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3대 거짓말중 하나라는 설이 있다. 나머지 둘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러나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진실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위탁모와 정이 듬뿍 든 질리. 그러나 친모가 아닌 친할머니의 등장으로 예기치 않게 떠나게 되는데. 정작 옮긴 집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자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다.


“아줌마, 다 잘못됐어요.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생각대로 되다니? 사는 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만만치 않은 일들뿐이야. 세상에 끝이 있다면 그건 죽음뿐이란다. 계속 살아야지, 죽을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는 늘 행복을 갈구한다. 과연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어쩌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삶을 속이기 위해 내세우는 거짓유혹은 아닐까? 요즘 들어 더 그런 망상이 자꾸 든다. 그래 계속 살아야지 세상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우리는 사망하게 되어 있는데 미리 스스로 부고를 쓸 필요는 없지.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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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독하면 떠올리는 게 아편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잘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말이 나쁜 뉘앙스라는 건 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사람은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한 칼 막스다. 역설적으로 종교가 그만큼 중독적이라는 뜻이리라.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주목해서 볼 부문은 종교, 구체적으로 교회를 매개로 한 전파다. 왜 유독 교회에서만 대규모 집단감염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과정에서 비말이 확산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의심이 가는 부분은 핵심 신자들이다. 교회발 전파가 하도 많아지자 기사량도 늘었다. 그 중에 눈에 뜨이는 건 확진자중 한 명이 수요일 오전 8시에 방문해서 저녁 8시 30분까지 머물렀다는 내용이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만 이쯤 되면 거의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물렀다는 것 아닌가? 직업이 아닌 이상 이토록 오래 한 장소에 있을 수 있는지?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가능한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으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바이러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집단감염의 중심지였던 물류창고나 콜센터, 나이트 클럽 등은 일시적으로 폐쇄조치를 하면 그만이지만 교회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교회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중세시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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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기준을 제각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아니다. 이른바 상위 5%에 드는 것도 아니고 물려받는 재산이 차고 넘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만은 부자랍니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형편대로 살 뿐이다.


우리에게 부자는 터부의 대상이었다. 워낙 평준화 문화가 강한 터라 남들보다 잘나고 잘사는 걸 드러내길 꺼렸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확한 이유는 없다. 여하튼 부자들이 '나 이렇게 잘 살아'라고 하면서 공개하는 건 드물다. 그저 조용히 남들 시선이 뜨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 잘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고 젊은 부자들이 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들이 꽤 생기고 있다. 극소수 꼴사나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삶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이면 누구나 잘 살고 싶고 그러다보면 좋은 집에 살거나 명품을 사고 싶어지게 마련이니까. 


그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한 명이 있다. 실명이나 사이트는 밝히지 않겠다. 의사라는 직업 정도만 알려주겠다. 그는 강남에서 잘 나가는 피부과 원장이다. 돈도 많이 벌고 그만큼 또 쓴다. 흥미로운 건 돈을 쓰는 취향이다. 소위 명품을 선호하는데 그렇다고 마구 사들이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취향을 고려하여 선택하는데, 그 취향이란 게 납득이 간다. 다시 말해 나는 이래서 이게 좋다, 라고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그 범위도 매우 넓다. 의류나 먹을거리뿐 아니라 자동차 더 나아가 집까지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누군가는 꿈꾸기조차 힘든 일상이지만 나름 이해가 된다. 부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취향이 핵심이다. 거꾸로 말하면 부자가 아니어도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삶은 꽤 근사해진다. 행복까지는 모르겠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취향이 없는 사람과 마주하기 괴로워진다. 돈이 있건 없건 자신의 지나온 삶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갈고 닦을 시간은 차고도 넘쳤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움직이고 스스로를 깎아 내리며 쉽게 비굴해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부자가 되는 길이 어렵고 힘들다면 취향을 파악하여 삶을 지탱해보면 어떨까? 그건 진짜 돈이 얼마 들지 않는다.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된다. 굽실거릴 용기따위는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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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 O.S.T.
휴 잭맨 외 노래 / 워너뮤직(WEA)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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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같은 영화가 있다. 내게는 <위대한 쇼맨>이 그렇다. 정말 전혀 일도 기대하지 않고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음악영화는 일단 점수를 후하게 매기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내 기준을 훌쩍 넘었다. 우선 모든 음악이 오리지널 스코어라는 것, 다시 말해 창작뮤직이다. 게다가 출연배우들이 직접 불렀다. 휴잭맨이 이런 노래솜씨가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개인적으로 배우 타이틀을 단 서양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본기를 철저하게 제대로 걸쳤기 때문이다. 반짝 유명해져서 얼굴빨, 이름빨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연기와 춤, 그리고 노래로 승부를 건다. 지금도 이 영화는 내 최애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데 어제만 해도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아마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은 관람하지 않았나 싶다. 으뜸 이유는 역시 음악. 한 두곡이 좋은 게 아니라 각자의 캐릭터를 살린 모든 음악들이 빼어나다. 마치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듯 다양한 색깔을 뿜어낸다. 음악영화 팬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음반이다. 아마 당분간 <위대한 쇼맨>을 능가하는 오에스티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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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쇼 코랄 베스트 콜렉션
RCA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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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꼰대 문화는 이제 우스개의 소재가 되어 버렸다. 다행스럽다. 그만큼 권위가 사라졌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도 한결 부담을 덜었다. 괜히 눈치 보며 쭈뼛거릴 이유가 없어졌다. 당당하게 스스로의 촌스러움을 밝히면 그만이다. 게다가 웃기면 덤이고.


미국 민요를 추억으로 삼는 세대야말로 중장년층이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오 수잔나’나 ‘켄터키 옛집’을 마치 우리 노래처럼 따라 부르곤 했다. 음악책에도 잔뜩 있었다. 미군정의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른 김에 로버트 쇼 합창단 음반을 구매했다. 미국인들이 좋았던 시절의 추억을 듬뿍 담은 포스터 작곡의 민요모음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도 익숙한 곡들 천지라 반가웠다. 그런데 희한하게 집에 와서 들어보니 옛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지루하고 느린 곡들이라는 느낌뿐이었다. 희한하다. 분명히 이런 노래를 들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는데 그 때는 꽤 감동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내 감각이 둔해졌다기 보다는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귀가 비로소 열린 것이 아닐까? 사실 로버트 쇼나 로저 와그너 합창단은 실력 자체 보다는 이름값으로 유명세를 치른 게 맞다(개인적의 의견입니다). 만약 그들의 노래가 훌륭했다면 지금까지도 건재했겠지? 그럼에도 소장차기는 충분하다. 표지만으로도 미국 특유의 정감이 물씬 풍긴다. 또 혹시 아나? 십년 쯤 후에는 가슴 사무치게 좋다고 느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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