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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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는 대법관 출신 김영란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책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른바 선진국이 부러운 이유는 전문 분야가 골고루 인정받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권력이 최고 자리에 틀어잡고 모든 영역을 아래로 거느리는 시스템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감영란은 소설 읽기가 취미였다. 왠지 드러내기 부끄러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무슨 법관이 소설 나부랭이를. 그는 편견에 맞서기보다는 뭔가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시적 정의>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시나 소설은 그저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특정 제도의 지배 아래 있게 되면 이런 저런 영향을 받아 혜택이나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최순실같은 인간이 판을 치고 다녔겠는가? 대통령 혼자 독재를 휘두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견제와 균형을 하는 제도가 자리 잡았다면 그런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운영하는 사람들의 나약한 두려움 때문인가?

 

우리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수많은 스토리가 얽히고 설켜 있음을 본다. 욕망, 배신, 분노.  모두가 법적 처벌을 원하다. 박사모를 제외하고는.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과연 법적 처단만으로 그들의 죄는 면제받을 수 있는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벌어졌던 그들의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 필요한 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두고두고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한 시나 소설을 생산해내야 한다.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이 위대하고도 비참했던 대영제국 초기의 모습을 영원히 기록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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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퀸
이석훈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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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가 한참 현역으로 활동할 때도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실력에 비해 과대포장된 느낌이랄까? 가수의 영역을 넘어 배우로까지 활동하는 것을 보고는 내 편견을 확신으로 굳히게 되었다. 황정민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런 배우쯤으로 주연보다는 조연이 어울리는.

 

어느날부턴가 두 사람은 주연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특히 황정민은 이 정부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국제시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약간 어눌하면서도 선한 인상덕이라고 하는데 글쎄?

 

교육방송에서 틀어주는 <댄싱퀸>을 보다 하도 졸려 끝부분 약 15분 가량을 보지 못했다. 결말이야 뻔하겠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디브이드를 빌려 다시 보았다. 대학시절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는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 우여곡절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남편은 인권변호사로 아내는 에어로빅 강사로 일하다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시장과 걸그룹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설정이 너무 뻔해 어떻게 스토리를 이끌어갈지 지켜보았는데 결과는 꽝. 그저 그런 신파로 흐르다가 결국은 해피 엔딩. 정치든 가수세계든 피상적으로 접근할 뿐 실제 갈등 구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 보는 내내 우롱당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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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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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도시에서 일할 때 이야기다. 집이 과천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4호선 사당역에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고 홍대입구에 내려 파주 가는 직행버스로 직장에 가야 했다.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왕복 세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쏟아부은 셈이다. 당연히 일터에 도착하면 기진맥진하며 진이 빠졌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한 주를 맞이해야 한다는 공포에 떨었다. 아마 나와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지냈거나 버티고 있을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 인생에는 정성이 스며들 여유가 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뿐이다. 남에 대해 배려할만틈의 여유는 상상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급하지 않은 일에는 대충 넘어가는 여유가 생길 수도 없다. 단 5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사투를 벌여야 한다.

 

처음 안자이 미즈마루이 그림을 봤을 때 난 뭐야, 이 사람은 치열하게 살지 않는군. 일본인 답지 않은걸,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수필 속의 삽화라지만 너무 성의없는 것 아니야.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자신의 책 속에 들어간 그의 그림을 본 작가도 개탄했다. 쯧 쯧 이렇게 대강 그려서야.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곧 그의 그림체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끌리더니 급기야는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책에는 왜 안자이의 그림이 없는 거지? 대충 그리는 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을 다하고 있다는 진심이 독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하루키의 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게 실린 그의 그림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2014년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게 아닌가 싶어 놀랐는데 그건 아니었다. 젊은 감각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는 말이다. 제가 그린 그림은 별게 아니에요. 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게 쑥스러운 듯한 느낌을 지키려고만 했을 뿐이랍니다, 라는 기분을 지켜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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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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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들 가운데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읽는 이들이 둘 있다.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 다른 한 사람은 오쿠다 히데오다. 그만큼 일관되게 흥미롭다는 뜻이다. 물론 두 사람간에도 차이는 있다. 하루키가 미려한 문장에 감상적이라면 히데오는 거칠면서 직설적이다. 작가와 기자라는 출신 차이 탓도 있는 듯 싶다.

 

그래서인지 히데오의 장편 소설은 중반쯤 넘어가면 조금 지치는 경향이 있다. 초반부터 마구 달리다 보니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초기 작품인 <공중그네> 처럼 짧은 이야기의 연재물에서는 이런 단점이 보이지 않지만 <방해자>와 같은 초장편에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순간이 온다. 독자의 숨통을 트여주는 순간이 거의 없어서.  

 

짤막하게 이어지는 형용사와 부사를 극도로 배제한 하드 보일드 스타일 글은 논픽션에 걸맞다. 히데오의 <야구를 부탁해>도 그 중 하나다.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제목만 보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단숨에 읽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 30분. 마치 익사이팅한 야구경지를 관람한 느낌이 들 정도 즐거웠다.

 

특히 한국의 부산까지 찾아와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고 난 소감을 적은 글에서는 친근감이 더해져 더욱 흥미로웠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이천년대 초반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 불리는 사직 야구장의 분위기가 글에서 물씬 풍겼다. 올해 이대호 선수가 다시 돌아온다는 다시 한번 부산 야구열기의 부활도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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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일반판 (2disc)
이준익 감독, 박정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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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나이에 대한 느낌은 다르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을 보면 늙구스레한 아저씨들 같았다. 따지고 보면 서너살 차이밖에 안되는데. 또한 당시에는 서른만 되도 인생 다 산 것처럼 티를 냈다. 

 

그러나 지금 나이 서른이 어디 어른인가? 마흔은 또 어떤가? 쉰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한창 젊은 때이다. 예순 쯤은 되어야 나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러면 예순 넘는 분들은 역정을 낼지도 모른다. 아직 청춘이라구?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들은 대게 어렸다. 유관순 열사는 불과 십대에 윤동주는 스물 일곱에 생을 마쳤다. 엄청 나이가 많아 보였던 방정환도 불과 서른 둘에 인생을 마감했다. 과연 나는 그 나이 때 무얼했나?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 상황이 바뀌면 누구나 지사가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에서 갈라설 뿐이다. 그렇다 나도 20대 때에는 열심히 싸웠다. 단지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이다. 영화 <동주>가 돋보이는 건 독립투사의 거룩한 삶에 주목한 게 아니라 이십 대 청춘에 포커스를 두었기 때문이다. 독입운동에 뜻을 두면서도 현실적인 고민을 함께 해나가는 그들이 이 시대의 젊음과 무엇이 다른가?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는 내내 송명규 역을 맡은 박정민에 감탄했다. 마치 실제 인물이 영화속에 등장한 느낌이었다. 그 또한 고려대학에 입학하고도 연기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니 왠지 범상치 않은 결기가 느껴진다. 반면 강하늘을 아쉬웠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시인 김동주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서다. 강하늘의 얼굴이나 체격 자체가 굵은 느낌이 들어서다. 마치 젊은 시절의 이병헌을 보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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