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 KI 신서 418
데이비드 알렌 지음, 공병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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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경영서를 좀 무시하는 편이다. 도무지 책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어딘가에서 줏어들은 이야기를 짜집기한 것이 경영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변이 어수선해지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오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논조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늘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공병호 선생의 글에 이 책이 소개되어 있었다.

사실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어느 순간 일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그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오류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일에 닥쳤을 때 한꺼번에 그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사전단계를 제대로 밟지 않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큰 그림을 그리고 관련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를 일에 맞게 정리하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단계를 매뉴얼화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의 권유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제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헤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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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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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그것은 강명관 선생이 쓰신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다. 저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일상을 추적함으로써, 그 시대의 전통(혹은 폐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의술, 도박, 술, 과거와 같은 다양한 소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과거에 가장 관심이 끌렸다.

언젠가 조선시대의 과거를 재현하는 행사를 본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의복을 갖춰입고 실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엄숙한 자세를 보여주어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실제 과거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자격을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10만 명 이상의 양반이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 열기가 대단했음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열기만큼이나 갖은 부정과 편법이 판을 쳤다는 것이다. 시험장의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음은 물론(몸싸움을 전담으로 하는 선접군이라는 전문직업이 있을 정도였다), 심부름하는 노비들이 유생들의 붓과 책을 비롯한 각종 보따리를 갖고 들어갔음은 물론이고(시험장에 책을 갖고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었다), 심지어는 술을 파는 장사치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거기에 시험을 대신 보아주는 거벽(과거 담안지를 전문적으로 지어주는 사람)과 사수(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까지 총동원되었으니 시험장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던 셈이다. 채점 또한 그 많은 답안지를 제대로 볼 수 없어 빨리 제출한 사람들 것만 대충 보고 끝내는 바람에 한자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유생이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조선시대만의 폐습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대판 과거라고 할 수 있는 고시는 예전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고시뿐이겠는가? 대입시험을 보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입신양명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이를 위해 재수, 삼수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과 대리시험까지 치르는 일이 생겨난다. 직장은 또 어떤가? 이른바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가 조선시대의 판박이다. 오로지 출세해야만 이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 그러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신종 고시에 목을 매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자의반, 타의반 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강명관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실력은 있으나 아예 자격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술과 노름질, 혹은 기생질로 인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들은 재력이나마 있는 중인계급이었으니까 한량으로 지낼 수 있었다. 재력조차 없는 일반 서민들은 그저 평생을 농사나 짓다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농사라도 잘 되면 다행이지만, 흉년이라도 들라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굶어죽거나 도적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거대한 도적무리가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이라고 별 다를 것이 있겠는가? 다들 신분이 자유롭고 기회가 평등한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속된 말로 지방대학을 나온 사람은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도 힘들다. 어쩌다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부고위관리나 개각때마다 나오는 장관들의 출신학교를 보라. 그나마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오죽 하겠는가? 실력은 뛰어나나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나 상고를 나와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의 고통은 조선시대 중인과 다를 바 없다. 사정이 이러니 이 사회에 울분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개인의 무능력을 탓하며 술과 담배를 벗삼으며 스스로를 망치고, 일부는 조직을 만들어 대항하려 하지만 기득권의 벽은 높고도 높아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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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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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안은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내뿜는 후끈거리는 열기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책을 꺼내들었다. 제물포역까지 가는 1시간 반이 넘는 여정을 숨만 뻐끔거리며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꺼내든 책은 김훈 선생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이었다. 말을 멀리 돌려말히지 않고 직접 들이대는 김훈 선생의 책다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밥벌이가 지겹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그 지겨운 밥벌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반백수 상태다. 얼마전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재직증명서와 원천증명서를 뗄 수가 없어 포기한 일이 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하는 나같은 계약직에게는 재직증명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한다.

건성건성 책을 읽다가 어느 장면에서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2002년 있었던 공기업 노조의 파업을 다룬 글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민영화 반대'와 '24시간 맞교대 철폐'를 부르짖었다. 김훈 선생은 24시간 맞교대는 3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인간의 몸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노동제도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문제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러한 노동제도가 말도 안되는 이념공세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이기 때문에 24시간 맞교대가 부당하고, 보수이기 때문에 그것이 타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해 24시간 맞교대가 부당하다는 것에는 이념이나 노선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김훈 선생은 진보나 보수를 내세우며 말을 소비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노동제도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방식의 노동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더구나 국가가 그 방식을 제도화해서 시행할 수는 없을 것(김훈, 2003:126)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얼굴이 벌개지면서 눈이 충혈되는 것을 느꼈다. 단지 지하철안에 사람이 많아서, 이틀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 땅에 아직도 그런 노동제도가 버젓히 시행되고 있고, 그나마 그러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해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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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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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의 일부를 신문에서 먼저 읽었다.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무슨 문학상을 탄 소설이라 그 내용이 일부가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가난한 사람이 호텔식당에 찾아가 남은 음식을 당당하게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의 권리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소설에서나마 통쾌한 장면이 나와서 이내 그녀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빛나는 일부의 내용에 비해 책은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의 남발과 경직된 문체를 독자를 힘들게 만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소설을 그저 내키는대로 쓰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 글 공부를 조금 더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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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월간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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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유행에 민감하다.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환경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문제는 환경문제가 단순한 관심으로 치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서구에서 시작한 생태마을은 그 해결책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잘사는 나라들의 배부른 시각이라는 비아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환경오염의 주범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또다시 환경을 팔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테러와 경제위기로 조용할 날이 없는 남미 가난한 동네에서 시작된 가비오따스는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것을 복원시키는 것도 사람의 몫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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