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출고되었다가 2020년 다시 돌아온 갤럭시 노트 9.
가격은 싸졌지만 성능은 그대로다.
펜이 달린 휴대전화에 대한 로망
휴대폰을 바꿨다. 근 20년 만이다. 최초로 사용한 폰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최신 유행이던 풀더폰이었다. 장마철을 지나며 먹통이 되자 두 번째도 비슷한 폰을 구매했다. 희한하게 또 같은 이유로 고장이 났다. 세 번째로 구입한 건 슬라이딩 폰이었다. 별 생각 없이 고장 안 나고 오래가는 폰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점원이 건네준 전화기였다. 이 폰과는 가장 오래 함께 했다. 정말 직원의 말대로 잔고장없이 근 10년 이상 사용했다. 작년에서야(?) 겨우 회복불가능 상태에 빠져 같은 기종으로 중고 폰을 사서 1년쯤 이용하다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고민에 빠졌다. 또다시 중고를 사서 2G의 종말을 함께 맞을까, 아니면 이번 기회에 대망의 스마트폰으로 갈아탈까? 사실 내심 조금 더 쓰고 싶었다. 딱히 번호에 애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겪는 불편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통신사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내게 대리점 직원은 불친절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대신 휴대폰 정보를 알기 위해 찾은 동네 다른 통신사는 친절의 표본이었다. 결국 그 직원 덕에 휴대전화를 바꾸는 것은 물론 번호까지 갈아타게 되었다. 사실 친절도 한몫했지만 갤럭시 노트에 마음이 빼앗긴게 더 컸다. 예전부터 펜이 달린 휴대전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때마침 특정 통신사에서만 프로모션을 했다. 주인공은 갤럭시 노트 9이다.
2018년 출고된 모델인데 어쩐 일인지 2020년에 재출시되었다. 보급폰인 아이폰SE2를 견제하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설이 있던데. 여하튼 요즘처럼 신제품 주기가 빠른데 굳이 2년 전 모델을 써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내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각종 기능을 앞서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바로 라디오다. FM이 본체에 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데이터 소모 없이 전원만 연결하면 언제 어디서든 라디오 청취가 가능하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라디오를 듣나, 굳이 듣겠다면 앱 깔면 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는 단순한 여흥이 아닌 재난대비용이다. 그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상상을 해보시라. 인터넷이 끊어진 세상을. 실제로 이런 일이 불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오로지 의지할 것은 라디오뿐이다.
게다가 이 폰에는 여전히 이어폰 잭이 있다. 또 누군가는 아이팟 운운하며 촌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조용히 다가가 이어폰 잭은 괜히 폼이 아니라 안테나 기능을 한다고 넌지시 알려주겠다. 곧 이어폰을 잭에 끼우면 바로 안테나가 되고 모드를 스피커로 전환하면 근처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상위버전인 갤럭시 노트 10과 10플러스에는 두 기능 모두가 없다. 앞으로도 라디오나 이어폰잭을 장착한 휴대전화는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번들용 이어폰을 따로 사서 억지로 들을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거야말로 낭비 아닌가? 요컨대, 나는 라디오와 이어폰 잭 때문에 갤럭시 노트 9을 구입했다. 행여 언젠가 수명이 다해 전화나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라디오만큼은 살아남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게 갤노트 9은 799,700원짜리 라디오인 셈이다.
덧붙이는 말
2018년 출고 당시 가격은 995,500원 (128GB)과 1,155,000원 (512GB) 이었다. 2020년 새로 나온 제품은 128GB 단일로 799,700원이다. 행여 기능이 빠지거나 없어진 것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현재로서는 없다. 심지어 DMB까지 살아 있다. 참고로 이 가격은 특정 통신사에서만 한시적으로 가능하다.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구입하여 사용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또한 휴대폰의 스펙이나 사양을 알리는 글도 아닙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