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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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익숙해져서 새로운 발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히기시노 게이고의 글이 맥이 빠진다는 지적이 많다. 구체적으로 특유의 날카로움과 극적인 반전이 줄어들었다. 전개는 평이하고 내용은 소소하다고 할 정도로 잔잔하다. <위험한 비너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소설가는 일정 수준은 늘 유지하기에 실패가 없다. 게이고처럼 다작인 작가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까? 단숨에 읽고나서 아 재미있다하고는 버려도 상관없으면 그만 아닌가? <위험한 비너스>를 읽으며 그가 소설가 장인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공간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 이미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에서 정점을 찍은 기술인데 이번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자유자재로 옮겨다닌다. 마치 독자들 뇌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조금이라도 지루한 구석이 보일 듯 싶으면 얼른 다른 장면으로 옮겨간다. 흥미로운 건 그 이동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통 전문가가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스킬이다. 전혀 다른 컷을 이어붙인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체 얼개와 딱 들어맞는 흉륭한 영화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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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1disc)
김현석 감독, 박신혜 외 출연 / 프리지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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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애결혼을 했다. 중매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억지로 짝을 지워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나와 비슷하게 여길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도리어 중매가 연애보다 훨씬 대세인 분위기다. 물론 과거처럼 결혼을 전제로 정식으로 만남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미팅을 하는 일은 흔하다. 그마저도 드물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찌보면 서글픈 현실이다. 이른바 삼포세대의 비애다. 변변한 직장 잡기가 힘들기에 연애애 몰두할 여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르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피곤함도 한몫한다. 연애처럼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시라노 연재조작단>은 연애가 힘든 사람을 대신하여 추진하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황당한 것 같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공감가는 대목도 크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더 고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면 좋을텐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거절에 대한 절망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차이느니 차라리 가만있자, 그런데 그러자니 내 속의 무언가가 들끓는다, 누가 대신 내 심정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건 고백을 대신해주는 사람 또한 감정이 전이되어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대필로 연애편지를 쓰다가 직접 사랑을 하게 되는 식이랄까? 게다가 의뢰를 받는 상대가 과거의 애인이었다면? 본인은 괴롭겠지만 보는 사람은 이보다 더한 깨소금이 없다.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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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데미안 차젤레 감독, J.K. 시몬스 외 출연 / 콘텐츠게이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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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스캔들로 시끄럽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화에도 없던 내용을 현장에서 갑작스레 요구하거나 배우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해 감정을 끌어올리려고 했다고 한다. 직접 관련된 사람이 아니기에 판단을 쉽게 내릴 수는 없지만 단순히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문제는 효과가 있다는 데 있다. 곧 관객들은 실제 상황처럼 전개되는 이야기에 쉽게 공감한다. 디렉터는 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위플리쉬>는 사람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지 드러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을에 해당되는 사람은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 언젠가 치받게 마련이다. 온갖 억울함과 설움이 폭발하면서 판은 뒤짚어진다. 예술은 창조성의 세계라는 허구는 무너지고 만다.

 

영화도 영화지만 음악이 진짜 죽여준다. 즉흥성이라는 재즈의 마법을 공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라라랜드>라는 감미로운 영화의 폭풍의 전야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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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
로브 라이너 감독, 레베카 드 모네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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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쭉 남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때문인지 여자친구가 없었다. 물론 어이없는 핑계다. 돌이키보면 아쉽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을 버티게 하는 건 좋은 추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억지로라도 즐거운 기억을 만들려고 기를 쓰고 노력한다.

 

<플립>은 네티즌들의 성화로 재개봉이 결정된 영화로 유명하다. 행복한 스토리를 큰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디브이디로 감상해도 감동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바로 옆 집에 사는 여자애가 마음을 뺏기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다. 아 그러고보니 떠오른다. 바로 옆은 아니지만 그 다음 집에 나보다 몇 살 어린 여자애들이 살았다. 어머니와도 친분이 있어 가끔 오고 갔는데 어린 내게는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둘째 여동생은 늘씬한 키에 중성적인 매력이 듬뿍 담긴, 지금으로 치면 트와이스이 정연같은 이미지라 속으로 좋아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불행하게도(?) 그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내 풋사랑은 깨지고 말았다. 이후 어머님끼리는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따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줄리와 브라이스도 우여곡절끝에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마지막 장면은 줄리의 집앞 뜰에 나무를 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꽤 의미심장하다. 두 사람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해서다. 그러나 둘이 결혼을 했건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건 혹은 사귀다 헤어졌다해도 상관없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영원히 영화로 남아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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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여신 (2disc)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 아오이 유우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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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알고 보는 혹은 범인이 누군지 확인하고 보는 소설은 재미가 없다. 아무리 향신료를 듬뿍 뿌려도 맥이 빠진다. 영화 <무지개 여신>은 처음부터 여주인공을 죽임으로써 신파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보여준다. 과거 회상씬을 보여주며 감상에 젖겠지?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내내 밀당하는 청춘을 담아내기 바쁘다. 굳이 죽는 씬을 초반에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우에노 주리는 눈부시지만. 그런데 아오이는 왜 장님이지? 알다가도 모를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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