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달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 미야자와 리에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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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수동사회다. 직설적인 표현은 금기다. 매우 무례하게 여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돌려 돌려 말하기 선수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겨지는 바입니다.

 

문화는 사회의 거울이다. 상대의 돌려까끼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종이 달>도 예외가 아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리에. 가정파탄으로 경제난에 취하자 고객을 속여 야금야금 예금을 갈취하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다 팡.

 

흥미로운 점은 파국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든지 뻔한 결말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그래 훔쳤다 뭐가 잘못이냐?

 

폐쇄적인 일본사회에 대한 저항인가? 아니면 소극적인 반항인가? 한가지 분명한 점은 리에를 죄인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데 예술은 창작의 산물이나 받아들리는 것은 고객의 마음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미야아와 리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인줄 몰랐다. 산타페라는 누드 화보집으로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고 우리나라에서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리에가 이렇게 핏기없고 메마른 아줌마로 변했을 줄이야? 아무리 영화 분장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의 그 청초하고 아련한 눈빛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매력적이었던 애교점도 징그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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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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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읽었다.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영화는 미묘한 충격이었다. 마치 지진의 여진처럼 한동안 마음을 후벼팠다. 대체 키리시마는 왜 사라진거지?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다소 명랑하다. 친구의 상실에 대해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투덜거림이 주를 이룬다. 퀸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애는 마음을 주지 않아 애를 태우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농구를 억지로 하거나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선수급이지만 왠지 심드렁하고 냉소적이거나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 뒷담화에 필사적이거나 무대를 우리의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실로 옮겨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심각하다. 영화는 키리스마의 행방불명을 중심으로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몰고가지만 소설은 단지 그 상황을 맥커핀으로 활용할 뿐이다. 뭔가 중요한 일인 듯 싶지만 사실은 별 것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만약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소설을 읽는다면 다소 맥이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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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 하시모토 아이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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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 둔대>를 시사회에서 보았다. 사회자가 상영에 앞서 이 영화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던 순간 내 뒷좌석에 자리잡고 있던 누군가가 손을 들고 설명은 나중에 듣고 영화부터 봅시다라고 말을 했다. 둘다 대단하다 싶었다. 긴장한 채 영화를 봐야 하다니.

 

이 영화는 미스테리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키리시마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가 사라졌다는 것, 또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카리시마가 왜 그랬는지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마치 라쇼몽의 범인을 찾듯이 추축은 제각각이다.

 

결론은 없다. 자살을 한 것도 아니고 왕따로 경찰에 피해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동아리활동을 그만둔 것일 뿐인데,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학생일 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이며 친구와의 우정이 절대적임을 상기한다면 심각한 일임에 틀림없다.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끔찍하도록 싫어하는 일본의 강박은 이처럼 사소한(?) 일도 우주적 관심사로 끌어올린다. 그렇기에 더욱 더 왕따가 힝횡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곧 서로 만나 주먹다짐을 하든지 함께 밥이라도 먹으며 훌훌 터는게 아니라 상처를 꼬옥 감싸안은체 무리의 곁을 떠나 집단에 항거한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일본사회를 세심한 칼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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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바벨의 도서관 27
허먼 멜빌 지음, 김세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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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은 노력하는 소설가였다. 타고난 작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호손이 <주홍글씨>로 이미 당대에도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그는 음지의 글쟁이였다. 죽고 나서 빛을 본 경우다. <모비 딕>이 대표적인 예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단편이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타자기도 없고 인쇄시설도 미비하던 시절 필경사는 꼭 필요한 직업이었다. 주로 공문서를 베껴쓰는 일이었다. 바틀비는 어떤 이유인지 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펜에 손을 대지 않고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보다못한 사장은 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필경할 것을 종용하지만 바틀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듯 싶은데요"라는 말만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우리같으면 당장 패버리고 쫓아낼텐데 서양인의 양심은 그런 야만을 허락하지 않는가보다. 이래도 저래도 소용없다고 느끼고 도리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그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여겨질 무렵 필경사는 홀연히 사라진다. 대체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멜빌은 말년에 엄청난 고생을 했다. 소설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자 부둣가에서 잡일이나 필경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필경사 바틀비>는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된 듯 싶다. 곧 머리속은 소설의 구상이나 집필로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몸은 공문서를 배께쓰는 일따위를 해야하는 모순이 소설의 발단이 된 것이다, 라고 나는 추측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의 대부분은 하찮다. 아무리 중요하고 고귀하다고 떠들어봤자 헛소리다. 결국 가진 놈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렇게 해야만 체제가 유지된다고 믿는 우두머리와 또 철썩같이 믿는 우매한 민중들이다. 바틀비는 조용히 반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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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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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은 흥행에 필수적이다. 와타야 리사가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을 발표하여 아쿠타가와 상을 받자마자 후폭풍이 연달아 터졌다. 과연 이런 낙서같은 글에 권위있는 문학상을 주는 것이 맞는지 여부였다. 한동안 시끄럽던 논쟁은 대필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곧 리사가 직접 쓴게 아니라 편집자들이 대폭 손을 보았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소재로까지 쓰였을까?

 

모든 혼란을 배제하고 책만 본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한 소설이다. 굳이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등장인물들간에 극적인 전환이 있어야만 훌륭한 소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4월 이야기>처럼 정작 스토리가 시작될 때쯤 끝나버린 새로운 장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와타야 리사가 과대평가받은 사실은 분명하다. 와세대 대학에 다니는 미모의 청춘소설가라는 닉네임이 소설의 형식이나 내용보다 훨씬 더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 리사는 후속작인 <불쌍하구나>를 내며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했지만 등짝의 후속편 정도의  취급밖에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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