영화에서 담고 싶은 내용은 이미 다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시저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는 정말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대표역은 더이상 골룸이 아니다. 시저가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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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1 얼음과 불의 노래 1
조지 R. R. 마틴 지음, 이수현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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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여전히 소설읽기가 흥미롭다는 사실. 물론 모든 책들이 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없다 혹은 소설은 종말을 고했다고 하는 말들에 귀가 살짝 열릴 무렵이면 어김없이 무슨 소리 이거 봐라,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길골하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소설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사실 <왕좌의 게임>은 1990년대 출간된 시리즈 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얼음과 별의 노래>의 1부에 해당한다. 에이치비오 채널에서 드라마로 만들면서 <왕좌의 게임>이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그 유명도가 티브이쩍이 훨씬 강하지만 원작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팬텀을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끝이 나지 않고 진행중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제발 마틴 선생님 건강 유의하시면서 마무리 지어주시길 비나이다.

 

판타지는 읽기는 쉽지만 쓰기는 정말 어렵다. 글에서 연상되는 시기나 장소, 등장인물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가는 허구의 세계를 완벽하게 지배해야 한다. 어설프게 스토리를 진행하다간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지 마틴은 영리하게도 이야기를 쪼개 샛물이 강물을 이루어 바다로 나아가듯 인물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것 같다가도 한번 대접전을 벌이고 다시 흩어졌다 또다시 뭉치는 식으로 끌고 간다. 그 시작은 <왕좌의 게임 1>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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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
데이빗 맥킨지 감독, 제프 브리지스 외 출연 / 콘텐츠게이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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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영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백인 저소득층을 소재로 한 작품이 빈번히 나오고 있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대를 이어이 가난을 물려 받은 주인공은 감옥에서 나온 형과 함께 은행을 턴다. 계획은 빚을 갚고 목표금액을 모아 아들에게 신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자기 대까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찢어지게 못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주로 소액위주로 그리고 강도에 사용한 자동차는 철저히 폐기처분하고 훔친 돈은 도박장에서 돈세탁을 하여 출처를 숨기는 방법으로 영리하게 돈을 모아나간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퇴직을 앞둔 늙은 경찰에게 딱 잡혀 죽음의 위기로 몰리게 되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는 단지 저소득층의 좌절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미국 대중문화의 뿌리 중 하나인 백인 노동자층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그들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니고 인종차별적인 농담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늘 정의에 사로잡혀 걸핏하면 총을 휘두른다. 트럼프는 이들의 특성을 잘 할용하여 거침없이 대선에 도전할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엄연히 자리잡고 있는 미국 문화, 구체적으로 총기 사용 허용, 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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