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멸망한다. 확실히. 언젠가는. 헛된 망상이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다. 단지 언제가 될지 모를 뿐. 만약 당장 내일이라면 어떨까? 아니다, 라며 손사레를 칠 것이다. 먼 훗날 인류도 마찬가지 감정일 것이다. 설마 우리 세대에서. 그러나 그 일은 분명히 일어난다.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으며 지구를 누비던 공룡들이 그 증거다. 흥미로운 건 파국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다. 그 중에는 묘한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래, 망해라. 더 망해버려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도 5개월가량이 되어 간다.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 우한부터 따져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첫 확진자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갔다고 하지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것은 틀림없다. 어느 정도 발병하면 사그러들어야 마땅한데 이번에 그럴 기미가 없다. 케이방역 운운하며 샴페인을 그렇게도 일찍 터뜨리더니 지금은 대규모 2차 감염을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지역은 수도권이다. 폭탄과 지뢰가 난무하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실제에서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활동은 쪼그라들고 일상은 남루해지고 겨우 살아남은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을 누리고 있어도 누리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이런 날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 지구 멸망을 구원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고장 나고 011은 더이상 쓸 수 없게되고 윈도우 10 업데이트는 말썽이고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먼트 단지는 뚱딴지같은 엘리베이터 공사로 온종일 시끄럽고 도로 곳곳에 세워놓은 무단 자전거들을 몽땅 쓸어버려달라고, 이런 잡다한 근심걱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한다.