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숏컷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한때 하루키에 빠진 적도 있었고, 스티븐 킹을 사부로 모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레이몬드 카버에게 완전히 포로가 되고 말았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하루키 덕분에(그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소개했다) 알려진 작가이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하루키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자기 세계를 확고하게 갖고 있다.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 세상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이다. 경제적 빈곤이나 병,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 길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갖 풍상을 겪고 얻은 것이라면 더 위대하다.
레이몬드 카버는 그런 작가다. 담담하고 빠른 필체는 독자들로 하여름 모두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장기는 바로 이야기같지 않은 이야기로 글을 풀어나가는 능력이다. 어찌보면 그의 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글이다.
최근 개인의 경험을 잡다하게 늘어놓는 것에 대한 새삼스런 거부반응이 일고 있다(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내뱉는 소리가 특히 그렇다. 일상사에 매몰해 서사가 없느니, 뚝심이 없느니 하는 말들) 그러나 모든 소설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위대한 작가의 탄생을 알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이 연예편지 형태를 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임을 그들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