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신문에 실린 라디오 체조 광고  


새해가 밝았다. 살아오면서 가장 신년 기분이 나지 않기는 하지만. 그중에는 기를 쓰고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해돋이 행사가 대표적이다. 절대 오지 말라고 거듭 강조를 하고 아예 폐쇄까지 했지만 끝끝내 가는 이들이 있다. 그 마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해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이니까. 


처음에는 희망찬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구체적으로 영미권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표현인 Rise and Shine과 흡사한 우리 동요를 즐겁게 비교하면서. 바로 둥근 해가 떴습니다. 그러나 왜 굳이 둥근 해를 가사에 넣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때부터 혼란에 빠졌다. 해는 당연히 동그란데 굳이. 지동설을 주장하기 위해서. 아니면? 혹시 일본을 상징하기 위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노래는 일본의 라디오 체조에서 나왔다. 군국주의 시절 전 국민을, 물론 우리나라도 포함하여, 언제든 전시체제에 동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원래 제목은 '朝日を浴びて'(아침 햇살을 맞으며)이며 다케우치 요시코(武内俊子) 작사, 후쿠이 나오아키(福井直秋) 작곡이다. 가사만 살짝 바꿨을 뿐 엄연히 일본 노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력을 차리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라’ 그러나 어쩐 일인지 작사, 작곡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왠지 창피해서였을까? 국적이 일본이라서가 아니다. 문제는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점이다. 이 노래는 당장 폐기시켜야 한다.


사진 출처 : http://syowakara.com/06syowaD/06history/historyS14.htm


노래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4LpcqaLw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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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왈, 재즈가 초심을 잃어 탄생한 것이 리듬앤블루스다?


엔터테인먼트야말로 21세기를 넘어 다음 시대까지 이어질 기둥 산업이다. 곧 예능인 기질이 있어야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 왜 사람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이모티콘을 돈 주고 사서 낄낄 대며 주고받겠는가? 듣고 보도 못한 케이팝이 어떻게 세상에 퍼져나갔겠는가? 


설민석은 이 틈새시장을 아주 잘 파고들었다. 처음엔 인강으로 유명세를 타다 급기야 공중파에까지 진출했다. 개인적인 소감은 어떤 방송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다른 프로그램은 수준 이하였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는 장점만은 숨길 수 없었다. 설민석이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문제가 된 논문은 정식으로 학교에서 절차를 밟아 표절 여부를 밝힌다고 한다. 스스로 사과했으니 표절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가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학문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글쎄, 중요한 건 논문의 활용여부가 아니라 거짓으로 썼다는 데 있다. 비교하자면 그는 도둑질을 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에게 단지 남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논문 표절 논란을 보고 그의 전공이 역사학인줄 알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학부 전공은 연극영화과였다. 왠지 소름이 쫙 끼쳤다. 동시에 모든 퍼즐이 맞추어졌다. 설민석의 모든 게 연기였다면 그는 자신의 장기를 제대로 살린 셈이다.


덧붙이는 말


사람은 자신이 잘 모르는 말을 할 때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안면을 찡그린다거나 손을 떨거나 땀이 나거나 하다 못해 손에 든 볼펜을 자꾸 돌린다. 그러나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사기꾼들이 그렇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자신이 하는 말에 취해 점점 고취되다가 진짜라고 확신한다. 남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유명세를 타게 되면 이 증세는 더욱 강해진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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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천여 명에 가까운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불안감은 날로 증폭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정권 스스로 자처한 측면도 있지만 곰곰 따져보면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물론 중증 환자가 늘고 사망자도 확대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정세를 취하고 있다. 


단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다. 정답은 확진율이다. 곧 검사건수 대비 감염자의 비율은 초기부터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한 때 1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고 2를 상향한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1과 2 사이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예를 들어 2020년 12월 29일 총 검사자수는 61,343건이었고 확진자수는 1,050명이었다. 확진율은 1.73%. 감염자수가 백 명대에 불과했던 10월 달로 돌아가 보자. 10월 31일 검사건수는 6,138건, 감염자수는 109명, 확진율은 1,78%.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비슷하잖아? 


다시 말해 당시 정부는 검사 자체를 소극적으로 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철저한 검사와 격리를 앞세운 이른바 케이방역과는 거리가 먼 결과였다. 만약 10월에도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검사를 하고 백신 도입을 앞당겼다면 지금쯤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정부는 그동안 감염자수는 벌표하면서도 검사건수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물론 갖은 방법을 동원하면 찾아낼 수는 있지만 여간 번거러운게 아니었다. 검사수와 확진자수를 알리고 확진율을 발표했자면 쓸데없는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코로나 라이브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자료 출처 : 코로나 라이브 | 실시간 확진자 현황 (corona-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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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티브이 드라마 때의 원더우먼이 좋았지만 여주인공은 여전히 매력적


올해는 영화 운이 좋지 않았다. 코로나 19 때문에 개봉작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눈길을 확 잡아끄는 작품이 없었다, 가 정확한 표현이다. 원더우먼 1984를 보았다. 극장 나들이 자체가 매우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건물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연히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에도.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영화를 봐야 하나 싶었다.


오프닝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블랙 팬서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시작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박물관 박사로 등장한 다이애나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스토리는 진부했다. 실제로 중간에 깜빡하고 잠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간간이 등장하는 액션장면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 쿠키도 굳이 필요 없는 양념이었다.


차라리 티브이 드라마 때의 원더우먼이 좋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외모와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반 페미니즘이라 욕을 먹겠지만 스토리는 흥미진진했다. 반면 1984는 한 마디로 지루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죽은 남자친구를 환생시켜 러브라인을 만드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여전사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주인공 자체의 개성 또한 반감되고 있다. 게다가 여자와 여자의 대결로 치환시키는 바람에 혼돈스럽다. 


여하튼 올 한해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온통 바이러스로 물든 1년이었지만 언젠가는 좋은 기억도 떠오르겠지. 지금 당장은 마스크 꼭꼭 끼고 손 깨끗이 씻고 예방에 충실할 때다. 


사진 출처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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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9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이지 2020-12-2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중이용시설 가기가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님 말씀처럼 굳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연말연시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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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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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대중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말 것

절대로 자기의 결점이나 오류를 인정하지 말 것

절대로 적에게도 뭔가 좋은 점이 있음을 인정하지 말 것

절대로 대안의 여지를 남기지 말 것

절대로 비난을 용인하지 말 것

한 번에 하나의 적에 집중하여 그에게 잘못된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것


_ 나치 선전의 기본 규칙


성인이 되고 투표를 하면서부터 쭉 진보를 지지해왔다. 사정상 딱 한번 투표를 하지 못했던 순간을 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 번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한 선거였다. 지난 총선 때는 기권 표를 던졌다.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도무지 민주당 정권을 지지할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하나쯤의 일탈은 상관없다는 듯 민주당은 총 180석이라는 역대 최다의석을 확보했다. 


진보에 대한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였다.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매우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하도 그를 비판하기에 진짜 그런지 작심하고 티브이 연설을 본 적이 있다. 역시나였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었다. 국가 최고 리더로서의 품위와 절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는 솔직함이라 포장했지만.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정직함으로 칭송받았지만. 


이명박, 박근혜를 거친 게 악수였다. 진보의 천박함도 싫지만 보수의 안면몰수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라고 결심한 나는 문재인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무능함의 극치였다. 그를 둘러싼 인력풀이 이렇게나 협소한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중에는 나도 알고 있는 몇 몇 인간들이 있었다. 세상에나 저런 사람이?


진중권은 문재인을 직접 파고 든다. 뼈아픈 일이다. 진보의 사상가로 불리는 그가 자기편을 처절하게 물고 뜯고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모든 지적이 다 일리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문재인 정권은 진보를 가장한 복수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집권을 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로지 노무현의 앙갚음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다. 자신들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적폐로 몰아 쓰러트리고 그 전쟁에 앞장섰던 검찰을 또 다른 적으로 돌려세웠다. 그 칼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걸 알고서. 진중권은 묻는다.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아직도 1년이 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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