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보정판 (2disc) - DTS-ES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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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일을 해서 처음 돈을 번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알바를 하며서부터다. 파출소 방범 보조였다. 아침조를 택한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한겨울이라 지독히 추었다. 하는 일은 의경을 따라 동네를 한바퀴 도는 거였다. 원래는 겨울방학중 한달만 하는 일이었는데 보름만에 그만두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내 손에 쥐어진 돈은 15만 원이었다.

 

철모르고 어리광이나 부리던 아이. 이사가는 날 차가 터널을 지나자마자 세상이 뒤집어진다. 엄마 아빠는 탐욕스런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온천장에 팔려가서(?) 종일 허드랫일에 시달린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벌어진 셈이다. 어린이를 상대로 혹은 주인공으로 한 만화영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위대함은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치히로는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서도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간에 유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비평가는 일본의 버블 시대를 풍자하면서 나약한 젊은 세대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라고 하는데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어떤 일이든 일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당연히 힘들수 밖에 없다. 그 힘든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같이 하는 이들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영화 속에 나타난 온천장은 착취가 아닌 공동체의 터전이었다.

 

만약 감독이 제목을 행방불명이 아닌 모험이라고 했다면 노동에 대한 헛된 로망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야오 스스로도 일이란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더라도 늘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을 것이다. 행방불명이란 일에 묶여 사는 현대인들의 탈출 욕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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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 지브리 아트북 시리즈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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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다. 만화영화가 개봉되면 관련 캐릭터 상품은 물론이고 영화에 사용된 스토리북이나 스케치도 따로 책을 내서 판매한다. 그만큼 팬층이 두텁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일본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다. 흥미로운건 어느새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기폭제는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가 아닐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를 정식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도 <이웃집 토토로>였다. 일본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적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자. 지금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아무튼.

 

<이웃집 토토로 아트북>은 영화의 감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분들께는 보물같은 책이다. 디지털 기술이 주류가 된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원화가 주는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해질녁 농촌 풍경이라든가 아침햇살이 비치는 목조가옥의 내부 등을 보노라면 새삼 뭉클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감동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다. 새벽 3시까지 설 연휴도 없이 강행군한 결과다. 말로는 예술혼 어쩌구 했겠지만 무한단순작업을 했을 애니메이터들은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월트 디즈니도 노동 착취로 유명했고, 아톰으로 명성을 날린 데츠가 오사무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은 사장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의 숙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깝다. 다음과 같은 공고를 보고 나면 그저 감동에 취해 있을 수 있겠는가?

 

연말연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연내에 힘껏 일을 해두고, 다음 일정대로 근무하고자 합니다.

종무일 12/30

시무일 1/4

이상 스튜지오 지브리

* 또한 미야자키 감독은 1월 1일만 쉬므로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같이 출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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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2disc) - 화보집(60p)+2단 디지팩+아웃케이스
이석훈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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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희랍의 장편 대서사시로 널리 알려진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일리아드가 전쟁에 출정하여 무공을 세우는 이야기라면 오딧세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겪는 고난을 그리고 있다. 어렸을 적 축약한 글을 읽으면서도 내내 의문에 시달렸다. 왜 전쟁이 끝난 이후의 일을 장황하게 따로 떼어 서술했을까? 나이가 들어 돌이켜 보니 서양문화의 정수는 바로 후일담에 있음을 알았다. 곧 싸워 이기는 이야기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그러고 나서 겪는 고난은 아무나 말할 수 없다.

 

<히말라야>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실제 등장인물들이 엄홍길 대장을 포함하여 실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세계 최초로 16좌를 등정한 엄홍길에 초점을 맞추어다면 그건 흔한 영웅담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물론 함께 등반한 이들의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산에서 죽은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원정등산에 나선 이야기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전개나 결말은 누구나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대원들간의 갈등도 해피엔딩을 포장하기 위한 조미료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석훈 감독의 전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관객들은 열린 결론이나 파격적인 전개에 목말라함을 모르는 걸까? 아무리 고생고생하며 찍은 티가 물씬 나지만 글쎄 보는 사람 처지에서는 섣불리 공감이 되지 않았다.

 

산을 소재로 한 <에베레스트>가 실제 사건에 근거하고 있으면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보다 극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물론 한국 관객에게는 신파가 더 편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8백만 가까운 사람들이 보았겠지. <국제시장>의 등산편이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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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이만희 감독, 김진규 외 출연 / 한국영상자료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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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서 <삼포 가는 길>을 상영한다길래 갈까 말까 고민했다. 본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없어 포기했다. 빌려서라도 볼까 했는데 대출불가다. 얻지 못한 물건에는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는 법. 볼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뒤져보니 유튜브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 그래, 바로 보자, 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다 아냐, 이건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지, 하고 또 찾아보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 예정. 오케이 바로 이거야.

 

<무녀도>를 먼저 보았다. 김동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무당과 그녀를 어머니로 둔 기독교 신자 아들, 그리고 신내림을 기다리는 처녀와의 갈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개봉 당시에는 윤정희가 무당 역을 맡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미스캐스팅. 늙은 어머니 같지 않아 보여서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평면적인 전개였다. 오죽 했으면 영화가 끝나자 옆에 계신 노인이 아, 지루해, 라고 했을까?

 

자, 이제부터 본격 게임 시작. <삼포 가는 길>의 첫 장면부터 압도된다. 눈보라가 마치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처럼 휘몰아친다. 백일섭과 김진규가 만나고 이 둘은 도망친 작부를 찾아달라는 술집 여주인의 부탁을 받고 헤매다 결국 문숙을 찾아낸다. 이후 이 세사람의 희한한 여행길이 펼쳐지는데.

 

프랑스 영화 <줄과 짐>이 떠올랐다. 남자 둘과 여자 한명의 조화가 비슷해서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다르다. 한쪽이 세련된 치정극이라면 반대쪽은 거친 인간애의 확인이다. 나는 물론 삼포 쪽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며 이만희 감독의 상상력과 황석영 작가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했다. 원작의 훌륭함을 영상의 치밀함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문숙이 두 남자에게 잡히고 나서 지갑을 눈바닥에 까뒤집는 씬이 대표적이다. 눈밭에 나뒹구는 빵구난 팬티, 낡은 만화, 잡다한 화장품 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문숙이 놓친 처지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

 

한가지 아쉽다면 영화 말미에 문숙을 놓아버리고 도망가는 백일섭의 장면에서 끝이 났다면 훨씬 더 긴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이탈리아 영화 <길>에 버금가는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이후 이야기는 모두 뒷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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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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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들끓게 하던 촛불 시위가 다소 잠잠해졌다. 반면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촛불 시위와 같은 거대한 파장은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세상은 큰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작 나는? 

 

나와 세계와의 거리는 쉽게 좁히지 못한다. 마치 먼 행성처럼. 이 두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은 현명해질 것이다. 이를 테면 지구온난화라는 지구적인 문제가 바로 내 옆에서 발생하는 재난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개발을 하는 행태는 바로 잡힐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야말로 학자와 정치가들이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의 원리를 사회에 적절하게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한국과 북한의 경제력 격차를 예로 들어 주된 원인은 자연이며 두번째가 제도라고 한다. 당연히 제도가 우선일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과 북의 지리적 위치를 바꾸고 남쪽을 둘로 나눠 한쪽은 공산주의, 다른 한쪽은 민주주의 제도를 실행해보아야 제도가 가장 큰 변수임을 증명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싶다가도 역시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다고 감탄했다.

 

고백하자면 나는사회과학에 회의가 강한 사람이다. 자연과학의 원리를 이리저리 적용하다 실패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인문학은 자연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인간의 여러 결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보완관계를 이룰 수 있다. <인간사회의 비교>라는 원제목은 바로 이런 생각을 실험해보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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